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나노 구멍에 단 ‘화학 손잡이’, 생체분자 40종 구별했다

작은 구멍에 분자를 잠깐 붙잡아 두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까. 중국 난징대학교 연구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를 붙잡는 ‘화학 손잡이’를 구멍 안에 달았다. 분자가 붙었다 떨어질 때 생기는 전류 변화를 읽어, 아미노산부터 당까지 서로 다른 생체분자를 구별했다.
연구진이 2026년 9월 14일 발표한 분석 대상은 40종이었다. 전류 신호를 분류하는 정확도는 학습 데이터를 나눠 번갈아 평가하는 교차검증에서 98.7%, 따로 떼어 둔 데이터로 진행한 시험에서 약 97%였다. 한 종류의 센서가 여러 분자군을 인식했다는 성과다. 다만 단백질이나 RNA를 넣으면 전체 연결 순서를 읽어 주는 장치를 완성한 것은 아니다.
분자를 오래 붙잡고, 서로 다른 결합 부위를 인식하다
핵심 장치는 나노포어,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구멍이다. 연구진은 세균 유래 단백질 통로인 MspA의 좁은 부분에 maleimido-C2-FPBA라는 분자 어댑터를 부착했다. 어댑터는 통로에 분자 인식 기능을 더하는 부품이며, 완성한 센서의 이름은 MspA-FPBA다. ‘화학 손잡이’는 이 부품의 역할을 설명하는 비유로, 실제 손잡이 모양이라는 뜻은 아니다.
작은 분자를 읽으려면 먼저 측정할 수 있을 만큼 붙잡아야 한다. 분자마다 인식에 필요한 화학적 성질도 다르다. 기존 연구에서도 RNA 구성물질이나 아미노산을 구별했지만, 각각을 인식하도록 통로에 더한 화학 기능은 달랐다. 이번 연구는 일시적인 결합을 이용해 분자를 붙잡으면서, 서로 다른 분자군을 인식하는 기능을 하나의 센서 설계에 결합했다.
어댑터가 붙잡는 곳은 분자의 특정 화학 부위다. 아미노산과 펩타이드에서는 아미노기, 당과 RNA 구성물질에서는 시스다이올이라는 부위와 결합한다. 이 결합은 붙었다가 다시 떨어질 수 있는 ‘가역적 결합’이다. 결합하는 동안 전기를 띤 입자의 흐름인 이온전류가 달라지고, 연구진은 그 크기와 흔들림, 지속시간 등을 읽었다.
분자가 남긴 ‘전기 지문’을 비교하는 셈이다. 다만 사람의 지문처럼 언제나 유일한 신호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분석 대상은 아미노산 24종, RNA 구성물질인 뉴클레오사이드 일인산(NMP) 7종, 단당류 4종, 아미노산이 짧게 연결된 펩타이드 5종이었다. ‘구멍 하나’는 한 종류의 센서 설계를 뜻하며, 40종이 모두 섞인 시료를 한 번에 완전 분석했다는 의미로 확대할 수 없다.
98.7%는 무엇을 얼마나 잘 맞혔다는 뜻인가
연구진은 분자가 결합하며 나타난 전류 신호 한 건을 ‘이벤트’로 다루고, 여기서 9개 특징을 추출했다. 분류에는 배깅 결정트리 모델을 사용했다. 여러 판별 기준에 따라 답을 고르는 결정트리를 여럿 만들고, 그 판단을 합치는 기계학습 방식이다. 98.7%는 비교한 모델 가운데 가장 높았던 10겹 교차검증 정확도였다. 데이터를 열 부분으로 나눠 번갈아 성능을 확인한 결과다.
이 수치의 기준은 분류 대상 전류 이벤트다. 환자를 진단한 정확도도, 시료에 들어 있는 분자의 98.7%를 찾아냈다는 뜻도 아니다. 감을 잡기 위해 98.7%를 신호 1000건에 단순 환산하면 오분류 약 13건에 해당한다. 이는 실제 관측 건수나 임상 오류율이 아닌 산술적 비유다. 별도 시험에서 얻은 약 97%도 함께 봐야 한다.
공개 데이터에는 해석을 위해 더 설명해야 할 부분이 있다. 대상 물질은 40종이지만, 데이터에 붙은 분류 이름인 라벨은 41개였다. 개별 물질명 외에 ‘NMP’라는 라벨이 추가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라벨의 세부 처리 방식과 정확도 집계의 대응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모든 이벤트에서 40종을 각각 동정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분석에 들어가기 전 신호를 선별한 과정도 살펴야 한다. 심사 답변에는 2밀리초, 즉 1000분의 2초보다 짧은 이벤트를 통계 분석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보고요약에는 제외한 데이터가 없다고 기재했다. 적용 범위나 처리 단계의 차이에서 비롯된 설명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성능 수치를 재현하려면 이 부분의 설명도 명확해져야 한다.
