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영어’의 감옥을 넘어, 15억 학습자의 언어를 다시 묻다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10.07 19:12 · 수정 2026.10.07 20:10
조지은 교수 신간, 세계 영어들과 다언어 교육의 의미를 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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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len328 (Jim Heaphy)

영어를 가장 정확하게 구사하는 사람만이 영어의 주인일까. 조지은 옥스퍼드대학교 교수의 신간 『영어는 누구의 언어인가』는 발음과 문법을 원어민 기준에 맞추려 했던 익숙한 영어 학습법에서 벗어나, 세계 곳곳의 사용자가 영어를 어떻게 바꾸고 풍성하게 만드는지 살펴본다.

한국도서출판정보센터 등록 정보에 따르면 이 책은 2026년 8월 27일 아르테에서 출간됐다. 분량은 384쪽, 정가는 2만8000원이며 ISBN은 9791176610971이다. 책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영어 학습자가 이른바 원어민과 같은 발음을 내지 못한다는 부담, 관계대명사나 시제 일치 같은 문법 규칙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문법적으로 매끄러운 표현을 만드는 시대에는 영어의 완벽성보다 인간이 무엇을 말하고 서로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고 본다. 이는 인공지능의 능력에 관한 확정된 연구 결론이라기보다 책이 제시하는 전망이자 문제의식이다. 영어를 정해진 규칙의 모범 답안으로만 보지 않고, 다양한 언어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 소통 과정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언어로 보자는 제안이다.

옥스퍼드대학교는 저자를 아시아·중동학부 한국어학 정교수이자 옥스퍼드영어사전 한국어 자문위원으로 소개한다. 주요 연구 분야에는 다언어주의와 초언어주의, 인공지능 및 계산언어학, 언어교육이 포함된다. 초언어주의는 사람이 언어별 경계를 엄격히 나누기보다 자신이 가진 여러 언어 자원을 섞어 의미를 전달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책의 문제의식은 ‘세계 영어들’이라는 연구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세계 영어들은 영어를 영국이나 미국의 단일 표준으로만 보지 않고 싱가포르·인도·나이지리아 등 각 지역에서 형성된 여러 영어의 집합으로 이해한다. ‘국제 공용어로서의 영어’, 즉 ELF는 서로 다른 모어를 쓰는 사람들이 영어로 소통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춘다. 이 관점에서는 원어민과 똑같은 표현보다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 실린 2021년 연구는 Global Englishes를 세계 영어들, 국제어로서의 영어, ELF를 아우르는 다중심적 관점으로 설명했다. 이 연구가 인용한 수치에서는 영어 모어 화자가 약 3억8800만 명인 반면, 제2언어 사용자와 국제 공용어 사용자는 각각 약 10억 명이다. 두 집단을 합치면 비모어 화자가 모어 화자보다 5배 이상 많다. 다만 표준 문법과 원어민 규범을 얼마나 유지해야 하는지는 학계에서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책 부제에 등장하는 ‘15억’도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영국문화원의 2018년 보고서에서 15억 명은 영어 사용자 전체가 아니라 전 세계 영어 학습자의 추정치다. 같은 보고서는 101개국의 영어 모어 화자를 5억2700만 명으로 제시했다. 연구마다 영어 사용자, 학습자, 제2언어 화자의 범위를 다르게 정하므로 수치를 곧바로 같은 집단의 규모로 비교할 수 없다.

세계어의 효용을 강조하는 동시에 모어와 지역어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세계에서 약 7000개 언어가 사용되지만 교수 언어로 쓰이는 언어는 351개에 그친다. 학습자의 40% 이상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교육받지 못한다. 가정 언어로 수업받는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초등학교 말에 글의 뜻을 이해하며 읽을 가능성이 30% 높았다. 영어를 널리 활용하되 다른 언어를 배제하지 않는 다언어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결국 영어의 주인을 묻는 일은 완벽한 발음의 소유자를 가려내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영어를 실제로 사용하며 의미를 주고받는 현실을 어떻게 교육에 반영할지 묻는 문제다. 이 책은 영어 학습의 목표를 실수 없는 모방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소통으로 옮겨 보자고 제안한다.

자료: 아르테, 한국도서출판정보센터, 옥스퍼드대학교, 영국문화원, 유네스코,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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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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