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뇌 하나를 통째로 지도로 그렸다 — 초파리가 연 마음의 배선도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07.23 19:19 · 수정 2026.08.24 12:22
14만 개 신경세포와 5천만 개 연결을 빠짐없이 그린 세계 첫 성체 동물 뇌 지도. 그 지도만으로 초파리의 다음 행동까지 맞혔다
[기획] 뇌 하나를 통째로 지도로 그렸다 — 초파리가 연 마음의 배선도
이번 커넥톰 연구의 대상인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 (사진 출처=Wikimedia Commons, Francisco Romero Ferrero, CC BY-SA 4.0)

폭 1밀리미터도 안 되는 뇌를 통째로 얇게 썰었다. 그 안에서 신호를 주고받는 세포 약 14만 개를 하나씩 찾아내고, 세포 사이의 접점 약 5천만 개를 모두 이었다. 2024년 과학자들은 이렇게 성체 암컷 초파리 한 마리의 뇌 전체 배선도를 완성했다. 걷고 볼 수 있는 성체 동물의 뇌를 이토록 세밀하게 그린 것은 처음이었다.

이 배선도를 ‘커넥톰’이라고 부른다. 뇌 속의 모든 신경세포와 그 연결을 빠짐없이 표시한 지도라는 뜻이다. 도시의 모든 집과 도로, 교차로를 한 장에 그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지도는 단순히 복잡한 그림에 그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연결만 보고 초파리의 뇌에서 어떤 신호가 흐를지, 나아가 어떤 행동이 나올지까지 상당 부분 맞혔다.

그렇다면 뇌의 선을 모두 그리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알 수 있을까. 초파리 커넥톰의 진짜 의미는 그 질문에 처음으로 제법 구체적인 답을 내놓았다는 데 있다. 동시에 지도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도 선명하게 드러냈다.

뇌 속의 모든 길을 그린 지도

뇌의 기본 단위는 뉴런, 곧 신호를 주고받는 신경세포다. 뉴런은 가느다란 가지를 길게 뻗어 다른 뉴런과 이어진다. 두 뉴런 사이에서 신호를 건네는 접점은 시냅스라고 한다. 집이 뉴런이라면 집과 집 사이에 물건을 넘기는 작은 교차로가 시냅스인 셈이다.

커넥톰은 어느 집이 어느 집과 연결됐는지만 대충 표시한 지도가 아니다. 약한 연결인지 강한 연결인지 짐작할 수 있도록 개별 접점까지 찾아야 한다. 초파리 뇌에서는 아무 두 뉴런을 골라도 평균 약 네다섯 단계를 거치면 서로 이어졌다. 몇 사람만 건너면 낯선 사람과도 연결되는 사회처럼, 뇌도 촘촘한 ‘좁은 세상’이었다. 모든 신호를 지배하는 하나의 중심은 없었고, 연결은 여러 곳에 나뉘어 있었다.

필립 슐레겔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자는 이 자료를 뇌를 위한 구글 지도에 비유했다. 위성사진 속 어떤 선이 도로이고 어떤 모양이 건물인지 구별하듯, 복잡한 뇌 사진 속에서 어느 가닥이 어느 세포에 속하는지 밝혀낸 지도라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뉴런을 생김새와 연결 방식이 비슷한 세포 유형 8453종으로 정리했다. 이는 전체 뉴런의 96.4%를 포괄했다. 그 가운데 4581종은 새로 발견한 유형이었다. 작은 뇌 하나에서도 전에 이름조차 없던 부품이 수천 종 나온 셈이다.

2100만 조각의 퍼즐을 다시 맞추다

뇌는 너무 작고 신경 가닥은 너무 가늘어 보통 현미경으로 연결을 따라갈 수 없다. 연구진은 먼저 초파리 뇌를 햄처럼 얇게, 40나노미터 두께로 약 7050장 썰었다. 이어 전자현미경으로 각 절편의 아주 미세한 구조를 촬영했다. 그 결과 약 2100만 장, 100테라바이트가 넘는 이미지가 쌓였다. 1000조각 퍼즐의 2만1000배에 해당하는 조각을 평면이 아니라 입체로 맞춰야 했다.

