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다이아몬드 알갱이 하나가 핵융합을 4배로 키웠다…연료 캡슐이라는 승부처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7.23 16:18 · 수정 2026.09.07 11:11
점화 4배 이득 뒤에 있던 캡슐 계면의 물리 — NIF가 밝힌 실패 메커니즘과 발전소로 가는 남은 거리
[기획] 다이아몬드 알갱이 하나가 핵융합을 4배로 키웠다…연료 캡슐이라는 승부처
사진=미국 로런스리버모어연구소(LLNL) 제공, 촬영 Jason Laurea. 미 에너지부(DOE) 산하 연방시설 저작물(퍼블릭 도메인). 캡션: 부분 조립된 NIF 극저온 표적 어셈블리

핵융합로에 레이저를 쏘아 넣었더니 들어간 에너지의 4배가 터져 나왔다. 미국 로런스리버모어연구소 국립점화시설(NIF)이 2025년 4월 7일 세운 기록이다. 그런데 이 도약을 만든 것은 더 센 레이저가 아니었다. 후춧가루만 한 다이아몬드 구슬 껍질에 텅스텐을 '계단'이 아니라 '경사'로 깐 것이었다.

NIF는 이날 실험에서 2.08메가줄(MJ)의 레이저 에너지를 표적에 넣어 8.6MJ의 핵융합 에너지를 얻었다. 표적 이득 4.13. 2022년 12월 인류가 처음으로 핵융합에 불을 붙였을 때가 3.15MJ였고 2023년 7월 기록이 3.88MJ였으니, 단숨에 두 배를 넘긴 셈이다. 연구소가 이 성과의 내막을 자세히 공개한 것은 실험 1년 뒤인 올해 4월이었다.

X선을 막으려던 방패가 스스로 문제를 만들었다

핵융합은 수소 원자핵을 별의 중심에 맞먹는 압력으로 짓눌러 헬륨으로 합치고, 그때 줄어든 질량을 에너지로 바꾸는 반응이다. NIF는 192개의 레이저를 손톱만 한 금속 원통(홀라움) 안으로 쏜다. 레이저가 직접 연료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원통 안쪽이 달아오르며 뿜는 X선이 그 안에 매달린 캡슐 표면을 날려버리고, 그 반동으로 캡슐이 초속 400㎞ 넘는 속도로 안으로 무너져 내린다. 간접 점화라 부르는 방식이다.

여기서 골칫거리가 하나 생긴다. X선 가운데 파장이 짧고 힘이 센 이른바 'M밴드' X선은 캡슐을 그냥 뚫고 들어가 안쪽 연료를 미리 데운다. 미리 데워진 연료는 잘 눌리지 않는다. 압축 효율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연구진은 캡슐 껍질에 텅스텐을 아주 조금 섞어 이 X선을 흡수하게 해 왔다. 문제는 그 방패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는 텅스텐을 특정 층에만 계단처럼 몰아 넣었는데, 도펀트가 있는 층과 없는 층 사이에 밀도의 절벽이 생긴다. 폭발적으로 압축되는 찰나에 그 경계가 흔들린다.

NIF에서 최근 실험들을 설계한 댄 클라크 연구원은 시뮬레이션이 그 지점을 정확히 가리켰다고 했다. "도핑되지 않은 안쪽 껍질에서 도핑된 껍질로 넘어가는 구간이 대단히 불안정했다. 많은 '믹스'가 바로 그 경계에서 시작된다." 믹스란 껍질 재료가 연료 안으로 섞여 들어가 연료를 더럽히는 현상을 말한다. 불순물이 섞이면 불이 제대로 붙지 않는다.

스위치가 아니라, 조광기처럼

해법은 텅스텐을 빼는 것이 아니라 까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껍질 두께 1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에 걸쳐 텅스텐 농도를 0에서 최대 약 0.44원자%까지 서서히 올렸다가, 바깥쪽으로 다시 부드럽게 내린다. 밀도의 절벽을 없애는 것이다. 연속 그라데이션 도핑이라 부른다.

표적 제작을 맡은 살 박사무사 화학공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불을 켜고 끄는 스위치와 밝기를 조절하는 조광기의 차이입니다. 이건 '완화책을 다시 완화하는' 방법이죠. X선을 잡으려고 도펀트를 넣고, 그 도펀트를 경사지게 깔아 밀도를 잡는 겁니다."

말은 간단하지만 만들기는 그렇지 않다. NIF의 다이아몬드 캡슐은 실리콘카바이드 알갱이를 심으로 삼아, 플라즈마를 이용한 화학기상증착으로 미세한 다이아몬드 결정을 며칠에 걸쳐 한 겹씩 입혀 만든다. 그 며칠 사이에 텅스텐 농도를 설계도가 그려 놓은 곡선 그대로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올렸다 내려야 한다. 연구소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다이아몬드 머티리얼스, 미국 제너럴 아토믹스와 함께 요구된 도펀트 분포를 첫 시도에 맞춰냈다.

