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포레스트 검프’에는 평평해지고 캡사이신에는 마지막 계단이 높아진 뇌

영화에 빠져들 때와 혀가 매운 통증으로 얼얼할 때, 뇌의 정보 흐름은 같은 모양을 유지할까. 성균관대학교와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분석한 결과,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는 동안에는 뇌의 감각 영역과 고차 영역 사이 ‘층간 높이’가 줄어들었다. 반면 캡사이신 통증을 겪을 때에는 최상단 바로 아래의 마지막 계단이 커졌다. 뇌 건물이 몇 분 사이 재건축됐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여러 영역 사이의 상대적 영향력이 상황에 맞춰 다르게 조절됐다고 계산된 것이다.
전기신호를 촬영한 것이 아니라 방향성 영향을 계산했다
연구진이 말하는 ‘위계’는 fMRI의 혈중산소농도의존(BOLD) 신호에서 계산한 무단위 상대점수다. BOLD는 신경세포의 전기활동 자체가 아니라 혈류와 산소화가 천천히 변하는 모습을 담는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전기펄스가 뇌 안을 이동하는 장면을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니다. 각 영역의 BOLD 시계열을 비교해 어느 영역이 다른 영역에 방향성 있는 영향을 주는지, 즉 유효연결성(effective connectivity)을 모델로 추정하고 상대적인 순서를 매겼다.
분석 대상은 대뇌피질 360개 구역이었다.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연결을 빼도 방향성 통로 후보는 최대 12만9,240개에 이른다. 회사 조직도로 비유하면 감각 정보를 처음 받는 부서부터 특정 종류의 정보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부서, 여러 종류의 정보를 종합하는 기획부서, 몸 내부 상태와 밀접한 변연곁피질까지 보고 흐름의 상대적 순서를 계산한 셈이다. 변연곁피질은 변연계 전체와 같은 말이 아니므로 ‘변연계가 최상층’이라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휴식 상태에서 나타난 기본 순서는 대체로 일차 감각·운동 영역, 단일양상 연합피질, 이종양상 연합피질, 변연곁피질 순이었다. 일차 영역은 시각이나 운동처럼 기본 감각·행동과 맞닿은 곳이고, 단일양상 연합피질은 같은 종류의 정보를 더 복잡하게 처리한다. 이종양상 연합피질은 서로 다른 종류의 정보를 함께 다루는 고차 영역이다.
한 가지 계산법 대신 여덟 가지의 판단을 합쳤다
사람의 뇌에는 어느 연결이 실제로 어느 방향으로 작동하는지 알려주는 완전한 정답지가 없다. 연구진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알고리즘의 결과를 베이지안 최적화로 가중 결합하는 iEC를 구성했다. 후보 방법은 9개였지만, 인간과 합성 네트워크 분석에서는 혈류반응에 민감한 MVGC를 제외하고 8개를 결합했다. 원숭이 분석에는 9개를 모두 사용했다.
검증은 세 단계로 이뤄졌다. 먼저 마취한 원숭이 19마리의 fMRI에서 얻은 추정치를 바이러스 추적법으로 확인한 해부학적 방향성 연결과 비교했다. 8마리는 훈련, 11마리는 시험에 사용됐다. 공개 원자료에서 iEC의 상관계수 중앙값은 약 0.592로, 가장 성능이 높았던 단일 알고리즘 LiNGAM의 약 0.534보다 높았다.
다음으로 연결 방향을 미리 정해 둔 합성 뇌 네트워크를 이용했다. 시험용 합성망은 지도별 80개였으며 iEC 성능 중앙값은 100영역 지도에서 r=0.75, 360영역 지도에서 r=0.65였다. 최고 단일 방법과 비교한 차이는 P=9.39×10⁻²⁸이었다. 마지막으로 인간 휴식 fMRI를 토대로 만든 모사 신호가 실제 자료를 얼마나 닮았는지 확인했다. 실제·모사 정적 기능연결성은 r=0.81, 동적 연결성의 KS 거리는 0.13, 영역별 시간지연은 r=0.42였다. 다만 이 단계는 인간 뇌의 실제 연결 방향과 대조한 검증이 아니라 관측자료를 재현하는 모형 적합도 시험이다.
