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BiVO4도 표면 원자 배열 따라 전자 흐름·화학반응 달라진다

같은 물질이라도 맨 바깥쪽 원자가 어떻게 놓이느냐에 따라 전자가 움직이는 길과 화학반응의 성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계산 결과가 나왔다. 전북대학교 이기태 교수 연구팀은 DGIST 이태훈 교수 연구팀과 함께 에너지 전환 소재인 비스무트 바나데이트(BiVO4)의 표면 원자 배열과 전자적 특성의 관계를 분석했다.
BiVO4는 빛을 흡수해 생긴 정공으로 물을 산화하는 광전기화학 광양극 후보 소재다. 정공은 전자가 빠져나간 빈자리로, 물과 반응하는 데 필요한 양전하 운반자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재가 실제로 작동할 때는 물과 표면이 직접 맞닿기 때문에 내부 결정 구조만큼이나 바깥쪽 원자의 종류와 배치가 중요하다.
물질의 표면에서는 원자가 내부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배열되는 ‘표면 재구성’이 일어날 수 있다. 이때 에너지띠의 위치가 달라지면 소재와 물 사이에서 전하가 이동하는 힘도 변한다. 에너지띠 사이에 전하를 붙잡는 상태가 생기면 전자와 정공이 다시 만나는 재결합이나 표면 화학반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팀은 BiVO4의 (010) 결정면에서 물속 전기화학 환경에 안정한 6가지 표면 종결 구조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비교했다. 표면 종결은 결정이 끝나는 가장 바깥층에 어떤 원자가 어떤 비율과 위치로 드러나는지를 뜻한다. 계산에는 주변 물질의 전기적 차폐 효과를 반영하는 유전율 의존 하이브리드 함수 분자동역학 방법을 사용했다.
분석 결과 비스무트가 많은 표면에서는 진공 준위를 기준으로 에너지띠 가장자리가 0.3~0.5전자볼트 위로 이동했다. 반대로 바나듐이 많은 표면에서는 약 1.0전자볼트 아래로 내려갔다. 같은 BiVO4의 같은 결정면이어도 표면 조성만 달라지면 계면에서 전하가 이동할 수 있는 에너지 조건이 크게 달라진다는 의미다.
산소의 양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전자 상태가 나타났다. 산소가 많은 표면에는 정공을 붙잡을 수 있는 과산화물 유래 상태가 가전자대 가장자리 부근에 생겼다. 가전자대는 전자가 채워진 에너지 영역으로, 그 가장자리의 상태는 정공의 이동과 반응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산소가 부족하고 바나듐이 과잉인 표면에서는 바나듐의 3d 궤도에서 비롯된 상태가 밴드갭 중간에 형성됐다. 밴드갭은 전자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에너지 영역과 채워진 영역 사이의 틈이다. 이 틈에 생긴 상태는 이동하던 전하를 붙잡는 덫처럼 작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표면에서 전하와 주변 원자 배열의 변형이 결합된 바나듐 중심 폴라론도 확인했다.
연구팀이 벌크형 산소 공공을 통해 전자 2개를 추가하자 모든 표면에서 전하가 바나듐 자리에 작은 폴라론 형태로 국소화됐다. 산소 공공은 결정에서 산소 원자가 빠진 빈자리이며, 국소화는 전하가 넓게 퍼지지 않고 특정 원자 주변에 머무는 현상이다. 과산화물인 O2²⁻로 끝나는 산소 과잉 표면에서는 이 과정과 함께 초과산화물형 O2⁻ 종도 형성됐다.
앞선 연구들은 BiVO4의 같은 (010)면에서도 산소 공공이 전자구조와 수송 특성을 바꾸며, 서로 다른 표면 조성과 종결 구조가 계면 에너지와 광전기화학 특성에 큰 차이를 만든다는 점을 계산과 실험으로 제시했다. 이번 연구는 분석 범위를 물속에서 안정한 6개 재구성 표면으로 넓혀 표면 조성, 에너지띠 이동, 전하 포획 상태와 격자 산소의 반응성을 하나의 틀에서 연결했다.
이번 결과는 특정 표면 조성이 어떤 전자 상태를 만드는지 이해하고, 물과 맞닿는 에너지 전환 소재의 표면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기초 정보를 제공한다. 다만 실제 수소 생산량이나 광전류 향상을 측정한 실험이 아니라 계산으로 표면의 작동 원리를 밝힌 연구이므로, 성능 향상 여부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논문은 2026년 5월 29일 온라인 공개됐으며 재료화학 분야 학술지 제14권 41호에 실렸다.
자료: 전북대학교, Royal Society of Chemistry, American Chemical Society, Nature Portfoli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