[기획]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 300메가픽셀 카메라·코로나그래프 첫 가동 성공

어느 날 노트북 화면 크기만 한 카메라가 3억 개의 화소로 사진을 찍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인화하면 벽 한 면을 가득 채울 만큼 정교한 사진이 나온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지난달 발사한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이 바로 이런 카메라를 달고 우주로 향하고 있다. 발사 2주 만인 이달, 지구에서 약 160만km(100만 마일·지구-달 거리의 약 4배)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이 카메라와 함께 실린 외계행성 관측 기술시연 장비 '코로나그래프'가 처음 깨어나 신호를 보내왔다.
왜 지금, 왜 어려웠나
로먼 우주망원경은 2026년 8월 30일(세계표준시 11시26분4초)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 헤비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현재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인 '제2 라그랑주점(L2)'을 향해 이동 중이며, 발사 후 약 100일 뒤 도착할 예정이다. L2는 연료를 거의 쓰지 않고도 지구와 같은 상대 위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우주의 중력 균형점이다.
이 임무가 여기까지 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원래 이름은 '광시야 적외선 탐사 망원경(WFIRST)'이었으나, 2020년 5월 NASA 최초의 천문학 수장이었던 낸시 그레이스 로먼을 기려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2019년부터 2025년 사이 미국 행정부 예산안에서 최소 네 차례 전면 취소나 대폭 삭감 대상으로 지목됐지만, 그때마다 미국 의회가 예산을 복원해 임무를 살려냈다. 임무 총비용도 2020년 재설계 당시 추정치 39억3400만 달러에서 코로나19 영향으로 3억8200만 달러가 늘어 43억 달러로 불어났다.
극저온 카메라가 깨어나다
이달 11일, 운영진은 주 관측장비인 광시야 카메라(Wide Field Instrument)의 히터를 끄고 냉각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활성화 절차에 들어갔다. 냉각은 3단계로 진행돼 영하 65도, 영하 143도를 거쳐 최종 영하 183도(영하 300화씨)까지 내려간다. 액체질소의 온도(영하 196도)에 버금가는 극저온이다. 이렇게까지 차갑게 만드는 이유는 별빛에 섞인 미세한 적외선, 즉 천체가 내뿜는 열 성분까지 놓치지 않고 잡아내기 위해서다.
이후 보정시스템 가동과 테스트 데이터 송신, 필터휠(관측 파장을 바꾸는 회전판) 테스트, 초점 메커니즘 테스트가 차례로 이뤄졌고, 마침내 카메라가 첫 별빛을 포착한 테스트 이미지를 지구로 보내왔다. 다만 이 사진 속 별들은 점이 아니라 '도넛' 모양으로 넓게 퍼져 보인다. 아직 망원경 광학계가 정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인데, 카메라 렌즈의 초점 링을 다 돌리지 않은 채 셔터를 누른 것과 비슷한 상태로 이해하면 된다. NASA는 이것이 이 단계에서 예상된 정상적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카메라의 스펙은 화소수 300.8메가픽셀(약 3억 화소)로, 적외선 검출기 18개를 이어붙여 만들었다. 이를 다 합친 감지 면적은 노트북 화면 한 대 크기에 불과하다. 관측 파장대는 가시광선에서 근적외선에 걸친 0.48~2.30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는 1000분의 1밀리미터)이며, 각해상도(하늘에서 두 점을 얼마나 세밀하게 구분해내는지 나타내는 값)는 0.11각초다. 무엇보다 한 번에 담는 하늘의 면적, 즉 시야(FOV)가 0.28평방도로 보름달의 겉보기 크기보다 넓다. 이는 허블 우주망원경의 광학촬영장비보다 약 100배, 적외선 채널과 비교하면 약 200배 넓은 수준이다. 허블이라면 같은 선명도로 100번 넘게 나눠 찍어야 할 하늘을 로먼은 단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셈이다.
별빛 속 반딧불이를 찾는 기술
같은 시기 코로나그래프(Coronagraph Instrument)도 전원을 켰다. 코로나그래프란 밝은 별 자체를 인위적으로 가려 그 주위를 도는 훨씬 희미한 행성의 빛만 골라내는 장치다. 밝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바로 옆에서 반딧불이 한 마리의 빛을 구분해내는 수준의 난이도에 비유된다. 로먼의 코로나그래프는 소프트웨어·열제어·메커니즘·카메라·전자장비 등 모든 하위시스템과의 통신을 확인했고, 이동식 마스크와 색필터, 렌즈, 프리즘 홀더 같은 가동 부품을 지상에서 원격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도 검증했다. 별빛을 막는 정형동공마스크는 미국 25센트 동전 하나 크기에 불과하다.
이 장비는 쌍으로 이뤄진 변형거울(운용 중 실시간으로 스스로 형태를 조정하는 거울)을 이용하는, 우주로 나간 최초의 '능동형' 코로나그래프다. 작동 온도는 영상 22도로, 영하 183도까지 냉각되는 광시야 카메라와 달리 상온에 가깝다. 한 우주선 안에 냉동고 같은 극저온 구역과 상온에 가까운 방이 함께 있는 셈이다. NASA는 이 장비의 별빛 억제 성능이 기존 우주기반 코로나그래프 대비 100~1000배 향상됐다고 밝혔다.
다만 코로나그래프는 아직 정식 과학 관측 도구가 아니다. NASA는 이 장비를 외계행성 직접촬영 기술을 검증하는 '기술시연' 장비로 규정하고 있으며, 기술 입증이 끝난 뒤에야 과학계에 개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검출기를 따뜻하게 유지한 채 대기하는 30일간의 탈오염 절차가 진행 중이다. 별빛 차단을 통한 외계행성 직접촬영 기술은 2000년대 초 추진되다 2011년 취소된 '지구형행성 탐색기' 계획에서 개발이 시작된 변형거울·고대비 이미징 기술을 잇고 있으며, 차세대 기함급 임무인 '거주가능 세계 관측소'를 위한 사전 기술 검증의 성격도 지닌다.
아직 갈 길은 남았다
이번 점검은 장비가 정상적으로 살아 있고 지상과 통신하며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일 뿐, 실제로 쓸 수 있는 선명한 우주 사진이나 외계행성 직접촬영 성과는 아니다. 앞으로 몇 달에 걸쳐 미세유도 시스템을 가동해 광학계를 정렬하고 별빛을 또렷한 점광원처럼 맞추는 작업이 이어지며, 이 과정을 마쳐야 도넛 모양으로 퍼진 별빛이 진짜 우주 사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렇게 얻어질 첫 정식 과학 이미지 공개는 2027년 초로 예정돼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연구자들이 로먼의 사양과 의의를 해설한 바 있다. 한 연구자는 로먼이 허블과 같은 2.4m 구경 망원경으로 L2에서 적외선을 관측하며 암흑에너지·외계행성 연구에 특화됐다고 설명했고, 다른 연구자는 넓은 시야각과 다중 파장 필터를 활용하면 태양계 내 작고 어두운 소천체를 새로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는 언론 해설 수준이며, 한국 기관이나 기업이 로먼 프로젝트에 공동연구나 기기 제작으로 공식 참여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구상된 이 임무는 예산 논란과 취소 위기를 거듭 넘기고 2026년에야 발사됐다. 15년 넘게 이어진 별빛 차단 기술의 계승, 그리고 발사 2주 만의 첫 신호는 그 자체로 하나의 확인일 뿐이다. 진짜 시험대는 2027년 초, 광학계가 완전히 정렬된 뒤 공개될 첫 과학 이미지에서 시작된다.
자료: 미국항공우주국(NASA), 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IPAC, 한국천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