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플라스틱 판에 ‘힘줄’을 그렸다…3D프린팅 결합 열성형, 개당 모델 비용 약 5.6% 낮춰

뜨거워진 플라스틱 판을 그릇처럼 깊은 모양으로 잡아당기면 어떤 일이 생길까. 풍선을 늘릴 때처럼 많이 당겨진 모서리와 깊은 부분부터 얇아진다. 판 전체를 두껍게 만들면 약한 곳은 보완할 수 있지만, 굳이 두꺼울 필요가 없는 곳까지 재료가 늘어난다.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ORNL)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얇아질 자리 위에 3D프린터로 ‘플라스틱 힘줄’을 미리 그려 넣은 뒤 판과 힘줄을 한꺼번에 성형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의 이름은 ART(Additively Reinforced Thermoforming·적층 보강 열성형)다. 연구진은 압출식 적층제조와 열성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했다. 2026년 연구에서는 선택한 갠트리형 통합 ART 시스템의 균등화 개당 비용이 독립형 접근보다 약 5.6% 낮아질 수 있다고 계산했다. 균등화 개당 비용은 설비와 운영에 드는 비용을 생산 단위에 나눠 비교한 모델상의 값이다. 따라서 1만원짜리 부품 가격이 곧바로 560원 내려간다는 의미도, 보강재를 덜 써 재료비가 5.6% 줄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넓은 몸체는 열성형, 복잡한 힘줄은 3D프린터
열성형은 가열해 부드러워진 열가소성 시트를 금형에 밀착시켜 형태를 만드는 공정이다. 넓고 얇은 형상을 만드는 데 알맞지만, 시트가 금형에 닿는 위치와 순서에 따라 늘어나는 양과 냉각 속도가 달라진다. 특히 깊게 당겨지는 곳은 두께가 줄어 구조적 약점이 될 수 있다. 기존에는 시트 전체를 두껍게 하거나 금형에 리브를 넣고, 별도의 보강재를 조립하는 방법 등이 쓰였다.
ART는 완성품 전체를 3D프린터로 천천히 쌓는 방식이 아니다. 평평한 시트 위에 리브나 격자 같은 보강 구조만 선택적으로 출력한 뒤, 시트와 보강재를 함께 가열해 금형에서 성형한다. 넓고 얇은 몸체는 열성형이 맡고 복잡한 보강 부분은 3D프린터가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다. 출력된 보강재는 성형 과정에서도 시트와 함께 움직이며 완성품에 남는다.
핵심은 필요한 위치와 방향에만 물성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품 형상이 바뀌거나 취약 지점이 달라지면 보강 구조의 디지털 출력 경로를 조정할 수 있다. 같은 제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상황뿐 아니라 서로 다른 형상을 비교적 적은 수량으로 만드는 생산에서도 검토할 만한 이유다. 다만 열성형과 적층제조를 결합한다는 넓은 발상 자체가 세계 최초라는 근거는 없으며, ORNL 기술의 특징은 평판 시트에 선택적인 보강 구조를 놓고 함께 성형하는 구체적인 구성에 있다.
2023년 성능, 2025년 접합, 2026년 비용은 서로 다른 단계
ART의 성능 근거는 한 번의 양산시험에서 모두 나온 것이 아니다. 2023년 실증에서는 PETG 시트 위에 탄소섬유 혼합 PETG(CF/PETG)를 선택적으로 출력한 시편을 무보강 시편과 비교했다. 이때 굽힘탄성률은 65.3%, 인장탄성률은 51.4%, 굽힘 에너지 흡수량은 53% 증가했다. 굽힘탄성률 65.3% 증가는 부품이 65.3% 더 안 부서진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정도로 휘게 만들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한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2025년 후속 연구는 PETG 1.5㎜ 시트와 탄소섬유 10중량%가 들어간 PETG/CF 보강재를 대상으로 출력 온도, 방향별 물성, 계면 접착을 살폈다. 265℃에서 제작한 ART 재료의 x방향 인장강도는 57.32±2.9MPa로, 무보강 PETG의 49.1±0.5MPa보다 16.74% 높았다. 같은 조건에서 탄성률은 3.41±0.4GPa로, 기준값 1.92±0.09GPa보다 약 77.6% 높았다. 이는 2023년의 인장탄성률 증가율과 시험 연도와 대상, 조건이 다른 결과다.
