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밤하늘 전체를 사흘마다 찍는다 — 우주의 '영화'가 시작됐다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07.23 19:17 · 수정 2026.09.07 10:55
세계 최대 32억 화소 카메라를 얹은 베라 루빈 천문대가 10년 대장정을 열었다. 몸풀기 열 시간에 소행성 2100여 개, 한 장에 은하 1000만 개 — 암흑물질 발견자의 이름을 단 눈이 보이지 않는 우주를 쫓는다
[기획] 밤하늘 전체를 사흘마다 찍는다 — 우주의 '영화'가 시작됐다
베라 C. 루빈 천문대가 '퍼스트 룩' 공개 당시 촬영한 트리피드·라군 성운 (사진 출처=NSF-DOE Vera C. Rubin Observatory/NOIRLab/SLAC/AURA, CC BY 4.0)

오늘 7월 23일은 미국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태어난 날이다. 그는 은하 바깥쪽의 별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도는 모습을 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력으로 별을 붙잡는 물질이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남겼다. 이것이 암흑물질이다. 빛을 내지도, 반사하지도 않아 직접 볼 수 없는 우주의 숨은 재료다.

그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루빈의 이름을 단 천문대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우주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칠레 세로 파촌 산꼭대기에 세워진 베라 C. 루빈 천문대다. 미국 국립과학재단과 에너지부가 함께 만든 이 천문대는 남쪽 하늘 전체를 되풀이해 촬영하며 10년짜리 ‘우주의 영화’를 만든다.

이 영화가 중요한 까닭은 단순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늘을 주로 한 장의 사진처럼 봤다. 루빈 천문대는 같은 곳을 계속 찍어 무엇이 새로 나타나고, 움직이고, 밝아지고, 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고요해 보였던 밤하늘이 사실은 얼마나 바쁜 곳인지 처음으로 거대한 규모에서 드러나는 셈이다.

소형차만 한 카메라가 하늘을 삼킨다

루빈 천문대의 눈은 지름 8.4미터짜리 거울이다. 망원경의 거울은 빗물을 받는 대야와 비슷하다. 넓을수록 더 많은 빛을 모은다. 그래서 희미하고 먼 천체가 오래전에 보낸 빛까지 붙잡을 수 있다.

그 빛은 세계 최대 디지털 카메라인 엘에스에스티 카메라에 맺힌다. 화소는 사진을 이루는 작은 점이다. 이 카메라는 그런 점을 32억 개나 갖췄다. 스마트폰 사진 약 260장을 한 프레임 안에 넣는 규모다.

카메라는 소형차만 하고 무게는 약 3톤이다. 내부 온도는 영하 100도까지 내려간다. 사진 한 장을 원래 크기로 펼쳐 보려면 4케이 텔레비전 약 400대가 필요하다. 약 25킬로미터 떨어진 골프공을 구별할 만큼 세밀하게 본다.

그런데 이 카메라의 진짜 힘은 확대보다 넓이에 있다. 한 번 셔터를 누를 때 보름달 약 40개를 늘어놓은 만큼의 하늘이 들어온다. 루빈 천문대는 이 넓은 시야로 하룻밤에 약 1000장을 찍는다. 매일 밤 쌓이는 자료만 약 10~20테라바이트다.

준비는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2024년 10월 시험용 카메라가 처음 진짜 별빛을 받아 이미지를 만들었다. 천문학에서는 이 순간을 ‘첫 별빛’이라고 부른다. 2025년 6월 23일에는 첫 이미지가 공개됐고, 2026년 2월에는 하늘의 변화를 알리는 공개 속보 운영이 시작됐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10년 관측이 막을 올렸다.

브라이언 스톤 미국 국립과학재단 국장 직무대행은 “루빈 천문대는 역사상 모든 광학 망원경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우주 정보를 포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첫 1년만으로 인류 역사상 모든 광학 망원경이 촬영한 것보다 더 많은 천체를 찍게 된다.

별 사진이 10년짜리 영화가 되는 순간

이 계획의 이름은 ‘시공간 유산 조사’다. 흔히 엘에스에스티라고 부른다. 말은 어렵지만 방법은 익숙하다. 휴대전화로 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은 뒤 사진을 빠르게 넘기면 움직임이 보인다. 루빈은 남반구 하늘 전체를 약 3~4일마다 다시 찍는다.

하늘의 각 지점은 10년 동안 약 800번 카메라에 담긴다. 한 번의 사진에서는 알아채기 어려운 작은 변화도 800장을 이어 보면 모습을 드러낸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관측을 ‘시간영역 천문학’이라고 부른다. 하늘을 스냅사진이 아니라 영화로 연구한다는 뜻이다.

