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원전을 레고처럼…AI 전력난이 다시 부른 SMR의 도전

김동현 기자 · 입력 2026.07.30 19:20 · 수정 2026.09.07 14:40
공장 생산에서 부산 기장 상용화까지, 안전성과 경제성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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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한국원자력연구원)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원전을 지을 수 있을까. 거대한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붓고 설비를 하나씩 설치하는 대신, 원자로의 주요 부분을 공장에서 표준 모듈로 만들어 트럭이나 배로 옮긴 뒤 현장에서 짜맞추자는 구상이 있다. 소형모듈원전, SMR이다. 이 오래된 구상을 다시 불러낸 것은 인공지능이다. 엔비디아 GPU 랙 하나의 전력 소비가 2020년 13kW에서 2025년 130kW로 5년 만에 10배 늘었다. AI 서버가 빨라지는 만큼, 이를 쉬지 않고 돌릴 전기를 어디서 구할지가 새로운 병목이 됐다.

SMR(Small Modular Reactor·소형모듈원자로)은 전기출력 300MWe 이하인 원자로를 모듈 단위로 제작하는 차세대 원전이다. 기존 대형 원전의 출력은 보통 1,000~1,400MWe급이다. 원자로 안에서 우라늄을 핵분열시켜 열을 만들고, 물을 끓여 얻은 증기로 터빈과 발전기를 돌린다는 원리는 같다. 달라지는 것은 크기와 제작 방식이다. 원자로 한 기를 작게 나누고 같은 규격으로 반복 생산해 건설 기간과 현장 작업을 줄이겠다는 발상이다. 전기가 끊기고 사람이 개입하지 못해도 중력·자연대류·확산 같은 물리 법칙만으로 원자로를 식히는 '피동안전(수동안전)' 설계가 여러 SMR 노형의 핵심 안전장치로 꼽힌다.

AI가 만든 전력 시간표

국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2023년 5TWh에서 2040년 31.6TWh로 늘어날 전망이다. TWh(테라와트시)는 국가나 대형 산업의 연간 전력량을 나타낼 때 쓰는 큰 단위다. 세계 데이터센터의 사용량도 2024년 약 415TWh에서 2030년 약 945TWh로 증가해 일본 한 나라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망은 이미 압박을 받고 있다. 국내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2027년 사용하겠다고 신청한 전력은 7,343MW지만 실제 공급 가능 물량은 4,718MW로, 약 36%가 부족할 전망이다. 수도권 신규 데이터센터의 전력계통영향평가 신청 195건 가운데 승인된 것은 4건, 2.1%에 그쳤다. 발전소를 세우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생산한 전기를 데이터센터까지 보낼 송전망도 함께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격만 보면 원자력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한국전력거래소의 2024년 연료원별 정산단가는 원자력 1kWh당 54.98원, LNG(액화천연가스)는 214.21원이었다. 원자력이 LNG의 약 4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대형 원전은 건설에 10년 이상 걸려 급증하는 수요에 곧바로 대응하기 어렵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짧은 건설 기간과 상대적으로 낮은 입지 부담을 내세워 이 틈을 겨냥한다.

기업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글은 2024년 10월 카이로스파워와 2035년까지 최대 500MW, 원자로 6~7기 규모의 전력구매계약을 맺었다. 미국에서 하나의 첨단원자로 설계를 여러 곳에 배치하기로 한 첫 기업 계약이다. 카이로스파워는 용융염 냉각과 세라믹 페블형 연료를 사용하는 첫 SMR을 2030년 가동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70MW 모듈 네 개, 부산 기장으로

한국의 첫 SMR 성과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SMART였다. SMART는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소형 일체형 원자로다. 전기 90MWe를 생산하면서 하루 4만 톤의 바닷물을 마실 물로 바꿀 수 있어, 인구 10만 명 도시에 전기와 물을 함께 공급하도록 설계됐다.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공동으로 SMART100 표준설계의 조건부 인가를 받아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다음 단계가 혁신형 SMR, i-SMR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2023년부터 2028년까지 6년 동안 3,992억 원을 투입해 2028년 표준설계인가와 2030년대 상용화·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단은 2026년 2월 27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표준설계인가를 신청했으며, 2028년 말까지 인가를 마치는 것이 목표다.

