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GLP-1 췌장염 신호, 영국은 경고문을 고쳐 썼다…한국 약물감시의 시차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8.20 12:40 · 수정 2026.08.20 12:38
MHRA, 옐로카드 1296건에 '괴사성·치명 사례' 라벨 명시…국내 보고 7건, 식약처 '인과 미확립' 속 처방은 수백만 건
[기획] GLP-1 췌장염 신호, 영국은 경고문을 고쳐 썼다…한국 약물감시의 시차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위고비(세마글루티드)의 용량 단계별 프리필드 펜 제품군. (사진 출처=노보 노디스크 미디어 라이브러리)

같은 부작용 신호 앞에서 두 나라 규제기관의 시계가 다른 속도로 돌고 있다. 영국 의약품·보건의료제품규제청(MHRA)은 올해 1월 비만치료제 위고비·마운자로를 포함한 GLP-1 계열(식욕과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모방한 약물) 의약품 전체의 설명서를 고쳐 썼다. 급성 췌장염(췌장에 갑자기 생기는 염증) 경고에 '괴사성', '치명적'이라는 단어를 새로 써넣은 것이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19일 기자단 질의에 밝힌 국내 췌장염 보고는 7건이다. 식약처는 "보고된 사례와 의약품 간 인과관계가 확립된 것은 아니다"라며 지속 모니터링 방침을 확인했다. 한쪽은 경고를 강화했고, 한쪽은 지켜보고 있다.

간극의 바탕에는 데이터의 크기가 있다. 영국은 18년 치 보고 1296건을 근거로 움직였고, 한국은 출시 2년이 채 안 된 약에서 나온 7건을 들여다보는 단계다. 문제는 국내 처방이 이미 '수백만 건' 규모로 커졌다는 점이다. 약물감시(시판 후 의약품의 부작용을 추적·평가하는 활동)가 처방 속도를 따라잡고 있는지가 이 사안의 본질이다.

1296건이 고쳐 쓴 경고문

MHRA는 1월 29일 '의약품 안전성 업데이트'를 내고 둘라글루타이드, 엑세나타이드, 리라글루타이드, 세마글루티드(위고비 성분), 터제파타이드(마운자로 성분) 5개 성분의 전문가용 제품정보와 환자용 설명서를 일제히 업데이트했다. 드물게 괴사성(췌장 조직이 죽는 형태) 췌장염과 사망에 이른 사례가 보고됐다는 사실을 명시하는 내용이다.

근거는 자발보고 통계였다. 영국의 부작용 자발보고 제도인 '옐로카드'에는 2007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GLP-1 계열 관련 췌장염 보고가 1296건 쌓였다. 이 가운데 19건은 사망으로 이어졌고 24건은 괴사성이었다. 다만 분모도 함께 봐야 한다. 최근 5년간 영국에서 조제된 이 계열 의약품은 약 2540만 팩에 이른다.

MHRA는 의료진에게 췌장염이 의심되면 투여를 중단하고 확진되면 재투여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환자에게는 등으로 뻗치는 심하고 지속적인 복통이 나타나면 즉시 진료를 받으라고 안내했다.

'신호'와 '인과' 사이, 규제과학의 언어

눈여겨볼 대목은 영국의 조치도 인과관계 확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발보고는 약과 증상의 시간적 연관을 기록할 뿐 그 자체로 인과를 증명하지 못한다. 이번 조치는 보고가 누적된 '안전성 신호'(인과 가능성을 시사해 추가 검토가 필요한 정보)에 대한 선제적 경고 강화다.

학술 근거도 엇갈린다. 지난해 국제학술지(Endocrinology, Diabetes & Metabolism)에 실린 메타분석(여러 임상시험을 통합해 다시 분석하는 연구)은 무작위 대조시험 62건, 6만6232명에서 GLP-1 사용군의 췌장염 위험이 1.44배로 유의하게 높았지만 병용 약물로 층화하면 유의성이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앞서 201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청(EMA)은 공동 평가에서 250건 이상의 독성 연구를 재검토해도 명백한 췌장 독성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알려진 위험은 이미 라벨에 반영돼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도 췌장염 데이터 수집은 계속하기로 했다.

그래서 각국 허가사항에는 처음부터 췌장염이 들어 있다. 국내 허가사항에도 급성 췌장염이 임상시험에서 '흔하지 않게'(0.1% 이상 1% 미만) 관찰됐다고 기재돼 있다. 이번 논점은 새 부작용의 발견이 아니라, 알려진 위험을 얼마나 빠르고 구체적으로 알리느냐다.