먼저 공개된 장면은 이 눈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보여줬다. 루빈 천문대는 삼렬성운과 석호성운을 7.2시간 동안 678번 찍어 한 장으로 합쳤다. 성운은 별 사이에 퍼진 가스와 먼지의 구름이다. 넓은 구름 속의 가느다란 구조까지 한 화면에 살아났다.

처녀자리 은하단을 찍은 한 장에는 은하가 약 1000만 개 담겼다. 은하는 수많은 별이 모인 거대한 무리다. 사진 속에 빼곡한 점은 대부분 가까운 별이 아니라, 저마다 엄청난 수의 별을 품은 멀리 있는 은하다. 작은 화면 하나가 우주의 군도처럼 바뀐다.

하지만 아름다운 사진은 출발점일 뿐이다. 이 천문대가 노리는 것은 어제와 달라진 점이다. 새 사진을 이전 사진 위에 포개면 제자리에 있는 별은 겹치고, 움직인 점은 어긋난다. 거대한 ‘틀린 그림 찾기’다. 그 움직인 점 가운데 하나가 소행성일 수 있다.

열 시간 만에 걸려든 소행성 2100여 개

몸풀기 관측의 결과부터 예상을 뛰어넘었다. 루빈 천문대는 며칠 밤에 걸친 약 10시간의 시험 관측만으로 새 소행성 약 2100여 개를 찾아냈다고 처음 발표했다. 이후 일부가 이미 알려진 천체로 확인돼, 확정된 신규 소행성은 약 1900개가 됐다.

이 속도를 알려면 비교가 필요하다. 전 세계 모든 관측소가 한 해 동안 찾는 소행성은 약 2만 개다. 루빈은 불과 열 시간 동안 그 수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후보를 건져 올렸다. 좁은 바다에서 낚싯줄을 드리우다가 갑자기 하늘 전체에 그물을 펼친 것과 비슷하다.

이어진 약 6주의 몸풀기 관측에서는 소행성 1만1000개 이상을 추가로 발견했다. 그중 33개는 지구 가까운 우주를 지나는 부류인 근지구천체였다. 아리 하인츠 워싱턴대 연구자는 “우리는 그것을 만들었고, 실제로 작동한다. 초기의 공학 시험 자료만으로도 루빈은 소행성 1만1000개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2025 엠엔45라는 소행성은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지름 710미터인 이 바위는 1분 53초마다 한 바퀴를 돌았다. 너무 빨리 돌면 바깥으로 흩어지기 쉬운데도 형태를 유지했다.

세라 그린스트리트 워싱턴대 연구자는 “이 소행성이 그렇게 빠르게 돌면서도 한 덩어리로 남으려면 매우 강한 물질로 이뤄져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소행성은 사진 속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반복 촬영은 그 점의 속도와 성질까지 캐묻게 한다.

마리오 유리치 워싱턴대 태양계 수석과학자는 “과거에는 발견하는 데 수년이나 수십 년이 걸렸던 것을 루빈은 몇 달 만에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발견의 속도가 빨라지면 희귀한 천체가 우연히 걸리기를 기다리는 대신, 여러 천체를 한꺼번에 비교할 수 있다.

밤마다 쏟아지는 700만 통의 하늘 속보

루빈 천문대는 달라진 점을 발견하면 촬영 뒤 2분 안에 전 세계로 전자 속보를 보낸다. 이 속보는 새로 나타난 빛, 갑자기 밝아진 천체, 자리를 옮긴 점을 담은 ‘하늘의 뉴스 속보’다.

규모가 엄청나다. 공식적으로 예상하는 최대치는 하룻밤 약 700만 건이다. 2026년 2월 24일 첫 운영 밤에만 약 80만 건이 실제로 쏟아졌다. 사람이 하나씩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곱 개의 자동 ‘브로커’가 속보를 먼저 받는다. 여기서 브로커는 수많은 변화를 성격에 따라 자동으로 가르고, 연구자가 원하는 것만 골라 배달하는 분류 장치다. 움직이는 점을 찾는 사람에게는 소행성 후보를, 갑자기 밝아진 별을 찾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변화를 보낸다.

신팡 치앙 에스엘에이시 국립가속기연구소 알림 개발자는 “속보의 규모와 속도는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망원경 한 대가 관측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세계 곳곳의 연구자에게 다음에 볼 곳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발견 기계가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우주를 그리는 800장의 겹침

루빈 천문대의 가장 긴 질문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은 우주를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현재 우주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보통물질의 몫은 약 5퍼센트다. 암흑물질은 약 27퍼센트, 암흑에너지는 약 68퍼센트로 본다.

