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뇌수술 환자 6명, '폭탄과 보석상자' 게임 중 포착된 위험 결정 0.5초 전 신경 줄다리기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9.20 07:11
안와전두피질 두 곳이 반대로 신호 주고받다 행동 전에 승자 결정...UCSF·UC버클리 공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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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Eccekevin·Wikimedia Commons, CC BY-SA 4.0)

병원 침대에 누워 뇌수술을 앞둔 환자가 비디오게임 컨트롤러를 쥐고, 폭탄이 늘어선 복도 끝 보석 상자로 갈지 말지를 고른다. 그 순간 환자의 뇌 속에서는 이미 심어진 전극을 통해, 두 개의 서로 다른 부위가 정반대 신호를 주고받으며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환자가 스스로 '간다' 혹은 '그만둔다'를 의식하기도 전인 약 0.5초 전, 이미 이 줄다리기의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UC샌프란시스코(UCSF)와 UC버클리 공동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Nature Neuroscience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왜 하필 뇌수술 환자였나

연구팀이 이런 정교한 관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특수한 상황 덕분이었다. 뇌전증이나 우울증·강박장애 같은 정신질환 치료 평가를 위해 이미 두개내 전극(stereotactic EEG)을 이식받은 환자 6명이 연구에 참여했다. 두개내 전극은 두개골을 열고 뇌 조직 가까이에 직접 심는 전극으로, 두피에 붙이는 일반 뇌파 검사나 자기공명영상(fMRI)과는 정밀도가 다르다. fMRI는 혈류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뇌 활동을 추정하기 때문에 수 초 단위의 지연이 생기지만, 두개내 전극은 신경세포 집단의 전기 신호를 밀리초(1000분의 1초) 단위로 실시간에 가깝게 잡아낼 수 있다. 연구팀은 이 환자들에게 단순한 설문이나 도박 과제 대신, 직접 제작한 몰입형 미로 비디오게임을 하게 했다. 복도에는 폭탄이 늘어서 있고, 끝에는 보석(루비) 상자가 놓여 있어 참가자는 매 시행마다 위험을 감수해 보석 상자로 향할지, 아니면 피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2cm 떨어진 두 곳이 벌인 줄다리기

연구팀이 주목한 곳은 이마 안쪽, 눈썹 위쪽에 자리한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이었다. 이 영역은 보상과 손실을 저울질해 판단을 내리는 데 관여한다고 알려져 왔다. 이번 연구는 안와전두피질 안에서도 서로 약 2cm 떨어진 두 하위 영역이 정반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눈썹 중앙에 더 가까운 '내측 안와고랑(medial orbital sulcus)'은 참가자가 위험을 감수해 보석 상자로 다가가기 직전에 활동이 커졌다. 반대로 눈썹 바깥쪽에 더 가까운 '외측 안와전두피질(lateral orbitofrontal cortex)'은 위험을 피하기로 결정하기 직전에 활동이 커졌다(또는 접근 직전에는 오히려 활동이 줄었다). 두 신호는 한쪽이 흥분하면 다른 쪽은 억제되는 상반 관계를 이루며, 특히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상황일수록 두 신호가 더 빠르게 오갔다. 연구진은 이를 '줄다리기' 또는 '스위치가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비유했다. 그리고 이 신경 신호 패턴만 보고도, 실제 행동이 일어나기 약 0.5초 전에 참가자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 예측할 수 있었다.

'서서히 기우는 저울'이 아니라 '딸깍이는 스위치'

이 결과는 기존 의사결정 이론과 결이 다르다. 그동안 뇌과학에서는 사람이 선택할 때 증거가 저울추처럼 점진적으로 쌓이다 특정 임계값을 넘으면 결정이 내려진다는 '증거 축적' 모델이 표준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관찰된 패턴은 이와 달랐다. 공동 교신저자인 UC버클리 심리학·신경과학과 로버트 T. 나이트(Robert T. Knight) 교수는 관찰된 현상이 '다이얼이 서서히 돌아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위치가 두 극단 사이를 오가며 깜빡이다 한쪽에 멈추는 것'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즉 뇌는 하나의 저울 위에서 증거를 천천히 축적하는 대신, 서로 경쟁하는 두 회로가 밀고 당기다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는 방식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제1저자인 UCSF 신경외과 전공의 클라라 권 스타크웨더(Clara Kwon Starkweather)가 게임 설계와 연구를 주도했고, UCSF 신경외과 과장 에드워드 F. 창(Edward F. Chang)이 나이트 교수와 함께 교신저자를 맡았다.

정신질환 치료의 정밀 표적이 될 수 있을까

연구진은 이번에 확인된 회로가 우울증·강박장애처럼 위험을 지나치게 피하는 질환이나, 중독·도박장애처럼 위험을 지나치게 무릅쓰는 질환의 치료 표적을 더 정밀하게 좁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실제로 UCSF에서는 이번에 확인된 회피 관련 회로를 표적으로,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강박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한 별도의 뇌심부자극(DBS)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곧바로 치료로 이어진다고 단정하지는 않았다. 참가자가 6명에 불과하고 건강한 대조군도 없었으며, 두개내 전극은 개별 신경세포가 아니라 비교적 넓은 조직 범위의 신호를 측정하는 만큼 두 영역 내부의 더 미세한 차이는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다. 게임 속 보석이라는 보상도 임대료나 후회처럼 실제 삶에서 마주치는 위험과는 성격이 다르다. 무엇보다 이번 연구는 신경 활동과 행동 사이의 시간적 선후 관계를 관찰한 것일 뿐, 해당 부위를 직접 자극해 행동을 바꾸는 인과관계까지 입증한 것은 아니다. 스타크웨더 역시 치료 개발 측면에서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았다.

자료: UC샌프란시스코(UCSF), UC버클리, 미국 국립보건원(NIH), 국제학술지 Nature Neuro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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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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