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익숙한 냄새는 누르고 새 가스는 드러냈다…‘적응하는 전자코’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08.23 07:05
서울대 연구진 중심 공동연구팀, 센서·메모리 결합해 잔류가스 배경 억제…재학습 부담 줄일 가능성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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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LukaszKatlewa / Gdańsk University of Technology, F, CC BY-SA 4.0)

향수 매장에 한동안 머물면 처음에는 강했던 향이 차츰 희미해진다. 그러다 다른 사람이 새로운 향수를 뿌리면 그 냄새는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진다. 서울대학교 연구자가 핵심 실험과 총괄을 맡고 광주과학기술원(GIST)·성균관대학교·서강대학교 소속 연구자가 참여한 공동연구팀은 이처럼 익숙한 냄새를 뒤로 밀어내는 감각적응의 기능을 반도체 센서와 메모리 소자로 구현했다.

다만 사람 코를 그대로 복제하거나 처음 보는 화학물질의 이름을 알아내는 장치는 아니다. 이 연구에서 ‘새로운 가스’란 지속되는 배경 뒤에 새로 유입된, 사전 학습된 표적을 뜻한다. 연구팀이 만든 인공 후각 신경계(AONS)는 이미 존재하는 가스의 반응을 센서 앞단에서 억제해 다음 표적의 신호 패턴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도록 설계됐다.

같은 가스도 배경이 바뀌면 다른 얼굴을 보인다

전자코는 여러 센서가 가스에 반응하면서 만드는 조합형 패턴을 분류한다. 이 개념은 적어도 1982년 발표된 ‘모델 코’ 연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제는 센서가 가스에만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습도와 온도, 먼저 남아 있던 가스, 센서의 노화 상태가 달라지면 같은 표적도 다른 패턴으로 보일 수 있다.

이를 해결하는 한 방법은 가능한 모든 ‘배경×표적’ 조합을 미리 학습하는 것이다. 하지만 배경과 표적의 수가 늘어날수록 필요한 데이터와 계산량도 빠르게 커진다. 연구팀은 분류모델에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계속 넣기보다, 배경의 영향을 하드웨어에서 먼저 줄이는 길을 택했다. 더 민감한 센서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환경이 달라질 때 센서 신호 자체를 조정해 재학습 부담을 낮추려 한 것이다.

이 연구의 새로움을 두고는 공개 심사에서도 질문이 나왔다. 한 심사자는 흔한 가스 분류가 오래된 연구 주제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핵심 기여가 가스 종류의 분류 자체가 아니라 배경 변화에 대응하는 하드웨어 감각적응이라고 설명했고, 심사 과정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과 닭고기, 경보속도 시험을 보강했다.

같은 재료의 코 8개를 서로 다른 온도로 데웠다

인공 수용체 8개는 서로 다른 감지물질을 사용하지 않았다. 모두 14㎚ 두께의 이산화주석(SnO₂) 막을 썼다. 머리카락 굵기를 70㎛로 잡으면 약 5000분의 1에 해당하는 두께다. 대신 각 수용체의 마이크로히터를 155~245℃의 서로 다른 온도로 작동시켰다. 같은 노래를 서로 다른 음높이에서 들어보듯, 온도별 반응을 모아 가스마다 구별되는 8점 패턴을 만드는 방식이다.

가스가 닿으면 SnO₂의 저항과 정전용량, 유효전하가 변한다. 이 변화는 수용체에 결합된 부유게이트 비휘발성 메모리의 문턱전압과 시간상수에 영향을 준다. 연구팀은 가스에 따라 프로그램·소거 전압 펄스의 효과가 달라지는 현상을 이용해 두 가지 적응 모드를 구현했다.

민감화(감작, sensitization)는 반복 노출된 표적의 유효 감지 문턱을 낮춰 존재 경보를 빠르게 하는 모드다. 탈감작(둔감화, desensitization)은 이미 존재하는 배경가스의 반응을 억제해 나중에 들어온 표적 패턴을 드러낸다. 대표 적응 펄스의 길이인 500㎲는 2000분의 1초다. 이 짧은 펄스와 수십 마이크로초짜리 펄스를 묶어 반복함으로써 노출 이력을 소자 상태에 반영했다.

두 모드는 목적에 따라 선택해야 하며 동시에 실행할 수 없다. 민감화는 특정 실험에서 반복 노출 뒤 경보가 빨라졌지만, 적응 이력에 따라 같은 농도도 다른 신호를 낼 수 있어 정밀한 농도 측정에는 맞지 않는다. 검출한계도 항상 개선된 것은 아니다. 제시된 네 사례 가운데 수치가 낮아진 것은 암모니아뿐이었다.

