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부를 지역에 남기는 두 해법…스코틀랜드 CWB와 교토 CBC

지역에서 번 돈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일자리와 사업 기회로 다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 스코틀랜드와 일본 교토시는 이 질문에 각각 국가 차원의 법률과 도시 차원의 지역기업 정책으로 답하고 있다.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지역에서 창출된 부와 투자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문제를 겪는 광명시가 ‘지역공동체 부 순환’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두 사례는 서로 다른 실행 경로를 보여준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2026년 2월 10일 ‘지역공동체 자산화 법안’을 찬성 103표, 반대와 기권 없이 통과시켰다. 법안은 같은 해 3월 25일 국왕 재가를 받아 ‘Community Wealth Building (Scotland) Act 2026’이 됐고, 주요 조항은 10월 1일 시행됐다. CWB는 Community Wealth Building의 약자로, 지역에서 만들어진 부를 외부로 흘려보내지 않고 주민과 기업, 공공기관이 함께 지역 안에서 만들고 돌리고 보유하자는 접근이다.
이 법에 따라 각 지방정부와 지정 공공기관은 파트너십을 만들고, 법 제5조 시행 뒤 3년 안에 공동 실행계획을 작성해야 한다. 계획에는 공공계약 지출 가운데 지역 사업자에게 돌아갈 비율의 ‘지표상 목표치’와 성과 측정지표를 담아야 한다. 공동재산인 토지를 활용하거나 매각할 때 CWB에 어떻게 기여할지도 제시해야 한다. 직접 영향을 받는 사람과 지역사회·기업 대표 등의 의견을 듣는 절차도 의무화됐다.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목표와 측정, 협의를 하나의 정책 과정으로 묶은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CWB는 지역 업체에 공공조달 기회를 주는 데만 한정되지 않는다. 정부가 제시한 다섯 축은 공공·민간 지출, 공정노동과 지역 노동시장, 토지·부동산, 사회적기업·종업원소유기업·협동조합 같은 포용적 소유, 지역을 위한 금융이다. 지역경제를 돈의 지출뿐 아니라 일자리, 자산, 기업 소유구조, 금융이 연결된 체계로 보는 방식이다.
입법 전에도 지역 단위 실험은 진행됐다. 노스에어셔는 2020년 스코틀랜드 최초의 CWB 전략을 발표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에어셔 성장협약에 300만 파운드를 투입했고, 클라크매넌셔·파이프·글래스고 도시권·남부 스코틀랜드·웨스턴아일스 등 5개 시범지역을 지원했다. 지역별 실험을 거친 뒤 공동계획을 요구하는 법적 틀로 확대한 흐름이다.
공공조달 규모도 정책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2023~24년 스코틀랜드 공공기관에서 확인된 조달지출은 175억 파운드였다. 이 가운데 스코틀랜드 소재 공급자에게 지출된 금액은 95억 파운드였고, 구매기관과 같은 지방정부 구역에 있는 공급자에게 돌아간 금액은 36억 파운드였다. 공급기업개발프로그램은 입찰 경험이나 전담 인력이 부족한 기업이 공공조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입찰 실무를 지원한다.
교토시는 위에서 공통 기준을 정하는 방식과 다른 길을 택했다. 교토의 CBC, 즉 Community Based Company는 영미권 CWB 법제를 그대로 옮긴 명칭이 아니다. 규모와 관계없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지역과 함께 계승·발전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교토시 자체의 정책 개념이다. 개인이 카페나 공유오피스 같은 사업을 지역에서 시작하고 관계망을 넓혀가는 움직임도 이 관점에서 바라본다.
정책의 토대가 된 ‘교토·지역기업 선언’은 2016년도부터 열린 중소기업미래력회의에서 연인원 1,164명이 논의한 끝에 2018년 9월 발표됐다. 이어 마련된 ‘교토시 지역기업의 지속적 발전 추진에 관한 조례’는 2019년 4월 1일 시행됐다. 조례는 지역기업을 회사 규모로 나누지 않고 교토시 안에 본점 또는 주된 사무소를 둔 사업자로 정의한다. 지역기업이 지역사회의 일원임을 인식하고 사업활동을 통해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만들도록 노력한다는 방향도 담았다.
교토시는 조례를 바탕으로 지역에 오래 뿌리내린 기업을 찾아 시상하고, 코디네이터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지원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스코틀랜드가 공공기관의 계획과 목표를 법으로 묶었다면, 교토는 지역기업의 정체성과 자발적 활동을 제도로 뒷받침한 셈이다. 두 사례는 방식은 달라도 조달과 토지, 기업, 주민의 관계를 다시 설계해야 지역의 부가 지역 안에서 순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료: 스코틀랜드 의회, 스코틀랜드 정부, 영국 국립공문서관, Supplier Development Programme Scotland, 교토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