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회전 방향'까지 읽는다…UNIST·서울대, 부품 없이 근적외선 원편광 잡아내는 광센서 개발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7.23 16:31
키랄 유기반도체 박막을 250도로 굽자 분자가 규칙적으로 재배열…편광 선택성 3배 높여 자율주행·바이오이미징용 소자 길 열어
빛의 '회전 방향'까지 읽는다…UNIST·서울대, 부품 없이 근적외선 원편광 잡아내는 광센서 개발
(사진=UNIST 제공)

빛에는 진행 방향만 있는 게 아니라 '회전 방향'도 있다. 나선처럼 왼쪽으로 도는 빛과 오른쪽으로 도는 빛을 가려 읽으면, 겉모습이 같은 두 분자를 구별하거나 위조를 잡아내는 일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이 회전을 읽으려면 대개 여러 개의 광학부품을 겹겹이 붙여야 했다는 점이다. 국내 연구진이 그 부품들을 걷어내고, 소자 하나가 스스로 빛의 회전 방향을 잡아내도록 만들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화학과 김봉수 교수와 서울대학교 오준학 교수 공동연구팀은 키랄 유기반도체 박막을 이용해 근적외선 대역의 원편광을 직접 검출하는 광센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안재용 서울대 연구원과 김광민 UNIST 연구원이 함께 참여했다.

왜 어려운 문제였나

원편광(circularly polarized light)은 진행하면서 전기장이 나선처럼 회전하는 빛으로, 도는 방향에 따라 좌원편광과 우원편광으로 나뉜다. 이 방향을 읽어내면 거울상처럼 좌우 구조만 다른 분자를 가려내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를 빛에 실어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기존 방식은 빛을 걸러주는 편광판과 위상을 바꾸는 광학부품을 소자 앞에 따로 붙여야 해 구조가 복잡하고 소형화가 어려웠다.

특히 근적외선은 난도가 더 높았다. 근적외선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이 긴 빛으로, 자율주행 라이다나 생체 조직 투과 관찰에 유용하지만, 이 대역에서 원편광을 잘 흡수하면서 전기 신호로 바꾸는 재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분자를 '구워서' 줄 세우다

연구팀은 키랄(chiral) 유기반도체에 주목했다. 키랄 분자는 왼손과 오른손처럼 거울에 비친 모습이 서로 겹치지 않는 비대칭 구조를 갖는데, 이 성질 덕분에 좌원편광과 우원편광을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이 흡수율 차이를 이용하면 편광판 같은 별도 부품 없이 소자 자체가 빛의 회전 방향을 구분할 수 있다.

핵심은 이 박막을 섭씨 250도로 열처리한 것이다. 열을 가하자 무질서하게 놓여 있던 분자들이 규칙적인 결정 구조로 다시 배열됐고, 그 결과 원편광을 가려내는 선택성이 열처리 전 0.03에서 0.1로 3배 이상 높아졌다. 연구팀은 여기에 전하가 지나는 거리를 짧게 만든 수직형 트랜지스터 구조를 더해, 약한 빛 신호를 빠르게 증폭하도록 했다.

근적외선에서 감도와 선택성 동시에

개발된 소자는 850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근적외선에서 작동한다. 빛의 회전 방향을 구분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광전류 비대칭 지수는 0.1, 얼마나 약한 빛까지 감지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검출도는 4.9×10¹¹ 존스에 이르렀다. 흡수한 빛보다 더 많은 전류를 만들어내는 지표인 외부양자효율은 최대 909%로, 입사한 빛 알갱이 하나가 여러 개의 전하를 끌어내며 신호를 증폭했다는 뜻이다. 반응 속도는 600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이내였다.

연구팀은 분자 말단의 원자 종류와 열처리 온도가 박막의 분자 배열과 원편광 선택성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규명해, 고성능 키랄 광전자소자를 만들기 위한 박막 후처리 기준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소자를 만들 때 '어떻게 구우면 성능이 좋아지는가'에 대한 설계 지침을 함께 내놓은 셈이다.

이 기술은 물체의 형태뿐 아니라 재질까지 구분해야 하는 자율주행 센서, DNA와 단백질을 관찰하는 바이오이미징, 위조 방지 보안, 광통신 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실험실 수준에서 확인된 성능인 만큼, 대면적 공정과 소자 안정성 등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에 지난 6월 28일 온라인 공개됐으며,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NRF)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자료: 울산과학기술원(UNIST), 서울대학교 (어드밴스드 사이언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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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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