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항암제 반응, 환자 몸 대신 '칩'에서 미리 확인한다
국내 연구진이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환자의 종양세포와 뇌혈관 장벽을 작은 칩 위에 함께 재현해, 항암제를 실제로 투여하기 전에 환자별 치료 반응을 미리 가늠할 수 있는 기술을 내놨다. 칩에서 확인한 약물 반응은 실제 환자의 치료 경과와 높은 수준으로 일치했다.
KAIST는 기계공학과 안송이 교수팀이 성균관대학교 안중호 교수팀, 분당차병원 임재준 교수, 차의과학대학교 강윤정 교수팀과 함께 교모세포종 환자의 치료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환자 맞춤형 혈액-뇌종양 장벽(BBTB) 칩'을 개발했다고 18일 밝혔다.
유전자 검사로는 안 보이는 '혈관 장벽'까지 칩에 담아
교모세포종은 가장 치명적인 악성 뇌종양 가운데 하나다. 암세포가 정상 뇌조직으로 빠르게 파고드는 데다 종양의 특성이 환자마다 달라 치료가 어렵다. 뇌 특유의 구조도 치료를 까다롭게 만든다. 뇌에는 혈액 속 해로운 물질이 뇌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혈액-뇌 장벽이 있는데, 이 장벽은 정작 치료에 필요한 항암제가 뇌종양까지 충분히 도달하는 것도 방해한다.
교모세포종이 생기면 종양 주변의 혈관 장벽 역시 변하는데, 그 정도와 특성이 환자마다 다르다. 같은 치료제를 써도 환자마다 효과가 달라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기존에는 종양의 유전자나 바이오마커(질병 상태를 알려주는 생체 지표)를 활용해 치료 반응을 예측해 왔지만, 이런 정보만으로는 환자마다 다른 종양 주변 혈관 환경과 실제 약물 반응까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환자의 종양뿐 아니라 항암제가 종양까지 도달하는 '길'인 혈관 장벽까지 칩 위에 함께 구현했다. 환자에게서 얻은 교모세포종 세포와 뇌혈관 내피세포(혈관 안쪽 벽을 이루는 세포), 별아교세포(신경세포를 지지하는 뇌세포)를 미세유체 칩(미세한 관으로 소량의 액체를 흘리며 세포를 키우는 실험용 칩) 안에서 함께 배양해, 실제 종양과 정상 뇌조직이 맞닿는 경계 부위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었다. 혈관 주변 세포와 면역세포도 추가할 수 있도록 설계해 사람 뇌종양 주변의 혈관 환경을 더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게 했다.
환자 3명 칩 실험… 실제 치료 경과와 맞아떨어져
연구팀은 서로 다른 교모세포종 환자 3명의 종양세포로 각각의 환자를 모사한 칩을 만들었다. 이어 교모세포종 치료에 쓰이는 테모졸로마이드(TMZ·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항암제)와 베바시주맙(BEV·종양이 자라는 데 필요한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표적치료제)을 적용해 환자별 반응을 비교했다.
그 결과 기존 유전자 검사에서는 비슷한 치료 반응이 예상됐던 환자들도 칩에서 나타난 혈관 장벽의 특성과 치료제 반응은 서로 달랐다. 칩에서 확인한 환자별 반응은 실제 환자의 치료 경과와도 높은 수준으로 일치했다. 유전자 정보가 비슷해도 종양 주변 혈관 장벽의 상태에 따라 치료 반응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이를 환자 맞춤형 칩으로 미리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향후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예측 성능과 재현성이 검증되면, 환자의 종양세포로 만든 칩에 여러 치료제를 먼저 적용해 보고 효과가 높은 치료 전략을 고르는 맞춤형 치료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신약 후보물질이 실제 환자의 종양·혈관 장벽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전임상 평가에도 활용할 수 있다.
안송이 교수는 "이번 연구는 환자 유래 종양세포와 혈액-뇌종양 장벽을 함께 재현함으로써 환자마다 다른 치료 반응을 실제와 가깝게 평가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향후 보다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검증해 교모세포종 환자의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과 신약 개발을 위한 전임상 평가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기계공학과 류민수 박사과정과 성균관대 이가은 박사과정 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재료·나노 분야 국제학술지 '스몰(Small)'에 지난 6월 27일 게재됐으며 표지 논문(Front Cover)으로 선정됐다. 연구는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스턴코리아혁신연구지원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의 신진연구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자료: KA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