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경부암 전이·면역회피 동시에 일으키는 '주범 유전자' ETS1 찾았다
목 주변에 생기는 난치성 암인 두경부 편평상피세포암이 다른 장기로 퍼지는 것(전이)과 면역항암제에 듣지 않게 되는 것(내성)을 동시에 일으키는 '주범 유전자'가 국내외 공동연구로 확인됐다. 이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으면 기존 치료가 듣지 않던 환자에게도 새로운 치료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박영민 교수 연구팀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연구팀과 함께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 사전공개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발표했다. 두경부 편평상피세포암은 입안(구강), 목구멍(인두), 성대가 있는 후두, 식도 등 머리와 목 주변에 생기는 악성 종양으로,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지만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 치료가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암세포 하나하나의 유전자 활동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scRNA-seq)' 기법을 이용했다. 이는 조직 전체를 뭉뚱그려 보는 기존 방식과 달리, 세포 각각이 어떤 유전자를 얼마나 활발히 사용하는지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최신 분석법이다. 그 결과 'ETS1'이라는 전사조절인자(다른 유전자들의 작동 스위치를 켜고 끄는 단백질)가 암의 전이와 면역 회피를 동시에 이끄는 핵심 인자로 지목됐다.
실제 동물실험에서 그 위력이 확인됐다. ETS1을 인위적으로 많이 만들어내게 한 암세포를 생쥐에 주입하자 폐·간·신장 등 온몸으로 암이 퍼지는 전신 전이가 100% 발생한 반면, 그렇지 않은 대조군에서는 11%만 전이가 나타났다. 반대로 전이가 잘 일어나는 암세포에서 ETS1의 활동을 억제하자 전이율이 87.5%에서 25%로 크게 떨어졌다.
ETS1은 STAT1과 PD-L1이라는 두 유전자를 함께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암을 면역세포의 공격에서 숨겨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PD-L1은 암세포 표면에서 마치 '나를 공격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단백질로, 면역항암제가 주로 이 신호를 막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ETS1이 활성화한 종양 환경에서는 암을 공격해야 할 T세포가 종양 안으로 거의 들어오지 못하는 '면역 차가운(immune-cold)' 상태가 만들어져, 기존 면역항암제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이런 암이 열충격단백질90(HSP90)을 억제하는 약물, 예를 들어 알베스피마이신 같은 약제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했다. HSP90 억제제는 저산소 환경에서 암세포 생존을 돕는 HIF1A라는 단백질의 작용을 막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ETS1이 많이 발현된 두경부암 환자에게 HSP90 억제제와 면역항암제를 함께 쓰는 병용 치료 전략을 제시했다.
앞서 박영민 교수 연구팀은 같은 강남세브란스-USC 공동연구를 통해 두경부암 환자에게서 얻은 종양 오가노이드(환자 암 조직을 배양해 만든 미니 장기)를 이용해, 상피세포와 간질세포의 특징이 뒤섞인 '혼합형 상피-간질 전이' 상태가 항암제 시스플라틴에 대한 내성과 관련 있다는 별도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ETS1 연구와는 다른 논문이지만, 연구팀이 두경부암의 전이와 약물 저항성 기전을 여러 각도에서 꾸준히 규명해 온 맥락을 보여준다.
자료: 강남세브란스병원,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미국국립보건원(NI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