새 캡슐의 첫 전면 시험은 2025년 2월 23일이었고 5MJ이 나왔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 표적을 쓴 실험이 4월 7일의 8.6MJ이었다. 클라크는 이 도약을 두고 "압축이 더 잘 되고, 연료가 더 깨끗해지고, 그래서 모든 것이 더 뜨겁고 밝게 탄다"고 요약했다. 레이저 에너지는 그대로였다.

4배와 발전소 사이

다만 이 4.13을 발전소로 읽으면 곤란하다. 이 숫자는 표적에 닿은 레이저 에너지 대비 나온 에너지일 뿐이다. 그 거대한 레이저를 켜는 데 시설 전체가 쓰는 전력은 300~400MJ 규모로 알려져 있다. 콘센트에서 뽑은 전기보다 많이 만들어야 발전소인데, 거기까지는 아직 멀다.

재현성도 성과와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 NIF는 2022년 12월 첫 점화 이후 올해 6월까지 모두 열한 차례 점화에 성공했다. 핵융합 점화가 한 번의 요행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현상이 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성적표는 고르지 않다. 8.6MJ은 열한 번 가운데 여덟 번째였고, 그 뒤로도 이득 1.74짜리 실험이 있었으며, 가장 최근인 올해 6월 20일 실험은 7.9MJ, 이득 약 3.8이었다. 최고 기록을 매번 다시 찍는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다이아몬드 자체도 완결된 답이 아니다. 이 연구소는 지난 8월 다이아몬드가 극한 압력에서 어떻게 녹는지를 다룬 별도 연구를 내놓으며, 그 거동을 이해하는 것이 더 높은 이득으로 가는 길일 수 있다고 밝혔다. 캡슐 소재를 둘러싼 탐색은 아직 진행형이다.

한국은 다른 방식으로, 다른 자리에 있다

한국의 핵융합 연구는 NIF와 원리가 다르다. NIF가 레이저로 순간에 짓누르는 관성가둠이라면, 한국의 KSTAR는 자기장으로 플라즈마를 가둬 오래 유지하는 자기가둠(토카막)이다. 한쪽은 '얼마나 세게 터뜨리나', 다른 쪽은 '얼마나 오래 붙잡나'를 겨룬다.

그 자기가둠 쪽에서 한국은 성과를 내 왔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2023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이어진 실험에서 이온 온도 1억도 플라즈마를 48초간 유지했다고 2024년 3월 밝혔다. 2021년 기록이 30초였다. 정부는 2024년 7월 22일 제20차 국가핵융합위원회에서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을 확정하고 1조 2,000억 원 규모의 민관 합동 기술개발 계획을 내놨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에는 건설비의 9.1%를 분담하며 진공용기 섹터와 삼중수소 저장·전달 시스템 등을 맡고 있고, 지난 8월에는 이 시스템 28기의 설계·제작 계약이 체결됐다. 한국형 혁신 핵융합로 설계단도 올해 6월 가동에 들어갔다.

반면 이번 기사의 승부처인 레이저 관성핵융합과 표적 제조 쪽에서는 국내 존재감이 옅다.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원이 4.2페타와트급 고출력 레이저를 갖추고 있지만 이는 레이저-플라즈마 물리 연구용이지 점화 실험 시설이 아니다. 연료 캡슐 제조 역량을 다룬 정부·기관의 공식 언급도 확인되지 않는다. 정밀 소재·가공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 온 나라이지만, 이 영역에서는 아직 공식 기록이 없다.

승부처가 물리에서 제조로 옮겨 간다면

미 에너지부(DOE)가 올해 6월 내놓은 '핵융합 과학기술 로드맵'은 상용화 목표 시점을 2030년대 중반으로 잡았다. 이 문서가 5~10년짜리 장기 과제로 명시한 항목 가운데 하나가 '발전소에 쓸 수 있는 표적 시스템'이다. 하나를 잘 만드는 것과, 발전소가 요구하는 속도로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진단이다.

산업계는 이 진단을 이미 사업으로 옮기고 있다. NIF 점화 실험을 설계했던 애니 크리처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나와 세운 미국 이너시아 엔터프라이지스는 캡슐 제조 시간을 일주일 이상에서 두세 시간대로 줄였다고 밝혔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 제프 로슨은 지금의 방식으로는 연간 몇 개밖에 못 만든다며 현재의 캡슐을 '시제품'이라고 표현했다. 관성핵융합 상용화를 겨냥한 미국 엑시머 에너지는 지난 6월 에너지부의 예비개념설계 단계 승인을 받았고, 독일 포커스드 에너지는 2028년 첫 레이저 가동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번 NIF 기록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선명하다. 핵융합의 다음 문은 더 큰 레이저의 물리가 아니라, 후춧가루만 한 구슬을 원자 단위로 다듬어 값싸게 대량으로 찍어내는 제조 기술이 열지도 모른다는 것. DOE가 장기 과제로 못 박은 자리가 바로 정밀 가공과 계측, 대량생산 공정의 문제다. 다만 지금의 국내 핵융합 전략과 예산은 자기가둠 쪽에 맞춰져 있고, 표적 제조는 아직 목표 항목에 들어 있지 않다.

자료: 로런스리버모어연구소 국립점화시설(NIF), 미국 에너지부(DOE),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국가핵융합위원회, 광주과학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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