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벌 방어선 넘은 농약, 여왕벌 거쳐 알까지 이동했다
꿀벌 사회가 농약을 막아내는 방어선을 갖추고 있어도 노출이 이어지면 화학물질이 여왕벌을 거쳐 다음 세대의 알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일벌이 여왕벌에게 먹이를 전달하며 유해물질을 걸러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완충 작용이 약해진 것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를 비롯해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청과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 연구진은 농약에 노출된 벌집 안에서 화학물질이 일벌, 여왕벌, 알, 벌집 사이를 어떻게 옮겨 다니는지 추적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36권 15호 3734~3743.e3에 실렸다.
연구진은 여왕벌 1마리와 일벌 60마리가 사는 소형 실험 군집인 ‘나노콜로니’를 만들었다. 실험은 2024년 8월과 9월 두 차례 진행했다. 천연 밀랍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기존 오염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파라핀으로 만든 인공 벌집을 사용했다.
먹이에는 탄소-14로 표지한 살충제 메틸파라티온을 25ppb 농도로 넣어 10일간 공급했다. ppb는 아주 낮은 농도를 나타내는 단위다. 메틸파라티온은 지방에 잘 녹는 유기인계 농약으로, 연구진은 여러 유기인계·신경독성 농약과 성질이 비슷해 이동 경로를 살피는 모델물질로 골랐다.
첫날 일벌은 들어온 농약의 약 95%를 걸러 밀랍 등에 축적시켰다. 그러나 노출이 계속되자 이 비율은 10일째 86%로 낮아졌다. 일벌 체내 농도는 2일째보다 약 55배 높아졌지만, 벌집 셀에 저장된 먹이의 농도 증가는 약 40%였다. 농약이 단순히 먹이에 머무르지 않고 벌의 몸과 벌집 구조물 사이에 다르게 분배됐다는 결과다.
일벌의 완충 능력이 약해지는 동안 여왕벌의 몸과 난소에도 농약이 쌓였고, 여왕벌이 낳은 알에서도 농약이 검출됐다. 10일째 알의 농도는 81~141ppb였다. 계산된 축적 속도는 하루 기준 일벌 108.56ppb, 알 8.65ppb, 여왕벌 0.70ppb였다.
연구진은 어미의 몸에 쌓인 화학물질 일부가 생식 조직이나 알로 옮겨가는 현상을 ‘모계 배출’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여왕벌이 알을 희생하려고 내리는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다. 생식 과정에서 체내 화학물질이 알로 이동하는 생리적 현상이며, 꿀벌에서 농약의 이런 이동 경로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극미량의 이동은 생물학적 가속기 질량분석 기술인 ‘BioAMS’로 측정했다. 이 장비는 밀리그램 크기의 작은 시료에서 아토몰, 즉 10의 마이너스 18제곱 몰 수준의 방사성 표지 물질을 찾을 수 있다. 시료 하나를 측정하는 데 5~10분이 걸렸고 계수 정밀도는 0.5~3%였다.
여왕벌이 있는 군집과 없는 군집을 비교했을 때 전체 측정 조직에 남은 농약 총량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다만 여왕벌이 있으면 농약이 일벌과 밀랍 등에 나뉘어 자리 잡는 방식이 달라졌다. 여왕벌의 존재가 농약을 없애지는 않지만 벌집 내부의 분배 위치에는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농약은 오염된 꽃가루와 꿀을 통해 벌집에 들어온 뒤, 벌이 입에서 입으로 먹이를 전달하는 영양교환을 따라 이동한다. 어린 일벌이 먹이를 처리하고 로열젤리를 만드는 과정은 여왕벌에 도달하기 전 유해물질을 줄이는 사회적 완충 장치로 작동한다. 이번 결과는 이 장치가 반복 노출 아래에서 유지되는 정도를 수치로 보여줬다.
다만 메틸파라티온 관련 제품은 미국 환경보호청의 등록 취소를 거쳤고, 미국 내 최종 합법 사용일은 2013년 12월 31일이었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현재 미국 농업 현장에서 이 농약이 쓰인다는 증거가 아니라, 성질이 비슷한 농약이 벌집 안에서 이동하는 과정을 살핀 모형실험으로 이해해야 한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성충과 유충의 반복 경구 노출 시험부터 군집 급이·반야외 시험, 자유비행 군집의 장기 현장시험까지 단계적으로 농약 위해성을 평가한다. 공개된 시험 목록에는 여왕벌이나 알을 직접 대상으로 한 별도 시험이 명시돼 있지 않다. 연구진은 앞으로 농약 종류와 노출 기간에 따른 차이와 군집 전체에 미치는 장기 영향을 규명할 계획이다. 논문의 원시 데이터도 Figshare에 공개했다.
자료: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청,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 미국 환경보호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