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초기우주의 '괴물 블랙홀', 알고 보니 굶주린 난쟁이였다
![[기획] 초기우주의 '괴물 블랙홀', 알고 보니 굶주린 난쟁이였다](https://news.minisong.shop/media/articles/2026/07/weic2522a.jpg)
(사진=ESA/Webb, NASA & CSA, G. Rihtaršič (University of Ljubljana, FMF), R. Tripodi (University of Ljubljana, FMF). 라이선스: CC BY 4.0)
초기우주 '괴물 블랙홀'들의 몸무게는, 무게가 아니라 식탐이 부풀린 숫자였는지 모른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이 찾아내 학계를 곤혹스럽게 했던 '너무 무거운' 블랙홀 14개를 다시 재봤더니 태양 100만~1,000만 배 —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태양 약 400만 배)과 같은 급으로 내려앉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탈리아 국립천체물리연구소(INAF) 로마천문대의 알레산드로 트린카 연구팀이 지난 6월 19일 국제학술지 '천문학·천체물리학'(A&A)에 발표한 결과다. 논문 제목부터 '유 캔트 시 미'(You can't see me·나는 안 보인다)다. 이 블랙홀들이 한사코 내지 않는 엑스선, 그 '안 보임' 자체가 결정적 단서였다.
은하보다 먼저 커버린 블랙홀, 뒤집힌 순서
2022년 관측을 시작한 JWST는 초기우주 은하들 한복판에서 활동 중인 블랙홀의 지문을 잇따라 찾아냈다. 문제의 14개는 적색이동(우주 팽창으로 빛의 파장이 늘어난 정도) 4~7, 빛이 지구까지 120억~130억 년을 달려온 천체들이다. 기존 방식으로 잰 무게는 태양 수천만~수억 배에 달했다.
오늘날 우주에서 블랙홀은 대체로 자기가 사는 은하 별들을 다 합친 무게의 1,000분의 1에 머문다. 은하의 별들이 1t이면 블랙홀은 1kg인 셈이다. 그런데 이 초기 천체들은 그 비율이 10배, 100배로 뛰었고, 극단적으로는 별 전체의 10분의 1에서 맞먹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은하가 별을 채 만들기도 전에 중심 블랙홀부터 커버린, 순서가 뒤집힌 그림이다. 그 짧은 시간에 이 덩치를 채우려면 애초에 태양 수만~수십만 배짜리 '무거운 씨앗'에서 출발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별 하나가 죽어 남기는 보통 블랙홀로는 설명이 안 됐다.
빠르게 도는 것과 빠르게 먹는 것, 저울은 구분하지 못한다
블랙홀은 검어서 직접 볼 수 없다. 천문학자들은 그 둘레를 도는 가스 구름, 이른바 광폭선 영역(빠른 회전 탓에 스펙트럼선이 넓게 번져 보이는 영역)의 선폭으로 무게를 어림한다. 회전이 빠를수록 중력이 세고, 중력이 세면 무겁다고 읽는 저울이다.
트린카 팀이 겨눈 것은 이 저울의 맹점이다. 블랙홀이 삼키는 양에는 이론상 상한선인 '에딩턴 한계'가 있다. 달궈진 먹이가 내뿜는 빛의 압력이 새 먹이를 도로 밀어내는 지점이다. 이 한계를 몇 배씩 넘겨 폭식하면 물질은 깔때기처럼 좁은 통로로 쏟아져 들어가고, 통로 안에 갇힌 코로나(엑스선을 내는 초고온 전자 구름)는 빛에 짓눌려 식어버린다. 여느 블랙홀이라면 터져 나와야 할 엑스선이 깔때기 속에서 사그라들고, 그늘진 광폭선 영역은 선폭을 왜곡해 실제보다 무거운 블랙홀처럼 위장한다. 공저자인 피에로 마다우와 프란체스코 하르트가 2024년 내놓은 이론이 이 그림의 뼈대다. 트린카 팀은 앞선 연구에서 이런 폭식이 은하 충돌로 촉발돼 수백만 년의 짧은 발작과 1억 년 안팎의 긴 휴면을 오가며 반복될 수 있다는 계산도 내놓은 바 있다.
'침묵'을 넣고 다시 잰 몸무게, 우리은하급으로
문제의 14개는 활발히 먹고 있다는 신호를 분명히 내면서도, NASA 찬드라 엑스선망원경의 심층 관측에서 하나같이 침묵했다. 연구팀은 광폭선 자료와 이 엑스선 비검출을 하나의 통계 틀(MCMC·마르코프 연쇄 몬테카를로)에 넣고, 가능한 무게와 식탐의 조합을 전부 훑었다. 엑스선이 관측 한계 이상으로 새어 나오는 모형은 자동으로 탈락시키는 방식이다. 답은 둘로 갈렸다. 거의 굶고 있는 초거대 블랙홀이거나, 태양 100만~1,000만 배로 훨씬 가벼우면서 에딩턴 한계를 훌쩍 넘겨 폭식 중인 블랙홀이거나. 14개 중 한 개를 뺀 전부가 두 번째 해석으로 강하게 쏠렸고, 남은 하나도 두 해석이 비등했다.