i-SMR 발전소는 전기출력 170MWe인 모듈 네 기를 묶어 총 680MWe를 생산한다. SMR의 300MWe 기준은 발전소 전체가 아니라 개별 모듈에 적용된다. 설계는 일체형 가압경수로다.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가압기, 제어봉구동장치 등 핵심 설비를 하나의 압력용기 안에 넣어 냉각수가 대형 배관 파열로 빠져나가는 사고의 원인 자체를 줄였다. 최소 30cm 두께의 강철 격납용기가 원자로를 둘러싼다.

첫 상용 부지도 정해졌다. 2026년 6월 17일 한국수력원자력 신규원전건설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부산 기장군을 국내 첫 상용 SMR 부지로 확정했다. 부지 적정성·환경성·건설 적합성·주민 수용성을 각각 25점으로 평가한 결과 기장군이 87.11점, 경주시가 84.56점을 받았다. 부지 사업 규모는 0.7GW(700MWe)로 발표됐으며, 2030년 착공, 2035년 상업운전이 목표다. 이곳은 신고리 7·8호기 예정지였다가 계획이 백지화된 부지로, 송전시설 등 원전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의 시선은 갈렸다. 정종복 기장군수는 18만 군민과 기장군의회에 감사를 전하며 행정 역량을 집중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탈핵부산시민연대는 이미 원전이 밀집한 기장군에 핵시설을 추가하는 결정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유치 경쟁에서 탈락한 경주시는 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계속 추진하고 후속 공모에 재도전한다는 방침이다.

작으면 정말 더 안전할까, 작으면 정말 더 쌀까

i-SMR의 안전 논리는 '작아서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노심, 즉 핵분열이 일어나는 부분이 작아 발생하는 열 자체가 적고, 냉각수 탱크를 원자로보다 높은 곳에 두면 정전 시에도 물이 중력에 따라 흘러내려 자연히 식는다. 김한곤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단장은 지하 매립형인 i-SMR은 원자로에서 200m만 벗어나면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다. 기존 대형 원전의 비상계획구역, 즉 사고에 대비해 대피·방호 대책을 세우는 구역이 반경 20~30km인 것과 대비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200m는 사업단이 설계 특성을 토대로 제시한 목표치이며 법제화된 안전 기준은 아니다. 사업단은 이 특성을 반영하려면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환경단체의 반론은 다른 SMR 노형의 전례를 겨냥한다. 그린피스코리아는 원자로가 작아져도 원자력 고유의 안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소듐(나트륨) 냉각 방식 SMR은 냉각재가 공기나 수분에 노출될 때 폭발·화재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소듐냉각 고속로 몬주는 약 11조 원을 투입하고도 냉각재와 함께 굳은 핵연료를 꺼낼 방법을 찾지 못해 사실상 폐기됐다. 작은 원자로 여러 기를 한 부지에 묶는 방식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모듈 한 기의 방출량이 작다는 사실이 부지 전체의 위험까지 작다는 결론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원자로가 작을수록 중성자 누설이 커져 방사성 핵종, 즉 방사능을 띠는 원소의 생성이 늘 수 있다는 기술적 지적도 있다. 고준위(방사능이 매우 강한)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 역시 SMR도 피해가지 못한다. 핀란드는 2027년 세계 최초의 고준위 방폐장 운영을 예정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부지를 정하지 못했다.

경제성 논쟁은 미국 뉴스케일의 유타주 프로젝트가 반면교사다. 2015년 발표 당시에는 2023년까지 원자로 12기를 30억 달러에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취소 시점인 2024년 11월에는 비용 추정치가 세 배로 불어났다. 원자로 한 기의 출력을 50MW에서 77MW로 높였는데도 전력 구매자를 찾지 못해 사업이 좌초했다. 그린피스코리아가 제시한 뉴스케일의 1kW당 건설 단가는 2003년 1,718달러에서 2020년 8,500달러로 약 다섯 배 상승했다. 원자로를 작게 만들면 공장 대량생산의 이점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단위 출력당 건설비와 인건비 비중이 커진다. 대형 설비 하나로 많은 전기를 생산해 비용을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포기한 대가다.

