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최대 2,252조 조합의 벽…세포 ‘자동 잠금’ 회로 좁히는 KAIST ROOT

마이크와 스피커를 가까이 두면 처음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날카로운 하울링이 이어질 수 있다. 세포의 분자 신호에도 이와 닮은 현상이 있다. 분자 A가 B를 켜고, B가 C를 켠 뒤, C가 다시 A를 켜면 외부 자극이 끝나도 신호가 스스로 유지될 수 있다. 세포가 이전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자동 잠금’이 걸리는 셈이다. KAIST 연구진은 이 잠금 구조를 주어진 논리 네트워크 안에서 계산하고, 상태를 되돌릴 후보까지 찾는 프레임워크 ROOT를 개발했다. 다만 실제 세포를 정상 상태로 복원한 치료 실험은 아니다.
51개 스위치만으로도 약 2,252조 가지
ROOT의 정식 명칭은 ‘Revelation Of the Original circuit of irreversible Transition’이다. 여기서 비가역 전이는 외부 자극이 세포의 분자 상태를 바꾼 뒤, 자극을 제거해도 이전 안정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분화처럼 세포가 새로운 역할을 얻는 데 필요한 성질이지만, 특정 모델에서는 암 관련 상피·중간엽 전이(EMT)처럼 병적 상태가 유지되는 과정도 분석 대상이 된다.
문제는 조합의 수다. 공개된 8개 코드 예제는 외부 입력을 포함해 8∼51개 변수를 다룬다. 가장 큰 것은 51변수 SASP 모델이다. 51개 변수를 각각 켜짐과 꺼짐의 자유로운 스위치로 보면 가능한 상태는 2의 51제곱, 정확히 2,251,799,813,685,248개다. 약 2,252조 개로, 초당 100만 상태를 단순 확인해도 약 71.4년이 걸리는 이론적 상한이다. 실제 계산에서는 입력을 고정하고 이미 찾은 경로를 재사용하거나 근사 탐색을 적용해 공간을 줄인다. KAIST는 이런 네트워크에 1,000개가 넘는 양성 되먹임 고리가 얽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마이크와 스피커가 많다고 모두 하울링의 원인은 아니듯, 되먹임 고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회로가 실제 잠금장치인지는 알 수 없다.
ROOT는 원시 오믹스 자료를 넣기만 하면 답을 내놓는 범용 인공지능이 아니다. 연구자가 분자 사이 활성·억제 관계를 0과 1로 나타낸 불리언 네트워크, 조사할 비가역적 표현형 변화의 정의, 외부 자극과 모델 입력값의 대응 관계를 먼저 제공해야 한다. 출발 지도가 잘못되거나 중요한 관계가 빠져 있으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안정 상태를 비교해 ‘비가역성 커널’을 찾는다
계산의 출발점은 어트랙터, 즉 네트워크가 수렴하는 안정 상태다. ROOT는 먼저 자극이 없을 때와 있을 때의 어트랙터를 구한다. 이어 자극을 켰다가 껐는데도 출발 어트랙터로 복귀하지 않는 비가역 전이 경로(ITP)를 가려낸다. 그 경로에서 상태 차이를 계속 유지하는 양성 되먹임 고리와 안정화 조건을 찾고, 이 묶음을 ‘비가역성 커널’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원인 회로’는 실제 세포에서 실험적으로 입증된 하나뿐인 인과 원인을 뜻하지 않는다. 입력된 논리 네트워크와 연구자가 선택한 전이 경로 안에서 비가역성을 유지하는 기능적 구조라는 제한이 붙는다. 모델 밖에 있는 후성유전 변화, 조직 미세환경, 세포 사이 신호나 누락된 조절 관계는 찾아낼 수 없다.
ROOT가 제안하는 제어는 리셋과 역전으로 나뉜다. 리셋 제어는 잠금 구조를 남겨둔 채 현재 상태만 출발점으로 돌린다. 자동 잠금문을 한 번 열어 안에 있는 사람을 밖으로 꺼내는 것과 같다. 역전 제어는 상태를 붙드는 구조 자체를 바꿔 전환을 가역적으로 만든다. 문이 다시 잠기지 않도록 자동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방식이다.
