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절대영도 4도 위에서 효율 90%…‘쌍극자 유리’ 박막 축전기의 가능성과 경계

절대영도보다 불과 4도 높은 4 K, 섭씨로는 −269.15°C인 세계에서 축전기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기를 되돌려줄 수 있을까. 하얼빈공업대 선전캠퍼스 등 국제 연구진이 4 K·6 MV/cm 고정전계 온도주사에서 113.5826 J/cm³의 에너지를 회수하고 효율 89.994%를 보인 ‘쌍극자 유리’ 박막 축전기를 개발했다. 두께 약 160 nm의 미소 시험소자로, 160 nm는 0.00016 mm이자 굵기 70 µm인 머리카락의 약 440분의 1이다. 여기서 에너지밀도는 전극과 기판을 제외한 활성 유전체 부피를 기준으로 하며, 효율은 충전 때 유전체에 들어간 에너지 중 방전 때 회수된 비율이다. 냉동기와 배선, 전력변환장치의 손실까지 포함한 시스템 왕복효율은 아니다.
소재는 Pb₀.₆Sr₀.₄ZrO₃, 줄여서 PSZO라고 부르는 결정성 박막이다. 배터리나 전기화학식 슈퍼커패시터처럼 화학반응으로 오랫동안 전력을 공급하는 장치가 아니라, 유전체의 분극을 이용해 전기를 빠르게 저장하고 내보내는 정전식 축전기다. 연구에는 24명과 13개 기관이 참여했으며, KAIST 신소재공학과 김지은 조교수도 박막 성장과 X선 회절, 전기적 성능 측정에 참여했다.
차가워질수록 뭉치는 쌍극자, 경쟁시켜 흩어놓다
기존 완화형 강유전체는 냉각하면 작은 극성 영역들이 성장하고 서로 결합해 큰 강유전 도메인을 만들기 쉽다. 전기장을 꺼도 분극이 많이 남는 잔류분극과 충방전 경로가 달라지는 이력손실이 커지는 이유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군중이 강유전체라면, 반강유전체는 앞뒤 방향이 번갈아 정렬된 줄에 가깝다.
PSZO가 노린 ‘쌍극자 유리’는 비정질 창문 유리를 뜻하지 않는다. 결정구조는 유지하지만 각 단위격자의 전기쌍극자가 장거리 방향 질서를 이루지 못하고 제각각인 배열에 갇힌 상태다. 전기장을 걸면 반응하면서도 전기장을 끈 뒤 큰 무리로 남는 경향이 작아 이력손실을 줄일 수 있다. 연구진은 반강유전 PbZrO₃와 상유전 SrZrO₃의 경계에서 반평행 결합과 Sr 치환에 따른 국소적 평행·무질서 결합이 서로 경쟁하도록 설계했다. 어느 한쪽 질서가 멀리 퍼지는 것을 막은 셈이다.
연구진은 7,200원자 PSZO와 비교재인 5,000원자 PMN-PT 초격자를 이용해 분자동역학 계산을 수행했다. PSZO의 쌍극자 상관함수는 지수 감쇠길이가 약 2.00 Å였고 장거리 성분은 약 −0.05였다. 상관이 약 10 Å 안에서 사실상 사라졌다는 본문 설명과 2.00 Å는 모순이 아니다. 앞 수치는 상관이 줄어드는 속도를 나타내는 감쇠 상수이고, 뒤 수치는 상관이 사실상 소멸한 거리다. 비교재 PMN-PT의 장거리 성분은 약 0.62였다.
실험에서는 SrTiO₃ 단결정 기판 위에 SrRuO₃ 하부전극과 약 160 nm PSZO 박막을 펄스레이저로 증착한 뒤 지름 25·50 µm의 백금 상부전극을 만들었다. X선 회절과 역공간 지도, 전자 프티코그래피로 장거리 반강유전 질서가 사라지고 국소 쌍극자 배열이 남는지를 살폈으며, 300·77·4 K에서 극화–전기장 곡선을 측정했다.
4 K의 90%와 77 K의 최고값은 다른 기록이다
가장 안전하게 대표할 수 있는 4 K 성능은 정확히 6 MV/cm를 가한 고정전계 온도주사에서 나온 113.5826 J/cm³와 효율 89.994%다. 별도 전계주사에서는 4 K·6.2069 MV/cm에서 131.54 J/cm³와 효율 86.694%를 기록했다. 같은 고정전계 온도주사에서 4~300 K·6 MV/cm의 에너지밀도는 109.4769~113.5826 J/cm³, 효율은 86.694~89.994%였다. 따라서 모든 온도와 전계에서 효율 88% 이상을 유지했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4 K 전계주사에서는 8.27586 MV/cm에서 181.05643 J/cm³와 효율 88.289%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계를 4 K·8.969 MV/cm까지 높인 최고전계점에서는 에너지밀도가 197.70007 J/cm³로 커지는 대신 효율은 86.178%로 낮아졌다. 논문 본문에는 4 K·약 9 MV/cm에서도 효율이 88%를 넘는다는 취지의 문장이 있지만, 출판사가 공개한 그림 원자료는 88% 미만을 가리킨다. 수치가 충돌하는 만큼 원자료 값을 우선해 읽어야 한다.