주 분석에서는 연결강도 절댓값이 상위 15%인 연결을 사용했다. 상위 30%와 전체 100%까지 넓힌 보충분석도 시행했다. 지도 상관은 15%와 30% 사이 r=0.96, 30%와 100% 사이 r=0.95, 15%와 100% 사이 r=0.92였다. 전체 연결을 주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포함 범위를 바꿔도 위계 지도의 큰 틀이 유지되는지 점검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층간 차이가 줄고, 통증에서는 마지막 단차가 커졌다
영화 자료는 최종 13명이 독일어로 더빙된 약 2시간짜리 《포레스트 검프》를 약 15분씩 8구간으로 나눠 본 기록이다. 최초 15명 가운데 평균 프레임별 변위가 0.2mm를 넘은 2명은 제외됐다. 참가자 한 명당 3,599개의 fMRI 볼륨이 확보됐다.
휴식 상태의 위계 중앙값은 일차 감각·운동 0.4006, 단일양상 연합 0.5237, 이종양상 연합 0.6370, 변연곁피질 0.7626이었다. 영화 상태에서는 각각 0.4604, 0.5604, 0.5890, 0.6235였다. 아래쪽 감각 영역의 점수는 올라가고 위쪽 고차 영역의 점수는 내려오면서 양 끝 격차가 0.3619에서 0.1631로 좁아졌다. 그림 6의 중앙값을 취재진이 재계산하면 약 55% 축소다. 저자들이 직접 제시한 효과크기는 아니다.
통증 실험에서는 캡사이신이 든 시판 핫소스 0.1mL를 2×6.5cm 여과지의 지름 1cm 원에 바르고 혀에 30초 동안 접촉시켰다. 정확한 캡사이신 농도나 mg 용량은 공개되지 않았다. 최종 48명은 20분 동안 촬영을 받으며 ‘이 경험을 앞으로 얼마나 피하고 싶은가’를 연속적으로 평정했다. 이를 단순히 통증 강도 평가라고 부르기보다 통증 회피동기 연속평정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통증 상태의 네 구역 중앙값은 차례로 0.3738, 0.4889, 0.4998, 0.7261이었다. 모든 구역의 중앙값이 휴식보다 낮았지만 이종양상 연합피질이 특히 크게 내려가면서 변연곁피질까지의 마지막 단차가 0.1255에서 0.2263으로 커졌다. 취재진 재계산으로 약 80.3% 확대다. 그러나 전체 최저–최고 격차는 0.3523으로 휴식보다 약 2.7% 작았다. 따라서 ‘통증 때 뇌 전체 위계가 가팔라졌다’가 아니라 ‘변연곁피질 바로 아래의 마지막 단차가 커졌다’고 표현해야 한다.
상태의 효과인가, 서로 다른 데이터셋의 차이인가
가장 큰 제한은 세 상태가 같은 사람을 반복 촬영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휴식 자료는 440명, 영화 자료는 13명, 통증 자료는 48명으로 참가자뿐 아니라 국가, 언어, 연령, 스캐너, 촬영 간격과 촬영길이도 달랐다. 영화·통증 지도와 휴식지도의 공간상관은 각각 r=0.46과 r=0.64였고 모두 P<10⁻¹⁹이었지만, 이는 참가자별 상관이 아니라 360개 피질 영역의 공간배열을 비교한 값이다. 그림 6의 오차막대 역시 참가자 사이의 표준오차가 아니라 각 피질 구역에 포함된 세부 영역 사이에서 계산됐다.
영화는 한 편뿐이고 최종 표본도 13명이다. 장면 전환과 음량, 얼굴, 대사, 정서적 각성이 여러 뇌 영역을 동시에 움직여 가짜 방향성 연결을 만들 가능성도 남는다. 통증 자료 역시 건강한 젊은 성인의 일시적인 구강 통증으로, 만성통증 환자나 임상 통증을 조사한 결과가 아니다. 통증이 시간에 따라 감소한 데다 같은 자료의 재분석에서는 시간 경과가 개인별 평정 변동의 평균 53.7%±31.5%를 설명했다. 캡사이신 조건에서 머리 움직임과 심박도 대조 조건보다 증가했다.
연구진은 사람이 침습적인 추적물질로 뇌 연결 방향을 확인할 수 없다는 한계를 여러 추정법의 결합과 단계별 검증으로 보완했다. 질환 연구나 뇌 자극 표적 탐색으로 확장될 가능성은 있지만, 이번 연구가 환자를 구분하는 진단 정확도나 치료 효과를 시험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같은 참가자를 여러 상태에서 반복 측정하고, 영화의 장면 특성과 통증의 시간 변화·움직임·심박을 분리해야 ‘상태’ 자체가 위계 차이를 만들었는지 더 분명히 판단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오영현 제1저자와 홍석준·우충완 공동 교신·책임 연구자를 중심으로 진행됐으며, 2026년 9월 1일 《Nature Neuroscience》에 온라인 출판됐다.
자료: 성균관대학교·기초과학연구원(IBS)·한국연구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