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서양 컨베이어벨트의 벼랑은 착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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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거대한 열 컨베이어벨트가 언젠가 멈출 수 있다는 경고에는 늘 반박 하나가 따라붙었다. 컴퓨터가 바다를 너무 뭉툭하게 그려서 생긴 착시라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네덜란드 연구진이 그 반박의 마지막 피난처를 닫았다. 그리고 올해, 같은 연구실이 자기들이 세운 경고에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
대서양 자오면 순환(AMOC)은 열대의 온기를 북대서양으로 퍼 올리고, 차갑고 짠 물을 심해로 가라앉히며 도는 순환이다. 이 흐름이 무너지면 북서유럽 겨울은 훨씬 혹독해지고 열대 강우대가 통째로 밀린다. 문제는 순환을 떠받치는 되먹임에 있다. 북쪽으로 갈수록 물이 짜지고, 짠물은 무거워 잘 가라앉고, 가라앉을수록 남쪽의 짠물을 더 끌어올린다. 이 소금 되먹임이 한번 반대로 돌면 순환은 스스로를 끌어내린다.
소용돌이까지 그려도 순환은 멈췄다
상자 모형부터 중급 모델, 완전 결합 기후모델까지 지난 수십 년의 계산은 하나같이 이 벼랑을 가리켜 왔다. 그럴 때마다 나온 반론이 소용돌이였다. 대양에는 폭 수십 킬로미터의 중규모 소용돌이가 무수히 돌며 열과 소금을 섞는데, 기존 기후모델은 격자가 성글어 이를 계산하지 못하고 근사식으로 뭉갠다. 소용돌이가 물을 충분히 섞어 준다면 소금 되먹임이 폭주하지 못하고, 붕괴는 격자의 허상일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위트레흐트대 르네 판베스턴과 헹크 데이크스트라 등은 소용돌이를 실제로 분해하는 0.1도(약 10㎞) 해양모델에 담수를 서서히 부어 넣었다. 결과는 지난해 3월 지오피지컬 리서치 레터스에 실렸다. 소용돌이를 또렷이 계산해도 AMOC는 붕괴했다. 소용돌이가 한 일은 붕괴를 막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뒤의 순환을 약 5스베드럽(1스베드럽은 초당 100만㎥)의 미약한 흐름으로 겨우 지탱하는 것이었다. 같은 모델의 소용돌이 없는 판본과 나란히 비교하니 붕괴를 일으킨 주범은 여전히 소금 되먹임이었다. 연구진은 남위 34도에서 순환이 실어 나르는 담수량이 붕괴 임박을 알리는 물리적 조기경보 지표가 된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그린란드가 실제로 녹는 만큼만 부었더니
벼랑은 착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언제 떨어지는가. 여기서 같은 연구실이 방향을 튼다. 올리버 멜링과 데이크스트라는 앞선 실험의 인위적 담수 대신, 실제 그린란드 빙상이 녹아 흘러들 물의 양을 그대로 집어넣었다. 온실가스 고배출 시나리오에서 2100년 그린란드 유출수 증가분은 초당 약 0.09스베드럽, 곧 초당 9만㎥다.
같은 0.1도 모델로 계산하자 이번 세기 안에 AMOC는 붕괴하지 않았다. 융빙수가 더한 추가 약화는 2080~2100년 기준 0.6스베드럽가량. 같은 기간 온난화 자체가 일으키는 약화가 9.7스베드럽에 이르니, 녹는 얼음이 보태는 몫은 그 1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 연구는 올해 2월 사전공개된 뒤 지오피지컬 리서치 레터스에 실렸다.
같은 물도 지금 붓느냐 나중에 붓느냐
흥미로운 대목은 그다음이다. 똑같은 양의 융빙수를 20세기 기후 조건의 바다에 부으면 약화 폭이 2.8스베드럽으로, 21세기 온난화 아래에서보다 다섯 배 가까이 커졌다. 차이를 가른 건 모델의 해상도가 아니라 바다의 바탕 상태였다.
표층이 데워지면 위아래 밀도 차가 벌어져 성층이 강해지고, 겨울철 깊은 대류가 얕아진다. 모델에서 겨울 혼합층은 1000m 이상에서 500m 아래로 얕아졌다. 그 결과 융빙수는 심해의 서안 경계류까지 내려가지 못한 채 표층에 갇힌다. 벼랑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번 세기의 밀어붙임만으로는 거기까지 닿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대기와 이어 붙인 7월의 후속
멜링 연구진이 스스로 꼽은 가장 큰 한계는 이 계산이 대기와 바다가 주고받는 되먹임을 뺀 해양 단독 모델, 그것도 한 개 모델에 기댔다는 점이었다. 그 구멍은 멜링 등이 참여해 지난 7월 4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은 후속 연구가 일부 메웠다. 이번에는 대기·해빙과 결합된 기후모델(EC-Earth3)로 2300년까지 밀어 봤다.
