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딘 속 질소 자리 바꿔 신약 후보 만든다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8.18 05:38
IBS 연구팀, 기존 약물 골격을 유지하는 ‘질소 원자 전위’ 합성법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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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기초과학연구원(IBS),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이미 쓰이는 항암제의 복잡한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지 않고, 분자 속 질소 원자의 자리만 바꿔 새로운 신약 후보를 탐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의 홍승우 단장 직무대행 연구팀이 개발한 ‘질소 원자 전위’ 합성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번 연구 결과가 18일 0시 한국시간으로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피리딘 구조의 원하는 위치에 새 질소를 넣은 뒤 기존 질소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고리에 붙어 있는 여러 치환기의 상대적인 위치를 한꺼번에 조절했다. 치환기는 분자의 기본 골격에 붙어 성질을 바꾸는 원자나 원자 집단을 뜻한다.

피리딘은 탄소 원자 5개와 질소 원자 1개가 육각형 고리를 이루는 방향족 화합물이다. 여러 의약품과 화학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골격으로 쓰인다. 같은 치환기를 가진 피리딘이라도 고리의 어느 위치에 붙어 있는지에 따라 화학적 성질과 생물학적 활성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위치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고리 안의 질소 원자다.

질소와 치환기의 위치 관계만 다른 분자들은 ‘위치 이성질체’라고 한다. 신약 개발에서는 이러한 이성질체를 여러 개 만들어 기능을 비교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전립선암 치료제 아비라테론처럼 치환기의 위치에 따라 효능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에는 피리딘에 붙은 치환기를 움직이기 어려워, 원하는 배치마다 출발 물질과 합성 경로를 새로 설계하고 각각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다.

연구팀은 치환기를 하나씩 옮기는 대신 위치 판단의 기준인 질소를 옮기는 방법을 택했다. 외부 공급원에서 가져온 새 질소를 피리딘 고리에 삽입하면, 원래 6개 원자로 이뤄진 고리가 잠시 7개 원자 고리로 늘어난다. 이어 고리가 다시 배열되는 동안 기존 질소가 빠져나가면서 질소의 위치가 달라진 새 피리딘이 만들어진다.

동위원소 추적 실험에서는 새로 투입한 질소가 고리 안에 남고, 기존 질소는 질소 기체인 N₂ 형태로 배출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기존 치환기와 나머지 골격은 그대로 두면서 질소만 교체한다는 반응 원리를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연구팀은 치환기가 하나인 단순한 구조뿐 아니라 치환기가 두 개 이상이거나, 서로 다른 화학적 성질의 치환기가 함께 붙은 복잡한 구조에서도 질소 위치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반응 조건을 최적화했을 때 이성질체 합성 수율은 88%였다. 반응물 규모를 10밀리몰(mmol)로 늘린 실험에서도 수율 74%를 유지해 대량 생산과 실용화 가능성을 확인했다.

실제 시판 약물에도 새 합성법을 적용했다. 항암제 비스모데깁과 아비라테론 아세테이트, 소염진통제 에토리콕시브의 복잡한 골격은 유지하면서 질소 위치만 다른 새로운 약물 후보 분자를 합성했다. 기존 약물의 구조를 바탕으로 여러 위치 이성질체를 빠르게 확보하고 서로의 활성을 비교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같은 출발 물질을 사용해도 용매에 따라 만들어지는 위치 이성질체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점도 확인했다. 계산화학 분석 결과, 용매가 달라지면 반응에 필요한 최소 에너지인 ‘에너지 장벽’의 높이도 달라졌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용매 조건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위치의 이성질체를 선택적으로 합성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홍승우 단장 직무대행은 이 방법으로 신약 개발에 필요한 위치 이성질체 모음을 별도의 전합성, 즉 각 물질을 처음부터 따로 만드는 과정 없이 신속하게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자의 구조가 달라질 때 활성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피는 구조-활성 관계(SAR) 연구도 빨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팀은 피리딘에서 확인한 고리 편집 전략을 다른 질소 함유 헤테로방향족 고리로 넓힐 계획이다. 헤테로방향족 고리는 탄소 이외의 원자가 포함된 안정적인 고리 구조다. 홍 단장 직무대행은 이 원리가 다양한 분자에 적용되면 의약화학과 유기합성에서 새로운 화학 구조를 탐색하는 분자 설계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자료: 기초과학연구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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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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