한국은 7건…"판단 어렵다"는 식약처

국내 보고 현황을 보면, 마운자로(터제파타이드)는 국내 출시 시점인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췌장염 3건, 위고비(세마글루티드)는 2024년 10월 시판 이후 올해 3월까지 급성 췌장염 4건이 보고됐다. 위고비 4건 중 3건은 입원 등 '중대 이상사례'로 분류됐다.

식약처는 개별 사례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 규제기관의 안전성 정보와 국내 이상사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추가 신호가 확인되면 허가사항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현장에 별도로 배포하는 안전성 서한은 현재까지 나오지 않았다.

국내 감시 체계가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세마글루티드의 희귀 시신경 질환(NAION) 관련 국내 허가사항 변경 절차가 진행 중이고, 두 약 모두 위해성관리계획(신약의 시판 후 안전성을 계획적으로 추적·관리하는 제도) 대상이다. 영국과의 시차는 태만보다는 축적된 데이터의 양, 즉 시간의 문제에 가깝다.

수백만 건 처방 시대, 경고에 처방 바뀐 건 100건 중 3건

그 시간을 마냥 기다리기 어려운 이유는 처방 속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에만 위고비가 34만5569건 처방돼 국내 비만치료제 전체 처방 114만1800건의 30.3%를 차지했다.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두 약의 처방이 "출시 후 수백만 건에 달한다"며 해외보다 최대 5배 비싼 가격이 해외직구와 오남용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처방 단계의 경고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낮다. 심평원이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위고비 출시 후 올해 6월까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처방 시점에 용량 초과나 중복 처방 등을 실시간 점검해 알리는 시스템)가 의사에게 정보를 제공한 155만7343건 가운데 처방이 변경된 경우는 4만2987건, 2.8%였다. 마운자로도 12만6538건 중 5.8%에 그쳤다. 경고 100건 중 3건꼴로만 처방이 바뀐 셈이다.

두 약은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의약품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같은 날 "비급여 약제는 건강보험에서 가격을 통제할 기전이 없다"고 답했다. 가격만이 아니라 사용 통계도 건강보험 청구망 밖에 있어, 감시는 자발보고와 DUR 기록에 크게 기대는 구조다.

시사점·제언 — 보고를 늘리고, 경고를 행동으로

공개된 기관 권고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두 갈래다. 첫째, 보고를 늘리는 것이다. MHRA는 이번 발표에서 환자와 의료진에게 췌장염 의심 사례를 옐로카드로 보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국영 유전체 기관 지노믹스 잉글랜드와 '옐로카드 바이오뱅크'를 가동해 GLP-1 투여 중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한 환자의 유전 정보까지 수집하고 있다. 고위험군을 미리 가려내려는 시도다. 앨리슨 케이브 MHRA 최고안전책임자는 "부작용의 약 3분의 1은 유전자 검사로 예방할 수 있으며, 부작용은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에 연간 22억 파운드가 넘는 입원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둘째, 경고가 처방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위고비 국내 출시 직후인 2024년 10월 성명에서 "약제의 안전한 유통과 처방을 위해, 관련 당국은 약물의 처방과 사용에 대해 적절한 모니터링과 관리의 의무가 있다"며 부작용에 대한 적극적 모니터링, 명확한 의학적 필요가 있을 때만의 처방, 비대면 진료 처방 금지를 요구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이 지난 19일 국회에서 밝힌 '오남용 우려 의약품' 지정 추진은 그 연장선에 있는 관리 강화 조치다. 국회에서는 고도비만 등 고위험군에 대한 선별적 급여 적용 논의도 시작됐다.

남는 과제는 판단의 재료다. 국내 보고 7건은 인과관계를 따지기에 아직 적은 수이고, 자발보고 제도는 성격상 실제 발생한 사례를 전부 담지 못한다. 식약처가 말한 '개별 사례에 대한 종합 평가'가 가능하려면 보고가 쌓여야 하고, 그러려면 환자가 의심 증상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규제기관들의 메시지는 일치한다. 췌장염은 허가 때부터 관리돼 온 알려진 위험이며, 심하고 지속적인 복통이 나타나면 임의로 판단하지 말고 즉시 진료를 받으라는 것이다. 영국이 고쳐 쓴 경고문은 약을 끊으라는 신호가 아니라 감시망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수백만 건 처방 시대의 한국 약물감시가 같은 속도를 내고 있는지 점검할 때다.

자료: 영국 의약품·보건의료제품규제청(MHRA),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지노믹스 잉글랜드, 대한당뇨병학회, 미국 식품의약국(FDA)·유럽 의약품청(EMA), Endocrinology Diabetes & Metabo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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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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