"우리가 추정한 질량은 태양의 대략 100만~1,000만 배다. 기존에 추정된 수천만~수억 배와 대비된다." 트린카 연구원이 미국 우주매체 스페이스닷컴에 밝힌 결과다. 새 추정치는 기존보다 3배에서 30배가량 가볍고, 그만큼 숙주 은하와의 비례 관계도 오늘날 우주의 관계 가까이로 되돌아온다. 다만 완전히는 아니어서, 재조정 뒤에도 이들은 국지 기준보다 다소 무거운 편으로 남는다. 괴물이 사라진 자리에 아직 한창 자라는 중인 블랙홀이 남은 셈이다.
엑스선 침묵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엑스선이 없다는 사실을 문제가 아니라 단서로 해석했다. 이를 분석에 반영하자 이 천체들이 기존 추정보다 훨씬 가벼울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대편 증거도 살아 있다 — 4억7,000만 년의 엑스선
이 결론은 판정이 아니라 유력한 해석 하나다. 연구팀 스스로 밝힌 전제가 있다. 두터운 가스구름이 엑스선을 가렸을 가능성은 이번 계산에서 배제했고, 폭식하는 물질의 흐름도 단순화한 모형으로 다뤘다. 전제가 달라지면 답도 달라질 수 있다.
'무거운 씨앗' 진영의 증거도 여전하다. 2023년 찬드라와 JWST는 빅뱅 뒤 4억7,000만 년밖에 안 된 은하 UHZ1에서 거꾸로 또렷한 엑스선을 잡아냈다. 태양 1,000만~1억 배로 추정돼 은하의 별 전체와 맞먹는 이 블랙홀은 거대 가스구름이 통째로 무너져 태어났다는 시나리오에 힘을 실었다. 한편 올해 네이처 애스트로노미에는 초기 광폭선 천체들의 엑스선·고이온화선 부재를 역시 초과 에딩턴 강착으로 설명한 별도 연구가 실렸고, JWST가 무더기로 발견한 정체불명의 붉은 점 '리틀 레드 닷'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같은 해석이 경쟁 가설로 다뤄진다. 초기우주 블랙홀의 저울눈을 놓고 학계는 갈라져 있고, 이번 논문은 그 한쪽에 정량적 무기를 보탠 것이다.
한국의 지분 — 102색 전천 지도와 칠레의 거대 거울
이 논쟁을 이어갈 차세대 관측 인프라에 한국도 지분을 갖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KASI)은 2025년 3월 발사된 NASA 적외선 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SPHEREx)의 기기·과학 파트너로, 극저온 시험 체임버를 제공했다. 스피어엑스는 2년간 6개월마다 하늘 전체를 102개 색으로 훑어, 4억5,000만 개가 넘는 은하와 우리은하 별 1억 개 이상을 담은 지도를 만든다. 좁고 깊게 파는 JWST와 달리 넓게 세는 망원경으로, 우주 기원 탐사가 공식 임무다.
KASI는 칠레 라스캄파나스에 들어서는 거대마젤란망원경(GMT)의 16개 창립기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호주·브라질·이스라엘·대만 등의 대학·연구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한 자리다. 2030년대 초 완공이 목표인 GMT는 우주망원경들이 찾아낸 천체를 고분해능 분광으로 되짚는 일을 핵심 임무로 내걸고 있다. 초기 블랙홀의 진짜 몸무게를 가릴 바로 그 종류의 관측이다.
'안 보이는 빛'도 데이터다 — 다음 라운드는 분광
연구팀이 공개적으로 제시한 다음 단계도 분광이다. 여러 파장에 걸친 관측과 정밀한 스펙트럼 자료가 쌓여야 이 블랙홀들의 질량과 식사 속도를 더 믿을 만하게 추릴 수 있다는 것이다. 폭식 해석이 굳어지면 우주 첫 10억 년 안에 거대 블랙홀이 어떻게 그리 빨리 컸느냐는 수수께끼의 압력이 줄고, 무거운 씨앗 없이도 통하는 성장 경로가 열린다. 반대로 무거운 씨앗의 증거가 더 쌓이면 괴물은 되살아난다.
방법론의 교훈도 남는다. 트린카 연구원은 "관측되지 않은 것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끌어낼 수 있는지 확인한 것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보이는 빛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빛도 증거가 된다. 초기우주라는 법정에서, 이번에 침묵은 꽤 유창한 증언이었다.
자료: 이탈리아 국립천체물리연구소(INAF), 국제학술지 천문학·천체물리학(Astronomy & Astrophysics),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찬드라 엑스선센터, 거대마젤란망원경(GMT) 국제컨소시엄, 스페이스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