암흑에너지는 우주를 밀어내고 흩뜨리는 것으로 설명되는 수수께끼의 존재다. 안드레스 플라사스 말라곤 루빈 천문대 운영과학자는 “암흑물질은 우주의 구조물을 만들려 하고, 암흑에너지는 그것을 옅게 만들며 서로 밀어내려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암흑물질은 보이지 않지만 중력은 남긴다. 무거운 물질 앞을 지나온 빛은 경로가 살짝 휜다. 이를 중력렌즈라고 한다. 울퉁불퉁한 유리창 너머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져 보이는 것과 닮았다.

그 휘어짐이 아주 약하면 은하 하나만 보고 알아채기 어렵다. 루빈 천문대는 수십억 개 은하의 미세한 모양 변화를 모아 공통된 뒤틀림을 찾는다. 그렇게 빛을 휘게 한 보이지 않는 물질의 분포를 지도처럼 그릴 계획이다.

물론 첫 사진 몇 장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곧바로 밝혀주는 것은 아니다. 공개된 초기 자료도 본격 관측에 앞선 공학 시험 수준이었다. 같은 하늘을 수백 번 찍고, 수십억 개 은하의 작은 차이를 쌓아야 비로소 거대한 무늬가 드러난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는 10년이 필요하다.

오늘은 보이지 않는 물질의 흔적을 좇았던 베라 루빈의 생일이다. 그의 이름은 미국 국립천문대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천문학자의 이름이 됐다. 그리고 이제 그 이름을 단 거대한 눈이, 누구도 한꺼번에 보지 못했던 변화의 하늘을 기록하고 있다.

베라 루빈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누구인가 같은 어리석은 이유로 누구도 당신을 짓누르게 두지 마라. 상과 명성을 걱정하지도 마라. 진짜 상은 저 밖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루빈 천문대가 찍을 것은 별의 목록만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질문조차 붙이지 못한 변화들, 그러니까 ‘저 밖의 새로운 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남반구 하늘을 지켜온 한국의 세 눈, KMTNet

같은 하늘을 계속 찍는 전략은 한국도 이미 쓰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2014년 칠레 세로톨롤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서덜랜드, 호주 사이딩스프링 천문대 세 곳에 구경 1.6m 광시야 망원경을 세워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을 구축했다. 지구 자전을 따라 세 관측소가 릴레이하듯 이어받으며 남반구 밤하늘을 24시간 연속 감시하는 방식이다. 앞 별의 중력이 돋보기처럼 뒷별 빛을 키우는 미시중력렌즈 현상으로 외계행성을 찾아내고, 소행성과 초신성도 함께 감시해 왔다.

규모는 루빈 천문대에 못 미치지만, 하늘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 시간영역 관측을 10년 앞서 실행해 온 셈이다. 천문연은 2015년 국가 우주환경 감시기관으로 지정돼, 한국·미국·이스라엘·모로코·몽골 5곳의 관측소로 인공위성 등 우주물체를 추적하는 감시망(OWL-Net)도 운영하고 있다.

소행성 감시, 법과 계획의 영역으로

쏟아지는 발견을 받아낼 제도도 각국이 정비해 왔다. 미국 의회는 2005년 법으로 NASA에 지름 140m 이상 근지구천체의 90% 이상을 찾아내라는 임무를 부여했고, NASA는 이를 위해 전용 적외선 우주망원경 'NEO 서베이어'를 2020년대 후반 발사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루빈처럼 하늘 전체를 훑는 망원경은 이 목록을 채울 핵심 도구로 꼽힌다.

한국도 계획을 세웠다. 우주항공청은 2024년 10월 제2회 국가우주위원회에서 '제2차 우주위험대비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우주물체의 추락·충돌 대비를 앞세우고, 궤도 위 물체를 붙잡아 치우는 우주물체 능동제어 기술을 독자 개발해 민간 사업화까지 잇겠다는 내용이다. 하늘을 더 빨리, 더 넓게 볼수록 위험도 더 많이 보인다. 감시가 발견으로, 발견이 대응으로 이어지는 체계가 각국의 공식 문서에 오르기 시작했다.

자료: 미 국립과학재단·미 에너지부, 베라 C. 루빈 천문대, 미 국립광학적외선천문연구소, 에스엘에이시 국립가속기연구소, 워싱턴대·한국천문연구원·우주항공청·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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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반도체·일반공학 — 공정·소자·파운드리·메모리 및 기계·전기·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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