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굴뚝 연기를 그대로 마셔 화학원료로 뱉는 전극…'포집 따로, 전환 따로'를 지웠다
굴뚝에서 나온 연기를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전극 한 장에 흘려 넣었더니, 반대편에서 개미산이 흘러나왔다. 붙잡는 장치와 바꾸는 장치가 따로 없었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일과 그것을 쓸모 있는 화학물질로 전환하는 일을 한 몸에 담은 전극을, 국내 연구진이 만들었다.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 에너지공학부 최원용·오명환 교수 연구팀의 성과로, 지난 1월 21일 국제학술지 ACS 에너지 레터스에 실렸다. 논문 제목은 '산소 내성 다공성 탄소로 개질한 기체확산전극을 이용한 묽은 이산화탄소의 통합 포집·전환'이다. 미국화학회(ACS)는 이 연구를 주목할 만한 성과로 골라 보도자료로 소개했다.
두 살림을 한 살림으로
지금까지 탄소 포집과 전환은 늘 두 살림이었다. 먼저 배기가스에서 이산화탄소만 붙잡아 고순도로 걸러내고, 그렇게 농축한 기체를 별도 반응기로 옮겨서야 전환에 들어갔다. 문제는 첫 단계다. 굴뚝에서 나오는 실제 연기는 이산화탄소가 10%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질소와 산소가 뒤섞인 칵테일이다. 여기서 이산화탄소만 뽑아 순도를 끌어올리는 데 막대한 에너지와 비용이 든다. 애써 탄소를 붙잡아 쓰겠다는 기술이, 정작 붙잡는 문턱에서 발목이 잡혀 온 셈이다.
연구진은 그 문턱을 아예 없애기로 했다. 걸러내지 않은 묽은 연기를 곧장 반응에 밀어 넣을 수 있다면 값비싼 분리 공정 자체가 사라진다. 논문도 첫 문장에서 "저농도 이산화탄소의 통합 포집·전환은 탄소중립으로 가는 결정적 단계"라고 적었다. 그러자면 전극 한 장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야 했다.
세 겹으로 쌓은 한 장
해법은 층을 나눠 쌓는 데 있었다. 이 전극은 세 겹이다. 들어오는 기체 가운데 이산화탄소를 골라 붙드는 다공성 탄소층, 기체가 고르게 스며들고 전자가 오가도록 길을 내주는 탄소 종이, 그리고 붙잡힌 이산화탄소를 개미산으로 바꾸는 촉매인 산화주석(SnO₂). 스펀지처럼 이산화탄소를 머금는 문지방과, 그 자리에서 곧바로 분자를 재조립하는 작업대를 한데 겹쳐 놓은 구조다. 붙잡힌 탄소가 멀리 이동할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변신하는 것이 설계의 핵심이다.
핵심 재료는 산소와 질소 관능기를 붙인 다공성 흑연 탄소다. 오명환 교수는 이 성과를 두고 "세 개의 층을 어떤 순서와 역할로 배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계 원리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문 제1저자는 판둥라이 연구원이고, 학부 4학년인 양재연 학생이 핵심 분자동역학 계산을 맡았다.
산소라는 훼방꾼
진짜 시험대는 산소였다. 실제 굴뚝 연기에는 산소가 함께 들어 있는데, 이산화탄소를 전기로 환원하는 반응에서 산소는 달갑지 않은 훼방꾼이다. 전자가 이산화탄소 대신 산소 쪽으로 새어 나가면 원하는 반응은 힘을 잃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환 전극은 산소가 섞이는 순간 성능이 무너진다.
연구진의 계산과 실험은 그 관능기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고 가리켰다. 이산화탄소는 더 잘 달라붙게 하고, 산소는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는다. 산소 앞에서 버티는 힘이 재료 표면의 화학적 성질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숫자로 본 성적표
성능은 조건에 따라 뚜렷하게 갈렸다. 산소를 뺀 이산화탄소 15% 기체에서 이 전극은 넓이 1㎠당 한 시간에 개미산 250마이크로몰을 만들어 냈다. 무게로 치면 시간당 11㎎ 남짓이다. 개질하지 않은 기체확산전극의 2.5배이고, 흘려보낸 전자 가운데 개미산을 만드는 데 쓰인 비율인 패러데이 효율은 98%에 이르렀다. 전자가 거의 새지 않았다는 뜻이다.
