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의 DNA 복구 차단해 ADC 효과 높이는 병용 전략 제시

항암제가 만든 DNA 손상을 암세포가 스스로 수리해 살아남는 과정을 동시에 막을 수 있다는 전임상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항체-약물 접합체가 암세포에 손상을 입히고, CDK7 억제제가 복구에 필요한 유전자 작동과 손상 제거를 방해하는 이중 전략이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김태경 생명과학과·융합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큐리언트 연구팀과 함께 CDK7 억제제 모카시클립(Q901)과 TOP1 저해제 기반 항체-약물 접합체(ADC)를 병용했을 때 항암 효과가 높아지는 원리를 규명했다고 밝혔다. POSTECH·큐리언트와 미국 국립암연구소, 메릴랜드대학교 연구진이 참여한 논문은 2026년 9월 30일 공개됐다.
ADC는 암세포의 특정 표지를 찾아가는 항체에 강력한 약물을 붙인 치료제다. 항체를 운반 수단처럼 이용해 약물을 암세포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번 연구가 다룬 ADC의 약물은 DNA의 구조를 다루는 효소인 토포아이소머레이스Ⅰ(TOP1)을 저해한다.
TOP1은 DNA 가닥을 잠시 자른 뒤 다시 이어 붙여 복제와 전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는다. TOP1 저해제는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TOP1-DNA 단백질 교차결합(TOP1-DPC)을 고정해 DNA 복제와 유전자 전사를 방해한다. 그러나 암세포는 진행 중인 RNA중합효소와 TOP1-DPC가 충돌하면 이 복합체를 프로테아좀으로 제거하고, DNA 손상복구 경로를 가동해 살아남을 수 있다.
연구진은 이 우회로를 CDK7 억제로 차단했다. CDK7은 RNA중합효소Ⅱ와 세포주기에 관여하는 CDK1·2·4·6의 인산화를 조절하는 표적이다. 인산화는 단백질에 인산기가 붙어 기능이나 활성이 바뀌는 조절 과정이다.
모카시클립은 CDK7의 Cys312에 공유결합했다. 공유결합은 원자들이 전자를 함께 사용해 단단히 연결되는 결합이다. 시험한 410개 키나아제 가운데 모카시클립은 1마이크로몰 농도에서 CDK7 활성을 99% 억제했다. CDK7의 활성을 절반으로 낮추는 농도인 IC50은 10나노몰이었다. 10나노몰은 1마이크로몰의 100분의 1에 해당한다.
다른 전사 관련 CDK에 대한 IC50은 CDK8이 10마이크로몰 초과, CDK9이 8.58마이크로몰, CDK12가 2.48마이크로몰, CDK13이 7.69마이크로몰로 보고됐다. 이는 실험 조건에서 모카시클립이 이들 단백질보다 CDK7을 훨씬 낮은 농도로 억제했다는 뜻이다.
기전 분석에서 모카시클립은 MYC·E2F에 의존하는 전사와 DNA 손상복구 유전자 발현을 낮췄다. 동시에 RNA중합효소Ⅱ가 유전자 전사를 시작한 뒤 긴 RNA 사슬을 만들어 가는 신장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억제했다. 그 결과 TOP1-DPC가 제거되지 않고 더 오래 남아 DNA 손상이 지속됐다. 암세포가 손상 부위를 치우는 과정과 복구 도구를 새로 만드는 과정을 함께 약화한 셈이다.
연구진은 사람 대장암 세포인 HCT116을 이식한 생쥐 등 동물모델에서 모카시클립과 ADC 병용에 따른 항암 효과를 확인했다. 다만 이번 결과는 세포와 생쥐 수준에서 얻은 전임상 근거다. 사람 환자에게 두 치료제를 함께 투여했을 때 항암제 내성을 예방하거나 생존기간을 늘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모카시클립은 현재 진행성 고형암을 대상으로 한 임상 1·2상 QRNT-009에서 단독요법과 면역항암제 펨브롤리주맙 병용요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연구의 TOP1 저해제 기반 ADC 병용 전략은 이 임상시험과 구분해 봐야 한다. 연구 결과는 암세포의 DNA 손상을 오래 유지하는 구체적인 작동 원리를 제시했지만,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하려면 안전성과 적정 용량, 임상 효능을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자료: 포항공과대학교, 큐리언트, 미국 국립암연구소,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PubMed, 메릴랜드대학교 의과대학, 미국과학진흥협회 Science Advanc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