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도마뱀은 어떻게 흙에서 물을 마실까…서울대, 수수께끼 풀고 '식수 장치'로 만들었다

물 한 방울 고이지 않는 사막에서, 뿔도마뱀은 젖은 모래 위에 배를 깔고 잠시 엎드리는 것만으로 목을 축인다. 발끝에 닿은 물기가 피부의 미세한 홈을 타고 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능력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정작 도마뱀이 그 물을 '어떻게 삼키는가'는 수십 년간 생물학계가 답하지 못한 물음이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연구팀이 이 오랜 수수께끼를 유체역학으로 풀어내고, 같은 원리로 젖은 흙에서 마실 물을 뽑아내는 장치까지 만들었다.
수십 년 묵은 생물학의 숙제
서울대는 김호영 기계공학부 교수와 김성재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공동연구팀이 사막뿔도마뱀의 수분 섭취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승주 기계공학부 박사과정생이 제1저자로 참여했고, 연세대 김원정 교수와 DGIST 정소현 교수, 하버드 의과대학 김원석 박사 등이 함께했다.
사막뿔도마뱀이 젖은 흙에 몸을 대면 피부 표면의 미세한 통로를 따라 물이 입 쪽으로 이동한다는 사실 자체는 이전에도 관찰됐다. 그러나 피부를 타고 온 물이 실제로 입안으로 어떻게 넘어가 삼켜지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도마뱀의 턱 움직임에서 해답을 찾았다.
천천히 벌리고, 빠르게 닫는다
핵심은 '비대칭적인 턱 운동'이었다. 도마뱀은 입을 천천히 벌렸다가 빠르게 닫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 속도 차이가 물을 한 방향으로만 밀어 넣는 펌프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입을 여닫는 속도가 같다면 물은 들어온 만큼 다시 빠져나가지만, 여는 동작과 닫는 동작의 리듬을 다르게 하면 순(純)유입이 생긴다. 연구팀은 여기에 다공성 매질에서 물이 스스로 빨려 오르는 모세관 현상(가는 틈으로 액체가 저절로 스며 올라가는 힘)이 맞물리면서 물이 효율적으로 모인다는 점을 밝혔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실제 기계로 옮겼다. 스펀지 같은 다공성 재료로 젖은 흙의 물기를 빨아들이고, 모터로 움직이는 인공 턱이 도마뱀처럼 비대칭 리듬으로 여닫으며 물을 끌어모으는 구조다. 도마뱀의 생존 전략을 그대로 공학 장치로 번역한 셈이다.
물을 모으면서 독까지 걸러낸다
이 장치의 쓸모는 물을 모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다공성 매질이 물을 빨아올리는 과정에서 흙 속에 섞인 유해 중금속을 함께 걸러내, 95% 이상을 제거하는 성능을 보였다. 오염된 토양에서 물을 얻으면서 동시에 정수까지 되는 것으로, 물과 전력이 모두 부족한 극한 환경을 겨냥한 설계다.
김호영 교수는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사막 도마뱀의 경이로운 생존 전략을 유체역학적으로 규명하고, 이를 이용한 기계장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김성재 교수는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최소한의 식수를 확보할 수 있는 소형 정수 장치로의 응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휴대용 정수기로 가는 길
연구팀은 이 시스템을 휴대용 수분 채집기나 소형 정수 장치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재난·오지처럼 상수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 젖은 땅만 있으면 안전한 식수를 얻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다만 실험실에서 입증한 원리를 야외의 다양한 토양과 오염 조건, 실사용에 맞는 크기와 처리량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지난 6일 실렸다. PNAS는 편집장과 편집위원이 그 주 발표된 논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를 직접 골라 소개하는 '이주의 논문(In This Issue)' 섹션의 하이라이트 논문으로 이 연구를 선정했다.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자료: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국제학술지 PNAS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