산소 8%가 섞인 배기가스 조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전극은 −1.4V(가역수소전극 기준)에서 1㎠·1시간당 22마이크로몰, 패러데이 효율 8%를 기록했다. 산소가 들어오자 생산량은 10분의 1 아래로, 효율은 열두 배 넘게 떨어졌다. 산소 앞에서 완전히 죽지 않고 계속 돌아갔다는 것이 이번 성과의 요지이지, 산소가 있으나 없으나 같았다는 뜻은 아니다. 대신 농도 쪽으로는 폭이 넓었다. 이산화탄소가 1%까지, 나아가 대기 중 수준인 400ppm에서도 반응이 이어졌다.
뽑아낸 개미산은 버릴 물질이 아니다. 가죽을 무두질하고 섬유를 염색하는 데 쓰여 온 오래된 산업 원료이자, 최근에는 수소를 액체 상태로 안전하게 저장했다 꺼내 쓰는 매개체로 주목받는다.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기구(TNO)가 이산화탄소를 개미산과 포름산염으로 바꾸는 전기화학 전환 프로그램을 별도로 굴리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굴뚝의 골칫거리를 곧바로 팔 수 있는 물질로, 그것도 액체로 바꾼다는 발상이 매력적인 이유다.
세계는 어디까지 와 있나
이 연구가 놓인 자리를 보려면 국제 지형을 함께 봐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3월 낸 보고서 '규모 있는 CCUS 금융'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에 들어간 투자는 50억 달러를 넘겨 2020년의 15배 이상으로 뛰었다. 최근 2년 사이 최종투자결정에 이른 프로젝트만 30건이 넘는다. 그런데 실제로 돌아가고 있는 포집 설비를 모두 합치면 연 5,000만 톤 규모다. 돈은 빠르게 불었지만 가동 중인 실물은 아직 그만큼 따라오지 못했고, 2030년까지 계획된 용량도 지금의 두 배 수준에 그친다.
포집과 전환을 묶으려는 시도 자체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같은 저널에 2024년 12월 실린 커티스 벌링게트 교수 연구팀의 논문은 방향이 다르다. 알칼리 용액으로 붙잡은 탄소를 열로 떼어내는 대신 중탄산 전해조에서 전기화학적으로 떼어내며 일산화탄소나 에틸렌으로 바꾸는 경로를 물질수지 모형으로 따졌고, 조건이 맞으면 일산화탄소의 균등화 손익분기 가격을 ㎏당 1달러 아래로 낮출 수 있다고 봤다. 액체를 원료로 받는 쪽과 기체를 그대로 받는 쪽, 두 갈래가 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하는 형국이다. 이번 켄텍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리더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남은 문턱
실험실 전극 한 장과 발전소 굴뚝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이번 성과는 산소가 섞인 묽은 기체에서도 포집과 전환이 한자리에서 이뤄진다는 원리를 입증한 것이지, 대규모 설비에서 오래 버티며 경제성을 낸다는 뜻은 아니다. 산소 조건에서 패러데이 효율이 8%에 머문다는 사실 자체가 다음 과제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가리킨다.
IEA는 앞의 보고서에서 "다음 단계의 CCUS 확산은 기술적 역량 못지않게 금융 혁신과 정책 설계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기술이 아무리 단순해져도 그것을 굴리는 값을 누가 어떻게 치를지가 정해지지 않으면 굴뚝에 붙지 않는다는 뜻이다. 연구진이 이 전극의 쓸모로 대규모 플랜트뿐 아니라 소규모 산업 시설과 분산형 배출원을 함께 꼽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큰 설비 한 곳에 거대한 분리 공정을 세우는 방식으로는 닿지 않는 배출원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최원용 교수는 "탄소 포집과 전환이 반드시 분리된 공정일 필요는 없다"며 "실제 배기가스 환경에서도 작동 가능한 단순한 탄소 활용 경로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탄소 활용 기술은 '먼저 깨끗이 걸러야 한다'는 전제 앞에서 번번이 비용의 벽에 부딪혔다. 이번 결과가 흔든 것은 그 전제다. 실용의 문턱은 아직 남았지만, 지우려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또렷해졌다.
자료: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한국연구재단, 미국화학회 ACS 에너지 레터스, 국제에너지기구(IE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