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듀크대, 이온 13개로 우주 초기 '끈 끊어짐' 실험실서 재현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기면 언젠가는 끊어진다. 그런데 그 고무줄이 원자 하나하나로 이어진 것이라면 어떨까. 끊어지는 대신 끊어진 자리에 새로운 알갱이 한 쌍이 생겨나 양 끝을 다시 감싸는 일이 벌어진다면. 듀크대 양자컴퓨팅센터(Duke Quantum Center)가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팀이 이런 장면을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어 보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는 우주가 갓 태어났을 때 에너지가 물질로 바뀌던 순간과 같은 종류의 과정이다.
왜 지금, 왜 어려웠나
연구팀은 원자를 이온화해 전기장으로 한 줄로 붙잡아두는 '이온 트랩' 방식의 양자 시뮬레이터를 썼다. 이번에 사슬을 이룬 이온은 13개다. 실제 소립자인 쿼크는 원자보다 약 10억 배나 작아서 눈으로도, 어떤 현미경으로도 직접 들여다볼 수 없다. 그래서 연구팀은 쿼크가 따르는 물리 법칙을 훨씬 단순화한 모형, 즉 (1+1)차원 ℤ₂ 격자 게이지 이론(lattice gauge theory, 입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촘촘한 격자 위에 올려놓고 계산하는 이론틀)을 이온 13개짜리 '축소 모형'으로 옮겨 실험했다. 개별 이온마다 레이저를 정밀하게 쏘아 이온 사이의 상호작용을 하나하나 조절하는 방식으로, 두 '전하' 입자를 서로 멀리 떼어놓으며 그 사이에 놓인 끈이 늘어나다 끊어지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찰했다. 다만 관측 가능한 시간 창은 매우 짧아, 이번 실험으로 슈윙거 메커니즘(Schwinger mechanism, 진공에서 강한 힘의 장이 에너지를 물질 입자쌍으로 바꿔내는 이론적 과정) 자체를 직접 들여다본 것은 아니라는 한계도 있었다.
핵심 발견 — 끈은 가운데가 아니라 끝에서부터 끊어졌다
두 입자를 계속 떼어놓으면 그 사이의 끈에는 에너지가 쌓인다. 이 에너지가 임계점을 넘으면 끈이 그냥 끊어지는 대신 새로운 입자쌍이 생겨나 끊어진 자리를 메운다. 이것이 '스트링 브레이킹(string-breaking, 끈 끊어짐)' 현상이다. 연구팀은 원래 이 새 입자쌍이 끈 전체에 걸쳐 고르게 생겨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 두 축 모두를 세밀하게 들여다본 시공간 해상도 관측 결과는 달랐다. 새 입자쌍은 끈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양쪽 '가장자리'에서 먼저 생겨나 이후 안쪽으로 퍼져나갔다. 고무줄이 중간이 아니라 양 끝부터 닳아 끊어지기 시작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이를 '에지 주도형(edge-driven)' 메커니즘이라 이름 붙였다. 이 결과는 일반 컴퓨터로 계산한 시뮬레이션과 대조해 정확성을 검증받았다.
서로 다른 양자컴퓨터들이 같은 결론에 도달하다
비슷한 시기 전혀 다른 방식의 양자컴퓨터에서도 유사한 '끈-끊김'류 현상이 각각 독립적으로 관측됐다. IBM은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와 함께 156큐비트 규모의 초전도 방식 프로세서 중 104개 큐비트를 활용해 무거운 쿼크를 가정한 단순화된 1차원 모델을 실험했고, 이전 세대 장비보다 오류율을 3~5배 낮춘 개선된 하드웨어를 썼다. 구글도 같은 초전도 방식으로, QuEra Computing은 원자를 하나씩 낱개로 붙잡는 중성원자 방식으로 각각 비슷한 실험을 내놓았다. 이보다 앞서 QuEra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와 함께 2024년 10월 프리프린트를 낸 뒤 2025년 6월에는 이번과는 차원이 다른 (2+1)차원 리드베리(Rydberg) 중성원자 시뮬레이터로 별도의 끈-끊김 현상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바 있다. 중국과학기술대(USTC) 연구팀 역시 초저온 원자를 가둔 광격자 장치로 2024년 11월 프리프린트를, 2025년 9월에는 정식 논문을 내놓았다. 서로 다른 회사, 서로 다른 하드웨어 원리를 쓰는 여러 진영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물리적 결론에 이른 셈이다. 듀크대의 크리스토퍼 몬로 교수는 이를 두고 결과가 특정 장비의 오류가 아니라 실제 물리 현상을 반영한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번 논문의 제1저자는 현재 경쟁 진영인 QuEra Computing 소속으로, 같은 시기 QuEra도 유사한 실험을 내놓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아직 갈 길은 남았다
이번 실험은 이온 13개 규모로, 사실 일반 컴퓨터로도 계산해 검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즉 양자컴퓨터가 일반 컴퓨터를 능가하는 '양자우위'를 보여준 단계는 아니다. 다루는 모형 자체도 실제 쿼크와 글루온이 따르는 3차원 공간의 복잡한 물리를, 훨씬 단순한 1차원 세계로 축소한 것이다. 연구팀의 데이터는 2024년 10월 처음 논문 사전공개(프리프린트) 형태로 나온 뒤, 약 2년이 지난 2026년 9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에 정식 게재됐다. 이 시간차가 생긴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듀크대와 메릴랜드대, 옥스퍼드대, 캘리포니아공과대학, KU 르번의 연구자들이 함께했다. 앞으로 이온 수를 늘려 일반 컴퓨터가 따라잡지 못하는 규모로 확장하는 것이 다음 과제로 남아 있다. 우주 초기 물질 생성이나 입자물리 현상을 양자컴퓨터로 들여다보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을지는, 규모를 키운 후속 실험이 답할 문제다.
자료: 듀크대(듀크 양자컴퓨팅센터), 메릴랜드대, 옥스퍼드대, 캘리포니아공과대학, KU 르번, 미 에너지부, 국립과학재단(NSF), IBM,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구글, QuEra Computing, 중국과학기술대(UST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