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꿈의 배터리, 전고체는 어디까지 왔나

스마트폰이 뜨거워지면 괜히 손에서 내려놓게 된다. 지금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도 기본 원리는 비슷하다. 배터리 안에서 리튬이온이 오갈 길을 만들어 주는 전해질이 불에 탈 수 있는 액체이기 때문이다. 강한 충격이나 과열로 불이 붙으면 열이 주변으로 빠르게 번지는 열폭주(thermal runaway)가 일어날 수 있고, 한번 시작된 불은 진화하기도 어렵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 액체를 세라믹이나 황화물 같은 고체로 통째로 바꾼다. 물이 든 병을 얼음 덩어리로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 흘러나오거나 불붙을 액체 자체가 사라져 외부 충격과 온도 변화에 더 안정적이고 폭발 위험도 낮아진다. 하지만 ‘고체로 바꾸면 된다’는 간단한 설명과 달리, 실제 자동차에 넣을 제품을 대량으로 만드는 일은 수십 년째 풀리지 않은 난제였다. 업계가 이를 ‘꿈의 배터리’라고 부르는 이유다.
안전성에 주행거리까지, 고체가 바꾸는 배터리 내부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액체 전해질은 리튬이온을 전달하고, 별도의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직접 닿아 합선되는 것을 막는다. 전고체 배터리에서는 고체 전해질이 이온의 이동 통로와 분리막 역할을 함께 맡는다.
고체 전해질의 또 다른 장점은 음극에 리튬메탈, 즉 리튬을 금속 상태로 직접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부피와 무게에 더 많은 에너지를 담을 가능성이 생긴다. 삼성SDI가 개발하는 무음극(anode-free) 구조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음극에 활물질을 미리 채우지 않고 충전할 때만 리튬 금속이 얇게 쌓이도록 해 내부 공간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제시되는 성능 목표도 크다. 삼성SDI는 부피 1리터당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를 뜻하는 에너지밀도를 900Wh/L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현재 양산 중인 각형 배터리 P5보다 40% 이상 높은 수준이다. 토요타가 제시한 1세대 목표는 무게 기준 약 450Wh/kg, 완충 주행거리 약 1000km,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약 10분 충전이다. 1000km는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다.
다만 고체 전해질은 상온에서 액체보다 이온전도도, 즉 리튬이온을 얼마나 원활하게 통과시키는지가 낮을 수 있다. 더 안전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담더라도, 이온이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면 출력과 충전 속도가 떨어진다. 전고체 개발은 장점 하나를 얻는 일이 아니라 안전성·저장량·충전 성능을 동시에 맞추는 작업이다.
삼성SDI와 토요타가 겨냥한 2027년
삼성SDI는 경기 수원 R&D센터에 2023년 3월 전고체 전용 파일럿 라인인 S라인을 구축해 시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A샘플과 B샘플, C샘플을 차례로 개발한 뒤 2027년 하반기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김은하 삼성SDI 전고체전지 생산개발그룹장은 현재 기술을 개발 중이며 2027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기술의 핵심은 무음극 설계만이 아니다. 은-탄소 코팅으로 리튬이 한쪽에 몰리지 않고 고르게 분포하도록 하고, 소재를 연속적으로 눌러 가공하는 롤프레스 공정을 채택했다. 2025년 10월에는 BMW와 테스트 차량 검증 협력에 나섰다. 적용 대상도 전기차에서 휴머노이드와 이동형 로봇 등 피지컬 AI 분야로 넓혀 검토하고 있다.
토요타는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에 주력하며 2027~2028년 첫 양산형 전고체 전기차 출시를 목표로 잡았다. 2030년 이후 2세대에서는 주행거리 1200km, 10분 미만 충전, 500Wh/kg 이상의 에너지밀도를 제시했다. 이데미쓰코산은 핵심 원료인 황화리튬 생산 공장을 일본에 건설하고 있으며 2027년 6월 가동을 목표로 한다. 스미토모금속광산도 협력에 참여한다.
한국 기업들의 시간표도 이어진다. LG에너지솔루션은 흑연 음극 기반 제품을 2029년에 내놓고 2030년에는 무음극 구조를 상용화한다는 투트랙 전략을 세웠다. SK온은 미국 솔리드파워와 공동 개발해 2025년 파일럿 플랜트를 준공했고, 2029년 황화물계 전고체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중국의 CATL은 2027년 소규모 생산과 2030년 대량 생산, BYD는 2027년 소량 생산 뒤 고급 모델부터 순차 탑재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배터리를 공급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 검증 능력을 키우고 있다. 경기 안성시에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해 2026년 말 준공을 목표로 미래 모빌리티 배터리 캠퍼스를 조성하고 있다. 실제 차량의 요구조건을 반영해 셀 설계와 공정을 검증하고, 기술을 축적한 뒤 2030년경 전고체 생산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와의 협력도 병행한다.
맞닿지 않는 고체, 나뭇가지처럼 자라는 리튬
첫 번째 관문은 계면저항(interface resistance)이다. 액체 전해질은 전극 표면의 굴곡까지 적시지만, 고체 전해질과 고체 전극을 맞대면 눈에 보이지 않는 틈이 남는다. 이 틈이 리튬이온의 이동을 가로막는 저항이 된다.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면서 재료가 팽창하고 수축하면 접촉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두 번째는 덴드라이트(dendrite), 즉 리튬이 나뭇가지처럼 뾰족한 결정으로 자라는 현상이다. 반복 충전 과정에서 자란 리튬이 고체 전해질을 뚫으면 양극과 음극이 연결돼 내부 단락, 쉽게 말해 배터리 안의 합선을 일으킬 수 있다. 무음극 설계로 에너지밀도를 끌어올릴수록 리튬을 고르게 쌓아야 하는 이 과제는 더 까다로워진다.