연구진은 조건별로 최소 3회의 독립 실험을 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공개 분류기의 교차검증은 이벤트 행을 대상으로 했다. 다른 연구실이나 다른 기공, 다른 날짜의 데이터를 완전히 분리한 외부 성능은 확인되지 않았다. 내부 반복실험과 외부 재현은 서로 다른 검증 단계다.
분자 하나를 감지해도 묽은 시료에서는 기다려야 한다
실제 시료를 다룬 실험에서는 전처리가 필요했다. 효모 추출물은 분자량에 따라 거르는 필터로 4℃에서 60분간 여과했다. 여과하지 않은 대조실험은 통로가 반복적으로 막혀 중단됐다. 당이 붙은 펩타이드인 G2는 80℃에서 12시간 동안 산으로 분해한 뒤 효소 처리와 여과를 거쳤다. 시료를 그대로 넣어 즉석에서 읽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감도 역시 분류 정확도와 구분해야 한다. 이미 잡힌 신호를 잘 구별하더라도, 묽은 시료에서는 분석할 신호가 충분히 생기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연구진은 단일 나노포어로 10분 동안 결합 이벤트 5건을 얻는 최소 농도를 검출한계로 정했다. 이는 이번 연구의 실용적 기준이므로 다른 분석법과 비교할 때도 측정시간과 조건을 맞춰야 한다.
이 기준에서 검출한계는 아미노산 5∼25μM, NMP 10∼30μM, 단당류 100∼250μM, 짧은 펩타이드 1∼6μM이었다. μM은 용액 속 물질이 얼마나 묽게 들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농도 단위이며, 같은 기준에서는 더 낮은 농도까지 검출할수록 감도가 높다. 가장 좋은 펩타이드 결과인 1μM만으로 센서 전체 성능을 대표할 수 없는 이유다.
무엇인지 맞히는 것과 얼마나 들어 있는지 재는 것도 별개였다. G2 분해물의 당 성분 GlcNAc는 연구진이 제시한 근사 기준 농도가 20mM이었지만, 3회 측정 평균은 16.27mM이었다. mM도 농도 단위다. 원자료를 재계산한 결과, 확인한 8개 성분의 측정 평균은 각각 근사 기준값보다 약 10.5∼24.4% 낮았다. 이는 해당 실험의 결과이며 모든 시료에 적용되는 센서 오차율은 아니다.
공개 심사에서도 실용성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초기 심사자는 사용한 농도에서 질량분석으로도 검출과 정량이 가능하다며 구체적인 응용을 요구했다. 연구진은 혼합물과 당펩타이드 분석, 질량분석 자료와 코드를 보강했고, 수정 후 공개된 주요 심사평은 게재에 동의했다. 다만 낮은 감도와 미지 물질의 간섭은 남은 과제로 지적됐다. 모르는 물질이 기존 물질과 비슷한 신호를 내면 분류를 혼동시킬 수 있다는 문제다.
재료를 구별하는 센서에서 연결 순서를 읽는 장치로
미지 물질을 다루는 범위에도 경계가 있다. 적은 예시로 학습하는 공개 분류기가 내놓는 답은 아미노산·NMP·펩타이드·당이라는 4개 계열이다. 모르는 분자의 정확한 이름과 구조를 자동으로 밝혀 주는 것은 아니다. G2 실험에서 만노스와 갈락토스를 동정할 때도, 정체를 아는 표준물질과 비교하는 절차가 뒤따랐다.
구성 성분을 알아내는 일과 원래 연결 순서를 읽는 일은 다르다. 구슬을 낱개로 풀어 색을 구별해도 목걸이에 꿰어져 있던 순서까지 알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이번 연구 역시 분해된 재료의 식별을 보여 줬다. 긴 펩타이드는 입체적인 방해 때문에 분류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 짧은 펩타이드 5종의 결과를 모든 단백질에 적용할 수도 없다.
국내에서도 나노포어가 분자를 구별하는 원리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2026년 YaxAB 나노포어로 BRD4 단백질과 저분자 약물이 결합한 복합체를 분석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2024년 다른 단백질 통로인 α-헤몰리신을 통한 아미노산 13종의 이동을 조사했다. 분자 크기와 수소결합 능력이 거울상 선택성, 즉 서로 거울에 비친 모양인 분자를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성질에 영향을 준다고 보고했다. 두 연구 모두 이번 센서와 기공·대상·방법이 다른 관련 사례다.
이번 성과의 의의는 서로 다른 생체분자군을 읽는 화학 기능을 한 센서 설계 안에 모았다는 데 있다. 다음 과제는 복잡한 시료에서도 신호를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외부 연구실에서 재현하며, 분자를 잘라 주는 분해효소와 판독 과정을 연결하는 것이다. 연구진이 제안한 작은 측정실, 다수 기공, 장시간 측정의 개선 효과도 아직 실증되지 않았다. ‘분자 판독기’의 가능성은 열렸지만, 구성 순서까지 안정적으로 읽는 장치로 가기 위해서는 이 단계들을 검증해야 한다.
자료: 난징대학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