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환자 단 한 명을 위한 약 — CHCHD10 ALS 환자에게 맞춤 RNA 치료제 투여

매일 약국에서 조제되는 약이 아니라 지구에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처음부터 새로 설계된 약이 있다면 어떨까. 보통 새로운 약은 수천 명이 참여하는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시장에 나오지만, 미국에서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 단 한 명을 위해 설계된 RNA 치료제가 실제로 만들어져 투여됐다. 이 환자는 CHCHD10이라는 유전자에 'R15L'이라는 특정 변이를 갖고 있었고, 이 변이를 가진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도 극소수였기 때문에 그를 위한 약을 처음부터 새로 설계해야 했다.
왜 만들기 어려웠나
ALS는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며 근육이 점점 마비되는 질환이다. CHCHD10 단백질은 세포 속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의 내막 구조(MICOS 복합체)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며, 이 유전자는 2014년 프랑스에서 진행된 가족성 ALS 코호트 연구를 통해 처음 원인 유전자 후보로 지목됐다.
문제는 CHCHD10 변이가 병을 일으키는 방식을 두고 학계 의견이 엇갈렸다는 점이다. 단백질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긴다는 '기능 상실' 가설과, 변이된 단백질이 오히려 세포 안에 쌓여 독성을 일으킨다는 '독성 획득' 가설이 정반대로 맞섰다. 두 가설은 치료 전략도 정반대다. 부족하다면 단백질을 늘려야 하고, 쌓인다면 그 원인이 되는 메신저RNA(mRNA)를 줄여야 한다. 이 논쟁이 치료제 설계를 오래 지연시킨 배경으로 꼽힌다.
게다가 CHCHD10 변이 자체가 ALS를 일으키는지에 대한 근본 논쟁도 있다. 2018년 한 연구는 초기 보고된 변이들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제기했고, 같은 해 7개국에서 약 4300명의 환자와 1800명대 대조군을 비교한 대규모 연구는 일반 ALS 환자군에서 이 유전자 변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많이 발견되지는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3년 만에 완성된 '한 사람의 약'
메이요 클리닉(플로리다)과 비영리재단 n-Lorem Foundation은 이 환자를 위해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라는 방식의 치료제를 개발하기로 했다. ASO는 특정 유전자에서 만들어지는 메신저RNA에 달라붙어 그 유전자가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막거나 조절하는 짧은 인공 유전물질이다. 연구진은 약 320개에 이르는 후보물질을 검토한 끝에 'nL-CHCHD-001'이라는 최종 후보를 선정했고, 임상시험(등록번호 NCT06392126)을 통해 2024년 4월부터 이 환자에게 투여를 시작했다. 투여는 척수강내, 즉 허리 부위에 바늘을 찔러 뇌척수액에 약물을 직접 넣는 요추 천자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약 3개월 간격으로 반복됐다. 심각한 부작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이 전체 과정에 걸린 기간은 약 3년, 비용은 약 120만 달러였다. 같은 ASO 방식으로 이미 상용화에 성공한 SOD1 유전자 표적 ALS 치료제(미국에서 약 500명 환자를 대상으로 시판 승인)가 개발되는 데 10년 넘게 걸린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되는 기간이다. 다만 이 치료제는 정식 시판 승인을 받은 신약이 아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21년 마련한 개인맞춤 ASO 임상시험 가이드라인 초안에 따라, 이 환자 한 명만을 위한 개별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아 진행된 초개인맞춤(N-of-1) 치료다.
신호는 긍정적, 그러나 아직 '한 사람'의 이야기
투여 이후 환자에게서는 신경세포가 손상될 때 혈액으로 흘러나오는 신경섬유경쇄(NfL)라는 바이오마커 수치가 뚜렷이 감소했다. 무너지고 있던 신경세포의 벽이 무너짐을 멈췄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폐기능과 인지기능, 신체기능도 더 나빠지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질병 진행이 절반 이상 둔화됐다"는 평가는 환자 1명을 관찰한 결과이며 비교할 대조군이 없어 통계적으로 검증된 수치는 아니라는 점을 함께 짚어야 한다. 이는 신경섬유경쇄 수치 감소와는 별개의 관찰이다.
이 사례는 단발성이 아니다. n-Lorem Foundation과 미국 대학 ALS 센터들이 함께 진행하는 '실런스 ALS(Silence ALS)' 프로그램의 일부로, 2024년 3월 이후 CHCHD10 변이를 가진 ALS 환자 11명 중 9명이 같은 계열의 ASO를 투여받았다. 2025년 3월에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희귀질환 네트워크가 이 프로그램에 3년간 총 1500만 달러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 결과는 학술지 Med에 논문으로 게재됐다. 다만 담당 연구자는 "이 치료법에 대한 수십 년간의 경험은 아직 없다"며 효과가 평생 이어질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남은 질문들
이 치료가 열어젖힌 가능성 뒤에는 풀리지 않은 질문도 많다. 우선 CHCHD10 변이가 실제로 병을 일으키는지를 둘러싼 논쟁 자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25년 9월 공개된, 7대에 걸쳐 최소 68명의 발병자가 확인된 미국의 한 대가족 연구는 발병 연령이 35세에서 71세까지 넓게 분포하고(중앙값 58세), 같은 변이를 갖고도 병에 걸리지 않는 무증상 보인자가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침투율 68~81%)을 재확인했다. 같은 변이를 가져도 누군가는 이르게, 누군가는 늙어서도 멀쩡하다는 뜻이다. 이 연구는 변이 단백질이 쌓여 병을 일으킨다는 독성 획득 가설에 무게를 싣는 간접 근거를 제시했지만, 연구진 스스로도 이것이 직접 증거는 아니라고 밝혔다.
CHCHD10 변이가 ALS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가족력이 있는 가족성 ALS만 놓고 보면 2% 이상이지만, 전체 ALS 환자를 기준으로 하면 1%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전체 ALS 환자 중 원인 유전자가 확인되는 경우는 15~20%에 불과해, 나머지 대다수 환자에게는 이런 유전자 표적 치료 자체가 아직 닿지 않는 이야기다.
결국 이번 사례는 극소수의 환자를 위해 개별 맞춤형 신약을 3년, 120만 달러 규모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술적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그 혜택이 닿는 범위는 여전히 매우 좁다는 현실도 함께 드러낸다.
자료: 메이요 클리닉, n-Lorem Foundation, 미국 국립보건원(NI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