이 작업의 선배는 작은 벌레인 예쁜꼬마선충이었다. 1970~80년대 연구자들은 컴퓨터 메모리가 64킬로바이트에 불과하던 시절, 현미경 사진을 종이에 인쇄하고 색연필로 뉴런을 칠했다. 뉴런 302개의 연결을 손으로 추적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작업에는 ‘어느 벌레의 마음’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초파리 성체의 뉴런은 약 14만 개다. 선충의 약 460배다. 사람이 색연필만 들고 달려들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인공지능이 이미지 속 신경 가닥을 자동으로 따라가며 입체 모양을 만들었다. 인공지능이 잘못 잇거나 놓친 부분은 사람이 다시 확인해 고쳤다.

서배스천 승 프린스턴대 연구자는 인공지능 계산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전체 배선도를 손으로 복원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람의 교정 작업만 합쳐도 한 사람이 약 33년 동안 매달려야 할 분량이었다. FlyWire 컨소시엄에는 287명과 76개 연구실이 참여했고, 게임처럼 오류를 찾은 시민과학자들도 힘을 보탰다. 결과는 2024년 10월 2일 네이처에 발표됐다.

지도는 초파리의 다음 행동을 맞혔다

배선도는 길을 보여주지만, 지금 어느 길로 차가 달리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뇌도 마찬가지다. 시냅스가 있다고 해서 신호가 언제 흐르는지, 그 신호가 다음 뉴런을 켤지 끌지는 지도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연결을 다 알면 실제 행동을 얼마나 예측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남았다.

별도 연구팀은 커넥톰에 신경전달물질의 예측값을 더했다. 신경전달물질은 한 뉴런이 다음 뉴런에 신호를 건네는 데 쓰는 화학 물질이다. 연구진은 전자현미경 이미지에서 여섯 종류를 추정했고, 뉴런 단위 정확도는 94%였다. 다만 직접 모두 측정한 값은 아니었다.

연구팀은 각 연결이 다음 뉴런을 켜는지 누르는지를 표시한 뒤, 약 14만 개 뉴런을 컴퓨터 안에서 움직였다. 계산 규칙은 뉴런을 물 받는 양동이처럼 보는 방식이었다. 이웃의 신호가 들어오면 물이 차고, 일정 높이를 넘으면 신호를 내보낸다. 물은 그동안 조금씩 샌다고 가정했다. 실제 뉴런의 복잡한 생김새와 차이는 과감히 덜어낸 단순한 모형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보다 강력했다.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164개 예측 가운데 91%가 실제 초파리 실험과 맞았다. 단맛을 느끼는 뉴런을 켜면 먹는 동작을 일으키는 뉴런이 켜지고, 쓴맛 신호를 함께 주면 그 동작이 꺼지는 순서를 컴퓨터가 먼저 맞혔다. 모델이 새로 지목한 억제 뉴런도 실제 실험에서 확인됐다. 억제 뉴런은 다른 뉴런의 활동에 제동을 거는 신경세포다.

필립 시우 당시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연구자는 모든 흥분성 뉴런이나 억제성 뉴런이 똑같이 작동한다고 가정한 것은 실제와 다르다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신경 활동을 놀랄 만큼 높은 수준으로 예측했다고 밝혔다. 커넥톰은 처음으로 ‘보기 좋은 지도’를 넘어, 실험 전에 결과를 가늠하는 도구가 됐다.

초파리에서 인간까지, 갑자기 높아지는 벽

초파리는 작지만 연습용 뇌 지도 이상의 가치가 있다. 서배스천 승 연구자에 따르면 인간의 질병 관련 유전자 가운데 약 75%는 초파리에도 대응하는 유전자가 있다. 완성된 배선도에서 어떤 신호 경로를 먼저 살펴볼지 컴퓨터로 좁힐 수 있다면, 모든 후보를 일일이 시험하는 수고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규모의 계단은 가파르다. 뉴런 302개의 선충에서 2023년 초파리 유충 3016개를 거쳐, 2024년 성체 초파리 약 14만 개에 도달했다. 그다음 단계인 쥐에서는 뇌 전체가 아니라 시각을 처리하는 부위의 1세제곱밀리미터 조각만 그렸다. 2025년 MICrONS 연구가 다룬 이 작은 조각에도 뉴런 약 8만4000개와 시냅스 약 5억 개가 들어 있었다.

연구진은 쥐가 영상을 보는 동안 어떤 뉴런이 활동하는지 먼저 기록한 뒤, 조직을 2만8000장으로 썰어 배선도와 겹쳐 보았다. 살아 있을 때의 움직임과 조직 속 구조를 함께 본 것이다. 모래 한 알만 한 부피 안에서 신경 가닥의 총길이는 4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인간의 벽은 훨씬 멀다. 인간 뇌에는 뉴런이 약 860억 개, 연결이 약 100조 개 있다. 전자현미경으로 전체를 담으면 제타바이트급 자료가 필요해 현재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다. 초파리에서 간신히 완성한 도시 지도가 인간에게서는 대륙 전체를 그리는 일이 되는 셈이다.

