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 노후 의료장비, ‘내용연수’만으로 위험 판단해선 안 돼
국립대병원 의료장비의 노후화 문제가 제기되면서 장비 교체와 유지관리 체계를 함께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조달청이 정한 사용 기간을 넘긴 장비를 곧바로 고장 위험이 큰 장비나 폐기 대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환자 진료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려면 장비의 종류와 상태, 고장·수리 이력, 실제 가동률, 대체 장비 확보 여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의료장비 노후도를 파악할 때 주로 활용되는 기준은 조달청의 ‘내용연수’다. 이는 해당 물품을 통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정한 기간이지만, 사용 가능성을 일률적으로 판정하는 절대 기준은 아니다. 조달청 고시 제2024-30호에 따르면 내용연수가 지났더라도 사용에 지장이 없다면 계속 운용할 수 있다. 반대로 정해진 기간이 남아 있어도 경제적인 수리 한계를 넘었거나 안전·복지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면 처분할 수 있다.
내용연수 기준도 장비별로 다르다. 심장충격기는 6년, 혈액투석장치는 8년, 디지털 진단용 엑스선촬영장치는 10년이다. 초음파검사장치와 이동형 엑스선촬영장치는 11년으로 정해져 있다. 기능과 사용 환경, 유지관리 방식이 서로 다른 장비를 하나의 초과 비율로 묶으면 개별 장비의 실제 상태와 임상적 중요도가 가려질 수 있다.
특히 CT와 MRI, 수술·투석 장비처럼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장비는 내용연수 초과 여부보다 더 세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기준을 몇 년이나 넘겼는지, 고장과 수리가 얼마나 반복됐는지,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사용할 장비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같은 기간을 사용한 장비라도 관리 상태와 운용 여건에 따라 진료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 간 비교에서도 단순한 대수 기준 비율은 한계가 있다. 병원마다 보유한 전체 장비 수가 다르고, 진료 기능에 따라 장비 구성도 달라진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장비가 많이 포함된 병원과 중증 진료에 직접 쓰이는 핵심 장비의 교체가 지연된 병원을 같은 방식으로 비교하면 실제 진료역량의 차이를 제대로 보여주기 어렵다. 장비별 위험도와 교체 시급성을 반영한 자료가 함께 제시돼야 하는 이유다.
충남대학교병원은 2026년 1월 업무보고에서 CT·MRI·선형가속기 등 사용한 지 15년 이상 된 주요 장비를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교체 완료 목표는 2026년 1분기 89%, 2분기 100%로 제시했으며, 정부 지원과 병원 자체 투자를 병행해 재원을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업무보고 당시의 계획이므로 실제 교체 실적과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새 장비를 도입하는 것만큼 교체 전까지 기존 장비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일도 중요하다. 충남대학교병원은 MRI와 심혈관조영기에 대해 전문업체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하고 상시 점검한다고 밝혔다. 이는 내용연수 도달 여부만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비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피며 고장 가능성과 진료 공백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도 2026년 14개 국립대병원과 3개 사립대병원 등 17개 권역책임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중환자실과 첨단 의료장비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국립대병원을 지역 최종치료의 핵심 기관으로 육성하는 과정에서 노후 시설과 장비를 개선하려는 정책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장비 투자는 도입 대수뿐 아니라 지역에서 중증환자를 안정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살펴야 한다.
앞으로의 점검은 내용연수 초과 비율을 제시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핵심 장비별 초과 기간과 고장·수리 이력, 가동률, 대체 가능성, 유지보수 계약과 교체 일정을 함께 공개해야 실제 위험과 투자 우선순위를 구분할 수 있다. 제한된 재원을 진료 영향이 큰 장비부터 투입하고, 교체가 이뤄질 때까지 안정적인 관리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립대병원의 진료 기능을 지키는 핵심 과제다.
자료: 조달청,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충남대학교병원, 보건복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