결과는 앞선 계산과 같은 방향이었다. 융빙수가 더하는 약화는 2100년까지 약 1스베드럽으로 이산화탄소가 일으킨 약화의 10분의 1, 2300년까지는 약 4스베드럽으로 40% 수준이었다. 2300년까지도 급격한 붕괴는 나타나지 않았고, 순환은 꺼지는 대신 약하고 얕아졌다. 무엇보다 약화의 크기가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거의 비례해 커졌다. 문턱을 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고전적 임계 거동과는 다른 모습이다. 다만 이 모델은 대기와 이어진 대신 소용돌이를 다시 뭉갠다. 두 갈래 연구는 각자 다른 쪽 눈을 감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는 축소판 대양이 있다
이 논쟁이 먼 바다 이야기만은 아니다. 동해는 한국·일본·러시아에 둘러싸인 평균 수심 1667m의 깊은 바다로, 대양과 떨어져 자기 심층수를 스스로 만든다. 대양의 열염순환이 한 바퀴 도는 데 1000년 안팎이 걸리는 것과 달리 동해의 순환 주기는 그보다 월등히 짧아, 해양학자들은 이곳을 대양의 미래를 미리 보는 축소판 실험실로 여긴다.
이호준 해군사관학교 교수와 남성현 서울대 교수가 2023년 한국해양학회지에 정리한 연구사는 대양 논쟁과 닮은 반전을 담고 있다. 1965년부터 1995년까지 동해에서는 대륙사면을 타고 내려가는 침강(심층사면대류)이 약해지면서 야마토 분지 심층의 염분과 용존산소가 계속 줄었다. 용존산소가 가장 낮은 층은 1960년대 후반 수심 1000m 안쪽에서 1990년대 중반 약 2000m로 내려앉았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180~530년 안에 동해 심층이 산소 없는 바다가 된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2000/2001년 겨울 침강이 되살아나면서 바닥층 생성이 재개됐고, 용존산소 감소율은 1977~1999년보다 1995~2015년에 뚜렷이 둔화했다. 무산소화 전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2060년까지도 바닥층이 유지될 것이라는 게 현재의 평가다. 동해의 자오면 순환은 1990년대 후반 두 개의 순환 세포에서 2000년대 하나로, 2010년대 초 다시 둘로 약 10년 주기의 변동을 보였다. 관측이 촘촘해지자 파국의 시점표가 바뀐 사례가 이미 우리 바다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한국 바다가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국립수산과학원 관측에서 1968~2023년 한국 해역의 연평균 표층 수온은 1.44℃ 올라, 같은 기간 전 지구 평균 상승폭(0.70℃)의 두 배를 넘었다. 환경부와 기상청이 지난해 9월 함께 펴낸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 2025'는 해양대순환과 해수면 상승을 별도 항목으로 다루면서, 2011~2024년 고수온으로 인한 수산업 누적 피해가 3472억 원에 이르렀다고 집계했다.
붕괴가 아니라 여유를 묻는 단계
정책 쪽 진단도 같은 자리로 모인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6차 평가보고서에서 2100년 이전에 AMOC가 급격히 붕괴하지는 않을 것으로 중간 신뢰도로 평가했다. 핀란드 기상연구소가 조율해 올해 2월 북유럽이사회(노르딕 카운슬) 이름으로 공개한 보고서 '북유럽 관점에서 본 AMOC 임계'도 붕괴 가능성 자체는 낮게 보면서, 다만 그 위험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못 박았다. 보고서 작업을 이끈 핀란드 기상연구소의 알렉시 눔멜린 연구교수는 "AMOC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급격한 약화나 붕괴 가능성은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위험"이라고 말했다.
이 보고서가 회원국에 제시한 조치는 세 가지다.
- 감축 — 임계 문턱을 더 잘 알게 될 때까지 배출을 강하게 줄이고 순배출 마이너스까지 밀어붙일 것
- 감시 — 관측망에 장기 재원을 확보하고, 위성 관측과 모델 계산을 묶은 AMOC 조기경보 체계를 정책 절차 안에 넣을 것
- 대비 — 서로 갈라지는 기후 미래를 함께 상정한 유연한 적응 전략과 위험관리 체계를 각급 정부에 적용할 것
감시 항목은 다른 곳에서도 같은 순위로 꼽힌다. 국제 연구진이 지난해 펴낸 '글로벌 티핑포인트 보고서 2025'도 주요 관측망을 유지·운영할 장기 재원을 확보하고, 지구 관측과 모델 계산을 결합한 AMOC 조기경보 체계를 만들 것을 권고했다.
권고들이 하나같이 붕괴 시점을 못 박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최신 계산이 가리키는 것은 안전이 아니라 시간이고, 그 시간의 길이는 배출량에 비례해 줄어든다. 논쟁의 무게중심은 옮겨 갔다. 이제 물음은 "붕괴가 실제냐"가 아니라 "얼마나 여유가 있느냐"이며, 답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앞으로 태울 탄소의 총량이 정한다.
자료: 지오피지컬 리서치 레터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위트레흐트대학교, 핀란드 기상연구소·북유럽이사회, 글로벌 티핑포인트 보고서, 한국해양학회, 환경부·기상청, 국립수산과학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