LCOE(균등화발전비용·전력 1MWh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평균 비용)에서도 간극이 보인다. 미국 원자력혁신연합의 2026년 1월 보고서는 SMR의 목표 비용을 MWh당 67~84달러로 제시했다. kWh로 환산하면 약 90~114원이다. 그러나 실제 추진된 프로젝트는 MWh당 100달러, 약 136원/kWh를 넘는 경우가 많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제시한 신규 대형원전 약 36달러/MWh, 수명연장한 고리1호기 21달러/MWh보다 높다. 기준과 사업 단계가 다른 수치인 만큼 단순한 가격표처럼 비교할 수는 없지만, SMR이 목표 비용을 실제 건설 현장에서 입증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표준화도 역설에 부딪혔다. 세계에서 개발 중인 SMR 설계가 130여 개에 이른다. 서로 다른 모델이 난립하면 같은 부품을 반복 생산해 단가를 낮춘다는 본래 장점이 약해진다.

한국은 원전 기술력을 갖췄지만 아직 i-SMR 표준설계인가 심사 단계다. 2030년 착공과 2035년 상업운전이라는 시간표를 지키려면 안전 규제와 주민 수용성, 폐기물 대책, 반복 생산이 실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는 증명이 함께 필요하다. SMR의 승부는 원자로를 작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작은 모듈을 충분히 안전하고, 빠르고, 같은 규격으로 반복해서 지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미 돌아가는 원자로들 — 2026년의 세계 SMR 지도

경쟁의 시계는 나라마다 다르게 돈다. 러시아는 2020년 배 위에 원자로를 얹은 세계 첫 부유식 SMR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를 상업운전에 올렸다. 중국핵공업집단은 하이난성 창장에 짓는 125MW급 ‘링룽 1호’(ACP100)에서 핵연료를 넣기 전 냉각계통을 점검하는 저온기능시험을 2025년 10월 마쳤고, 2026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내걸었다. 계획대로면 세계 첫 육상 상용 SMR이다.

서방의 첫 주자들도 삽을 떴다. 캐나다는 2025년 4월 온타리오주 달링턴 부지의 300MW급 BWRX-300에 건설허가를 내주며 G7 국가 첫 상용 SMR 건설에 들어갔다. 목표는 2030년 말 전력망 연결이다. 영국 정부는 2025년 6월 롤스로이스 SMR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프로그램에 25억 파운드 이상을 배정했고, 2026년 4월 웨일스 윌파 부지에 3기(합계 1.4GW 이상)를 짓는 계약을 맺었다. 2035년 상업운전이 목표인 부산 기장의 첫 SMR은, 링룽 1호 기준으로는 9년 뒤의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다.

특별법과 규제 로드맵, 같은 날 나온 두 장의 설계도

한국의 제도 정비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5년 2월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5~2036년 전력 설비에 SMR 상용화 실증 1기(0.7GW)를 반영하되, 표준설계인가와 2030년대 초반 건설허가 획득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이어 국회는 2026년 2월 12일 소형모듈원자로 특별법을 통과시켜 5년 단위 기본계획 수립, SMR 특구 지정, 국민 수용성 제고 시책의 근거를 만들었고, 같은 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28년까지 규제체계를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SMR 규제체계 구축 로드맵’을 내놨다.

남은 과제도 공식 문서에 적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SMR 안전규제 보고서에서 신기술에 맞는 유연한 규제 모델, 진흥과 규제의 엇박자를 막을 부처 간 협력과 함께, 전력 소비지 가까이 들어서는 SMR의 특성상 방사성폐기물과 핵연료 운반까지 포함해 대형 원전보다 더 넓은 주민 수용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전성·경제성의 문턱에 더해, 규제와 수용성이라는 두 개의 문이 2030년 착공 전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료: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기술, 부산 기장군, KAIST, 에너지경제연구원, 그린피스코리아·중국핵공업집단(CNNC)·캐나다원자력안전위원회·온타리오파워제너레이션(OPG)·영국 정부·로사톰·원자력안전위원회·국회입법조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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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기자 dh.kim@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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