배선도는 마음 그 자체가 아니다

이번 지도는 암컷 한 마리의 뇌를 바탕으로 했다. 다른 개체에서도 같은 세포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다시 찾을 수 있는지 살폈을 때 32%는 신뢰성 있게 재식별하지 못했다. 초파리의 뇌도 개체마다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커넥톰은 한순간의 구조를 굳혀 놓은 정적 지도이기도 하다. 지금 어떤 뉴런이 활발한지, 경험에 따라 연결의 힘이 어떻게 바뀌는지, 여러 화학 신호가 뇌 전체의 상태를 어떻게 달리 만드는지는 담지 못한다. 선충의 완전한 지도를 40년 가까이 가지고도 그 지도만으로 행동을 모두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남아 있는 이유다.

그레고리 제프리스 케임브리지대와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자는 뇌를 컴퓨터로 흉내 내려면 구조뿐 아니라 뉴런이 서로를 어떻게 켜고 끄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파리 커넥톰은 뇌를 업로드한 결과가 아니다. 마음을 복제한 것도 아니다. 다만 보이지 않던 길을 처음으로 끝까지 그렸고, 그 길 위에서 신호가 어디로 갈지 시험할 수 있게 했다.

한 세대 전 과학자들은 색연필로 뉴런 302개를 따라갔다. 이제 인공지능과 수백 명의 사람이 약 14만 개를 연결하고, 그 지도에서 먹을지 멈출지까지 예측했다. 인간의 뇌까지 가는 길은 아직 아득하다. 그래도 길을 묻기 시작하려면 먼저 지도가 있어야 한다. 폭 1밀리미터도 안 되는 초파리 뇌는 우리가 마음의 길을 어떤 순서로 찾아가야 하는지 보여준 첫 온전한 도시가 됐다.

그 지도에는 한국 연구실의 손길도 닿아 있다

커넥톰으로 초파리의 행동 생성 과정을 컴퓨터에서 재현한 연구에는 한국 연구실도 국제 연구팀의 일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성균관대에 따르면 이 대학 생명과학과 김진섭 교수팀은 2024년 10월 네이처 특별호에 9편이 동시 게재된 FlyWire 컨소시엄 성과 가운데 뉴런 활성 시뮬레이션 연구를 맡았다. 컨소시엄을 이끈 프린스턴대 서배스천 승 교수의 한국 이름은 승현준이고, 커넥톰 제작에 쓰인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는 이기석·배준환 박사 등 한국인 연구자들이 힘을 보탰다.

정부 계획 층위에서 한국 뇌과학의 좌표는 '추격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5개 부처가 2023년 6월 확정한 제4차 뇌연구촉진기본계획(2023~2027)은 국내 뇌과학 기술수준을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2018년 67.5에서 2020년 72.5로 올라섰다고 진단하고, 2027년까지 85로 높여 선도그룹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걸었다. 유전자 가위, 오가노이드(장기 유사체), 전압 이미징 같은 첨단 연구도구 기반의 연구방법론 혁신이 첫 번째 과제로 명시돼 있다.

미국 대비 72.5 — 계획서가 짚은 추격의 속도와 빈칸

같은 계획서는 한국의 상위 1% 뇌연구 논문 수가 연평균 10.3%씩 늘어 세계 평균(1.6%)의 여섯 배가 넘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적었다. 커지는 역량을 큰 성과로 바꿀 통로로 계획이 제시한 해법은 한국뇌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 거점기관의 개방성 강화와 국제공조다.

FlyWire가 보여준 개방형 협력은 그 주문과 정확히 겹치는 방식이었다. 포유류 뇌 지도라는 다음 판이 이미 벌어진 지금, 지도를 그리는 쪽만큼 중요해진 것이 지도를 '읽는' 쪽이다. 완성된 배선도에서 신호 흐름을 계산하고 검증하는 시뮬레이션 역량에 일찌감치 지분을 확보한 한국 연구실의 존재는, 다음 단계 경쟁에 올라탈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자료: 프린스턴대, 케임브리지대, 영국 의학연구위원회 분자생물학연구소, 버몬트대, 앨런뇌과학연구소, 네이처·사이언스·셀·성균관대학교·과학기술정보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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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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