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은 양자컴퓨터의 결승선이 아니라 검증의 출발선이다

양자컴퓨터의 경쟁에서 ‘몇 큐비트인가’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그 큐비트를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안정적이고 반복적으로 쓸 수 있는가다. 그런 점에서 상온에서 작동하는 128큐비트 다이아몬드 양자컴퓨터의 공개는 숫자보다 온도가 더 중요한 사건으로 읽힌다. 거대한 냉각 장비가 양자기술의 숙명이라는 인식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는 ‘상온’이라는 편의성의 언어가 곧 ‘상용화 완료’라는 결론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냉각고를 없애도 잡음은 남는다
양자정보는 중첩, 즉 0과 1의 가능성을 함께 지닌 상태를 이용한다. 이 상태는 열과 진동, 전자기 잡음에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많은 양자컴퓨터가 극저온 환경에 의존해 왔다. 반면 다이아몬드 계열에서는 결정 속 원자 결함을 작은 자석처럼 쓰는 스핀 큐비트 연구가 이어져 왔다. 스핀은 전자의 자석 방향에 정보를 담는 방식이고, 일부 결함은 상온에서도 빛과 마이크로파로 제어·판독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주목받아 왔다. 이번 공개가 중요한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양자컴퓨터를 특별한 실험실 장비에서 설치 가능한 시스템으로 옮길 여지를 넓힌다는 점이다.
그러나 냉각고가 사라진 자리를 제어의 난제가 채울 수 있다. 128이라는 수는 출발점일 뿐이다. 게이트 충실도, 즉 명령이 의도대로 실행되는 정확도, 결맞음 시간, 즉 양자상태가 유지되는 시간, 큐비트끼리 실제로 연결되는 범위와 오류율이 함께 공개돼야 성능을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상온 작동이 양자칩만을 뜻하는지, 광학·제어 장치까지 포함한 전체 시스템의 조건인지도 분명해야 한다. 실제 문제를 기존 컴퓨터보다 유용하게 풀었다는 검증 없이 큐비트 수만 비교하면 다시 숫자 경쟁에 갇힌다.
한국이 준비할 것은 ‘한 대 구매’가 아니다
필자는 이번 공개를 낙관하되, 구매 목록보다 검증 목록을 먼저 만들자고 제안한다. 국내 대학과 출연연, 기업이 동일한 문제를 여러 방식의 양자컴퓨터에 돌려 정확도·반복성·운영비를 비교하는 공개 시험대를 마련해야 한다. 다이아몬드 소재 가공, 레이저와 마이크로파 제어, 정밀 계측, 오류 보정 소프트웨어처럼 우리가 강점을 연결할 수 있는 공급망도 함께 키워야 한다.
상온 128큐비트의 진짜 가치는 양자컴퓨터를 당장 일상으로 가져왔다는 데 있지 않다. 상용화를 막는 병목이 냉각 하나가 아니라 소재, 제어, 검증, 소프트웨어의 묶음이라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 데 있다. 이제 필요한 태도는 환호나 냉소가 아니라 재현 가능한 성능을 요구하는 끈질긴 공학이다. 상온은 결승선이 아니라, 양자컴퓨터가 산업기술로 시험받기 시작하는 출발선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