비용도 큰 벽이다. 현재 단계의 전고체 생산비는 kWh당 400~600달러 수준으로 제시된다. 비교 대상인 LFP 배터리는 81달러, NCM 배터리는 128달러다. 다른 산정에서는 전고체가 액체 배터리보다 3~5배 비싼 것으로 평가된다. 황화물계 핵심 원료인 황화리튬은 kg당 수백 달러이며 전고체 원가의 약 40%를 차지한다. 업계가 장기적으로 kg당 100달러 이내를 요구하는 배경이다.
황화물계는 제조 환경도 까다롭다. 공정실의 수분을 극도로 낮추는 드라이룸 노점을 영하 65도 수준까지 내려야 하며, 설비 유지비는 일반 배터리 공정의 4~5배 수준이다. 황과 수분이 반응하면 유독성과 폭발성을 지닌 황화수소가 발생할 수 있어 이를 완벽히 차단해야 한다. 국내 황화리튬 합산 생산능력은 약 200톤이지만 2030년 예상 수요는 1만5000톤을 웃돌아 원료 공급망 확충도 필요하다.
2027년은 대중화가 아니라 검증의 출발점
높은 문턱 때문에 액체 전해질을 일부 남긴 반고체(semi-solid) 배터리가 현실적인 중간 단계로 부상했다. 간펑은 에너지밀도 650Wh/kg의 반고체 배터리 양산에 들어갔고, 에스볼트는 1세대 300Wh/kg 제품의 양산 시점을 3분기로 앞당겼다.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고체 배터리를 표방하는 기업들도 부분적으로 액체전해질을 사용하는 반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는 전고체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하고 2029년까지 전고체·리튬황 등 차세대 배터리에 2800억원을 투입한다. 2026년 2월에는 전고체 소재 공장 구축 사업에 1000억원의 저리대출이 의결됐다. 한국 국적 출원인의 누적 특허출원은 5770건으로 일본 9881건, 중국 6749건에 이어 세계 3위다. 연평균 증가율은 18%로 미국 12%, 일본 9%, 유럽 8%보다 높다.
SNE리서치는 전고체 전지 시장이 2021년 2GWh에서 2030년 135GWh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금액 기준으로도 2022년 2750만달러에서 2030년 400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2027년을 곧바로 완전한 대중화 시점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업계의 계획은 최고급 자동차나 로봇 같은 제한된 분야에서 소량 생산을 시작한 뒤 적용 범위를 넓히는 단계에 가깝다.
결국 2027년의 질문은 ‘꿈의 배터리가 완성됐는가’가 아니다. 고체와 고체 사이의 계면저항을 낮추고, 덴드라이트를 막으며, 황화리튬과 드라이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공정으로 실제 제품을 반복 생산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전고체가 보급형 전기차까지 내려오는 시점은 2030년대 중반 이후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앞으로 1~2년은 꿈이 곧바로 일상이 되는 시간이 아니라, 그 꿈이 공장에서 작동하는 기술인지 가려내는 분수령이다.
보조금 지도: 일본은 1,510억 엔 기금, 미국은 '500Wh/kg 컨소시엄'
기업들의 시간표 뒤에는 각국 정부의 돈이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는 그린이노베이션 기금의 '차세대 축전지·차세대 모터 개발' 사업에 상한 1,510억 엔, 우리 돈 1조 원대의 예산을 걸었다. 에너지밀도를 현재의 2배 이상인 리터당 700~800Wh로 끌어올리는 고용량 전지가 첫 번째 개발 대상이고, 전고체 전지가 그 대표 사례로 명시돼 있다. 사용 후 전지에서 리튬 70%, 니켈·코발트 95% 이상을 회수하는 재활용 기술까지 같은 사업으로 묶었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지원하는 배터리500 컨소시엄은 이름부터 목표다. 무게 1kg당 500Wh의 전지를 충·방전 1,000회, 셀 비용 kWh당 100달러 미만으로 만든다는 조건을 못 박았고, 전고체 진영이 겨냥하는 것과 같은 리튬금속 음극이 주력 연구 대상이다.
특허 지형도 다시 그려지고 있다. 특허청의 2026년 2월 분석에서 출원 증가율 1위는 연평균 33.6%의 중국이었고, 한국(18%)은 2위였다. 다만 상위 10개 출원인에는 LG에너지솔루션(2,136건·2위), 삼성전자, 삼성SDI, 현대자동차까지 한국 기업이 네 곳 올라, 기업 단위 존재감은 여전히 뚜렷하다.
"한·중·일 핵심기술 경쟁 심화"…출원 숫자 다음은 양산 데이터 싸움
특허청은 이 분석에서 "한·중·일을 중심으로 전고체전지 상용화에 필요한 핵심기술 확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허 분석 결과를 산업계와 공유하는 협력체계도 만들겠다고 밝혔다.
겹쳐 보면 각국의 손패가 다르다. 일본은 기금으로 소재부터 재활용까지, 미국은 성능 목표를 못 박은 연구 컨소시엄으로, 한국은 R&D 예산과 저리대출로 각기 다른 고리를 쥐고 있다. 다음 승부처는 출원 순위가 아니라 2027년 전후 소량 양산에서 나올 실제 주행·수명 데이터다. 고체끼리 맞닿은 셀이 실차에서 몇 번의 충·방전을 버티는지 확인되는 순간, 쌓아 둔 특허의 값어치도 다시 매겨진다.
자료: 삼성SDI·토요타·이데미쓰코산·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SK온·한국전기연구원·SNE리서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