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바꾼 지구 ‘인류세’…1952년을 환경 변화 비교 기준으로 제안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10.17 05:25
KAIST 참여 국제 연구진, 공식 지질시대 지정과 별개로 학문·정책·법 분야에서 활용할 공통 비교틀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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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구 환경을 얼마나 빠르게 바꿨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국제 연구진이 1952년을 전후로 변화를 비교하자는 공통 기준을 제안했다. 인류세를 공식 지질시대로 확정하자는 선언이 아니라, 기후와 생태계, 오염 문제를 같은 시간축에서 살펴보기 위한 연구·정책상의 기준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한국과학기술원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범순 석좌교수 겸 인류세연구센터장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논문은 2026년 9월 8일 학술지 ‘Nature Reviews Earth & Environment’에 실렸다. 논문 제목은 ‘Future directions for Anthropocene research and its applications’다. 연구진은 인류세의 정의와 향후 연구 방향, 실제 활용 가능성을 검토했다.

인류세는 인간 활동이 기후와 지구 환경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연구진이 주목한 1952년은 대기권 열핵실험에서 나온 플루토늄 낙진이 세계적으로 급증한 시점이다. 특정 지역에만 남는 흔적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지층에서 함께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시기는 인구와 생산, 에너지 소비를 비롯한 인간 활동과 환경 영향이 빠르게 커진 ‘대가속’과도 맞물린다. 대가속은 여러 변화가 짧은 기간에 동시에 가팔라진 현상을 뜻한다. 연구진의 제안대로 1952년 이전과 이후를 나눠 살펴보면, 비교적 안정적이던 환경이 어느 시점부터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라졌는지를 분야별로 분석할 수 있다.

같은 학술지 호에 실린 지질학적 근거 연구는 세계 12곳의 지층 기록을 종합했다. 이 연구는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메탄 농도가 홀로세 수준보다 각각 51%, 157% 높고,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높아졌다고 제시했다. 홀로세는 약 1만 년 전부터 이어져 온 현재의 공식 지질시대다.

1950년대 이후의 전환을 보여주는 흔적은 플루토늄에 그치지 않는다. 연구진은 탄소·질소 안정동위원소, 화석연료를 태울 때 생기는 비산재, 산업오염 물질과 생물상 변화도 지층에 남은 지표로 들었다. 안정동위원소는 같은 원소이지만 무게가 다른 원자의 비율로, 탄소와 질소가 환경 속에서 이동하고 변한 과정을 추적하는 단서가 된다.

다만 인류세가 공식 지질시대로 채택된 것은 아니다. 인류세실무그룹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크로퍼드호의 해마다 쌓인 퇴적층을 국제표준층서구역 후보로 제안했다. 국제표준층서구역은 지질시대의 경계를 대표하는 기준 지층으로, 흔히 ‘황금못’이라고 불린다. 일본 벳푸만과 중국 쓰하이룽완 마르호, 폴란드 시니에슈카 이탄지도 보조 표준지로 제시됐다.

그러나 제4기층서소위원회는 이 제안을 부결했고, 국제지질과학연맹과 국제층서위원회가 2024년 3월 26일 그 결정을 승인했다. 공식 지질연대표에서 현재는 홀로세의 메갈라야절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번 연구가 제시한 1952년은 인류세의 공식 시작 연도가 아니라, 인간이 일으킨 지구 변화를 일관되게 비교하기 위한 제안이다.

국제층서위원회도 인류세라는 비공식 용어가 지구변화와 지구시스템 연구에서 계속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의 제안은 지질학적 시대 구분을 둘러싼 결론과 별개로, 학문·정책·법 분야가 환경 변화의 시점과 규모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비교틀을 마련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자료: 한국과학기술원 인류세연구센터, Nature Reviews Earth & Environment, 국제층서위원회, 국제지질과학연맹, 제4기층서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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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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