연구팀은 같은 기판에 인공 수용체 뉴런 8개, 신호를 증폭·선택하고 기준선을 조절하는 인공 후각 뉴런 8개, 아날로그 벡터–행렬 곱 일부를 수행하는 인공 피질 뉴런 6개를 집적했다. 그러나 최종 분류에 쓴 8-32-16-8 다층퍼셉트론(MLP)은 소프트웨어에서 동작했다. 인공 피질도 일부만 제작됐기 때문에 감지부터 최종 판단까지 칩 하나에서 끝나는 완전한 온칩 전자코는 아니다.

‘64종 가스’가 아니라 64개 표적–배경 조합

실험에 사용한 화학종은 이산화질소(NO₂), 일산화질소(NO), 암모니아(NH₃), 황화수소(H₂S) 네 가지다. NO₂ 100·500ppb, NO 200·1000ppb, NH₃ 50·250ppm, H₂S 10·50ppm으로 두 농도씩 설정해 모두 8개 표적조건을 만들었다. 100ppb는 부피비로 약 1000만분의 1이고 50ppm은 약 2만분의 1이다. 이 농도들은 센서 시험조건이며 안전 여부를 판정하는 경보선은 아니다.

분류모델은 깨끗한 공기에서 이 8개 표적조건을 학습했다. 이후 8개 가스조건 중 하나가 잔류하는 각각의 배경에서 같은 8개 표적을 시험했다. 따라서 성능시험의 규모는 8개 표적과 8개 배경을 곱한 64개 표적–배경 조합이다. 64종 가스나 64종 혼합가스를 구별했다는 뜻은 아니다.

MLP의 평균백분율오차(MPE)는 기존 방식에서 84.1%였다. 배경 신호를 탈감작하자 24.6%로 낮아졌고, 환경별 기준선 보정을 함께 적용하자 0.1%가 됐다. 평균백분율오차는 낮을수록 오차가 작다는 지표지만, 0.1%를 ‘정확도 99.9%’로 바꿔 읽어서는 안 된다.

검증 규모에도 조건이 붙는다. 각 조건의 대표 신호는 10회 실측한 값을 평균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평균을 중심으로 변동계수 0.1의 가우시안 분포를 적용해 학습·시험 데이터를 각각 1000배 증강했다. 따라서 0.1%는 10회 실측 평균을 바탕으로 1000배 증강한 실험실 데이터에서 나온 값이지, 여러 칩과 장소에서 수천 회 독립 측정한 현장시험 결과가 아니다.

닭고기 시연 다음에는 ‘현장의 복잡성’을 넘어야 한다

연구팀은 응용 가능성을 살피기 위해 닭 안심에서 나온 가스를 0·6·12·24시간에 측정했다. 시료 용기에는 마른 공기를 분당 200mL씩 흘렸고, 얻은 신호를 마른 공기와 NH₃ 10·50ppm, NH₃ 100ppm과 H₂S 5ppm을 섞은 인공 조건과 비교했다. 시간에 따라 반응 패턴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 개념증명이지만, 실제 닭 시료의 NH₃·H₂S 농도를 독립 화학분석으로 정량하거나 미생물 검사로 식품안전을 판정한 실험은 아니다.

현장으로 가려면 남은 질문이 많다. 탈감작만 적용했을 때 남은 기준선 차이를 미지의 환경에서 자동으로 찾아 보정할 수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 산화성 가스와 환원성 가스의 신호가 특정 혼합비에서 서로 상쇄될 가능성도 있다. 온도가 다른 8개 수용체의 전체 패턴이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지만, 생활 냄새처럼 수십~수백 성분이 섞인 혼합물을 각각 분리·정량한 결과는 아니다.

습도 시험도 상대습도 2.5%와 62%에서 NH₃ 500ppm을 비교한 범위에 머물렀다. 수개월 연속운전에서의 센서 드리프트와 히터 수명, 메모리 유지·내구성, 표면오염, 칩 간 편차도 보고되지 않았다. 전체 소비전력과 1회 판정에너지, 종단간 지연시간 역시 제시되지 않았다. 데이터는 교신저자에게 요청하면 제공되지만 공개 코드 저장소는 확인되지 않았다.

논문은 2024년 4월 5일 접수돼 2026년 8월 10일 게재 승인을 받았고 8월 20일 공개됐다. 현재 상태는 최종 교정 전 Article in Press다. 공개 직후여서 독립 재현 여부를 판단하기도 이르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사람의 코를 완성했다는 데 있지 않다. 변하는 배경을 분류모델이 모두 외우게 하는 대신, 센서와 메모리가 먼저 익숙한 신호를 눌러내도록 했다는 데 있다. 완전한 온칩 분류와 자동 배경보정, 복합혼합물·장기 신뢰성·전력·현장시험이 이어져야 이 접근이 실험실 밖에서도 유효한지 확인할 수 있다.

자료: 서울대학교·광주과학기술원·성균관대학교·서강대학교·Springer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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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반도체·일반공학 — 공정·소자·파운드리·메모리 및 기계·전기·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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