보강재는 어떤 재료인가뿐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출력했는지도 중요했다. 265~285℃ 조건에서 PETG/CF 출력재 자체의 인장강도는 출력선을 따르는 x방향에서 68.1~73.9MPa였지만, 층을 가로지르는 z방향에서는 16.2~20.2MPa였다. 실제 부품이 받는 힘의 방향과 출력 경로가 어긋나면 기대한 보강 효과를 얻기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수치는 ART 복합 시트 전체의 인장강도가 아니라 보강용 출력재 자체의 방향별 값이다.
2026년 연구는 앞선 시편 성능이나 접합 조건을 다시 측정한 동일 실험이 아니라, 통합 장비 설계와 경제성 비교로 범위를 넓힌 단계다. 관련 논문은 2026년 10월 《Manufacturing Letters》 49권에 게재됐다. 연구비는 미국 에너지부 첨단소재·제조기술실이 ORNL 운영계약을 통해 지원했다. 관련 특허출원은 UT-Battelle이 출원했으며 2025년 1월 공개돼 현재 심사 중으로 표시된다.
5.6%를 공장 원가표로 읽어서는 안 된다
연구진의 정확한 결론은 선택된 갠트리형 통합 ART 시스템이 독립형 접근보다 균등화 개당 비용을 약 5.6%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줄였다’가 아니라 ‘줄일 수 있다’는 조건부 판단이다.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설비가격과 수명, 할인율, 가동률, 연간 생산량, 인건비, 에너지비, 유지보수비, 불량률과 수율 같은 계산 전제를 확인할 수 없다. 비용항목별로 무엇이 5.6% 차이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보강재 출력시간이 길어지거나 노즐 유지보수와 가동 중단, 불량이 늘면 계산된 차이가 줄거나 뒤집힐 수 있다. 반대로 통합 공정의 효과가 커지는 조건이 있을 수도 있지만, 공개 자료에서 민감도 분석은 확인되지 않았다. 5.6%를 모든 ART 공정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절감률이나 실제 양산 공장의 회계 실적으로 일반화할 수 없는 이유다.
남은 질문은 내구성과 수율, 그리고 재현성
검증 범위도 아직 제한적이다. 상세 실험은 주로 PETG 시트와 단섬유 CF/PETG 조합을 다뤘다. 보강재 역시 시트와 함께 늘어나므로 깊게 잡아당기는 형상이나 급격한 이중곡면에서는 패턴이 뒤틀리거나 성형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높은 출력 온도는 접합에 유리할 수 있지만 시트 열변형과 잔류응력, 에너지 소비, 휘발성 물질 관리와의 교환관계도 살펴야 한다.
2023년 시편에서는 양호한 계면 접착과 눈에 띄는 박리가 없었다고 보고됐지만, 열순환과 습기, 자외선, 충격, 진동, 피로, 화학물질 노출 이후의 장기 내구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완제품의 충돌·난연·내후성 시험이나 자동차·항공 인증 결과도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탄소섬유 혼입과 다층 구조가 재활용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전 과정평가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외부 연구진이 약 5.6%의 비용 결과를 독립적으로 재현하거나 반박한 사례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ART가 제시한 것은 ‘부품 전체를 더 두껍게 만들 것인가’라는 오래된 선택지에 ‘약해질 곳만 디지털 경로로 보강할 것인가’라는 새 선택지를 더한 것이다. 이 선택지가 실제 생산 현장에서 유효하려면 장기 내구성, 복잡한 형상에서의 성형 안정성, 양산 수율, 경제성 계산의 전제가 함께 공개되고 검증돼야 한다.
자료: 오크리지국립연구소·미국 에너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