전체 최고 에너지밀도 211.79088 J/cm³와 효율 88.268%는 4 K가 아니라 77 K·8.9715 MV/cm 전계주사에서 나왔다. 활성 유전체만 놓고 환산하면 58.83 Wh/L다. 9 MV/cm는 1 cm당 900만 V라는 큰 전계지만 두께가 160 nm에 불과해 박막 양단 전압은 약 144 V다. 반대로 높은 부피당 밀도가 곧 많은 총에너지를 뜻하지는 않는다. 전극 면적 전체가 균일하게 기여한다고 가정하면 시험 셀 하나가 회수하는 에너지는 지름 25 µm에서 약 16.6 nJ, 50 µm에서 약 66.5 nJ다. 큰 배터리보다 칩 가까이에서 짧은 전력 펄스를 공급할 가능성에 가까운 결과다.
‘1억 회’는 77 K에서 100 kHz를 연속 적용할 때 순수 순환시간으로 16분 40초다
내구성도 조건을 분리해 봐야 한다. 1억 회 가속 반복시험은 4 K가 아니라 77 K·약 6 MV/cm·100 kHz에서 실시됐다. 1회 때 에너지밀도 113.97866 J/cm³와 효율 90.403%였고, 1억 회 뒤에는 각각 108.88378 J/cm³와 84.821%였다. 에너지밀도는 4.47% 감소했고 효율은 5.582%포인트 낮아졌다. 성능 저하 없이 1억 회를 견딘 것은 아니다.
100 kHz는 1초에 10만 번 충방전하는 속도여서 1억 회의 순수 순환시간은 1,000초, 즉 16분 40초다. 반복 횟수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수년에 걸친 보존이나 열순환, 저주파 운전, 기계충격을 견디는 달력 수명을 입증할 수는 없다. 약 1.5 µs의 방전 속도 역시 77~300 K·2 MV/cm 시험에서 확인됐고 온도에 따른 편차는 3.1% 미만이었다. 4 K 속도값은 아니며 입력 펄스의 상승시간도 1.5 µs여서 재료 자체가 이보다 얼마나 빠른지는 분리하기 어렵다.
4 K 전자회로의 후보, 그러나 아직 160 nm 시험소자
구조 확인에도 경계선이 있다. 프티코그래피로 쌍극자 배열을 직접 관찰한 최저온도는 장비 한계인 약 95 K다. 4 K에서도 쌍극자 무질서가 유지된다는 해석은 분자동역학 계산과 전기적 특성에 근거한다. 보충 분석은 40% Sr 조성에서 정렬상과 무질서상의 계산 에너지 차이가 약 2 meV/atom이고, 관측 상태가 실험시간 동안 장벽을 넘지 못한 견고한 준안정 상태일 가능성도 인정했다. 장기간 노화 뒤에도 같은 상태가 유지되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이번 결과는 4 K에서 작동하는 양자제어 전자회로처럼 짧은 펄스 전력이 필요한 환경에 새로운 재료 설계 방향을 제시한다. 다만 실제 양자컴퓨터나 초전도 회로, 위성·우주선, 전력변환회로에 통합해 작동시킨 것은 아니다. 대면적화와 다층화, 패키징, 반복 열순환, 시스템 효율도 확인되지 않았다. 주요 극화곡선과 피로시험을 독립 소자 몇 개에서 반복했는지 명시되지 않았고 피로곡선에는 오차막대와 실패분포가 없다. 2026년 8월 27일 현재 독립 재현이나 직접 반박 결과도 확인되지 않았다.
소재가 납을 포함한다는 점도 남는다. 표준 원자량으로 계산한 PSZO의 납 질량비는 약 41.6%다. 제품별 규제 적용 여부를 곧바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제조와 폐기, 회수, 공정 안전성을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극저온에서도 쌍극자가 큰 질서로 뭉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는 물성 설계는 확인됐지만, 이를 실제 부품의 성능과 수명으로 옮기는 일은 이제부터 남은 질문이다.
자료: 하얼빈공업대 선전캠퍼스·웨스트레이크대·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홍콩이공대·KA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