조혈모세포와 장 상피 모델이 보여준 후보
조혈모세포 분화 사례에서는 원래 200노드였던 네트워크를 21변수 코어로 축약해 분석했다. 전체 지하철망에서 주요 환승역을 중심으로 지도를 다시 그린 것과 비슷하다. ROOT는 두 비가역 전이 경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AKT–p53–FOXO3 양성 되먹임과 Meis1 자기 되먹임이 Runx1·PU.1 억제 조건 아래 비가역성 커널을 이룬다고 계산했다.
사람 장 상피세포 기반 모델에서는 전체 22개 비가역 전이 경로 가운데 표현형 기준에 맞는 군집의 9개를 분석했다. SMAD3 억제는 비교한 단일 리셋 전략 중 평균 점수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9개 경로 모두를 완전히 되돌린 것은 아니었다. 5개 경로에서만 완전 리셋으로 계산돼 평균 점수는 0.555556이었다. 이 점수는 제어를 적용했다가 해제한 뒤 출발 어트랙터로 돌아갈 모델 확률이지, 치료 성공률이나 실제 세포 복귀율이 아니다.
베타세포 예제도 하나의 만능 스위치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260개 경로 중 표현형 패턴에 맞는 군집의 80개를 골랐으며, 최고 단일 표적은 Foxo1 억제로 평균 리셋 점수가 0.475였다. 장 분석에 사용된 14,537개 세포 역시 ROOT로 치료한 세포 수가 아니라 기존에 공개된 성인 사람 회장·결장·직장 상피세포 전사체 자료의 전체 규모다. 베타세포 분석 자료는 생쥐 배아 췌장세포의 네 시점 공개 자료였다.
치료 성과가 아니라 실험 순서를 정하는 계산 지도
공개 예제 8개 가운데 3개는 상태를 전수 탐색했고, 조혈모세포·B세포·베타세포·폐암 EMT·SASP 등 5개는 무작위 초기상태 근사를 사용했다. 따라서 희귀한 어트랙터나 작은 유역이 빠지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연구자가 어떤 경로나 군집을 고르느냐에 따라서도 커널과 표적이 바뀔 수 있다. 베타세포 예제는 양성 되먹임 후보 길이를 3 이하로 제한해 더 긴 회로가 분석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남는다.
불리언 모델은 실제 분자의 농도와 반응속도, 시간 지연, 공간 관계와 세포 이질성을 대부분 0과 1로 압축한다. 주 응용 노트북은 여러 변수 상태를 한 박자에 함께 바꾸는 동기식 갱신을 사용했다. 저장소에 비동기 분석도 있지만 비동기 EMT 접근은 완결된 재현 결과로 보기 어렵다. 공개 저장소에는 릴리스 태그와 자동 테스트 묶음, 환경 잠금 파일도 없다.
논문 초록이 제시한 검증 수준은 계산 결과가 생물학 문헌과 기존 실험에 부합한다는 데 그친다. ROOT가 예측한 표적을 새 배양세포나 동물, 환자에게 적용해 되돌림을 입증한 전향적 실험은 확인되지 않았다. 온라인 공개 11일째인 2026년 8월 24일 기준 독립 연구진의 재현이나 직접적인 외부 반박도 확인되지 않았다. ROOT가 비가역 전이를 다루는 최초이자 유일한 계산법인 것도 아니다. 차별점은 특정 자극의 투입과 제거로 생긴 비가역 전이에서 커널을 찾고, 상태 리셋과 구조 역전을 나눠 계산한다는 데 있다.
연구는 김종완·장성훈 공동 제1저자와 이종훈, 코빈 호퍼, 조광현 교수 등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연구자 5명이 수행했다. 논문은 2026년 8월 13일 온라인 공개됐으며, 미국국립과학원회보 123권 33호의 표기일은 8월 18일이다. 저자들은 ROOT 논문에 경쟁 이해관계가 없다고 신고했다. 별도 자료에서는 조광현 교수가 바이오리버트의 공동창업자·CEO·CSO이자 지분 보유자로 확인되지만, ROOT와 이 회사의 특허·제품·기술이전 사이 직접 연결은 확인되지 않았다.
ROOT의 현재 의미는 세포 치료의 성공을 선언한 데 있지 않다. 수많은 상태와 되먹임 후보 가운데 어떤 회로와 조건부터 실제 세포와 동물에서 시험할지 계산으로 좁혔다는 데 있다. 다음 단계는 예측한 커널과 제어 후보가 현실의 생물학에서도 작동하는지 전향적으로 검증하고, 독립 연구진이 같은 결과를 재현하는 일이다.
자료: KAIST·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바이오리버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