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몸집은 같은데 수명은 6배 차이 — 박쥐 게놈이 밝힌 장수·항암·바이러스 내성의 공통 뿌리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9.21 06:47
쥐귀박쥐속 8종 게놈 비교, DNA 손상복구 유전자의 양성선택과 항바이러스 유전자 PKR의 반복 중복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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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USFWS/Ann Froschauer, Public domain)

같은 속(屬)에 속하는, 몸집도 비슷한 박쥐인데 어떤 종은 7년을 살고 어떤 종은 40년 가까이 산다면 어떨까. 사람으로 치면 같은 체구의 두 사람 중 한쪽은 초등학생 나이에 생을 마치고 한쪽은 마흔 넘게 사는 셈의 격차다. 미국 버몬트대학교·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UC버클리·애리조나대학교와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이 이 극단적 수명 격차의 공통 유전적 뿌리를 찾아 국제학술지 Nature에 발표했다. 이 논문은 2024년 10월 생물학 프리프린트 서버 bioRxiv에 먼저 공개된 뒤 동료심사를 거쳐 2026년 8월 26일 Nature에 게재됐다.

근연종끼리 비교해야 보이는 것

박쥐의 장수·항바이러스 능력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계통상 서로 멀리 떨어진 종끼리 비교하는 방식이 많았다. 2020년 국제 박쥐게놈컨소시엄이 Nature에 발표한 박쥐 6종의 고품질 게놈 연구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런 비교로는 어떤 유전 변화가 '박쥐 전체의 특징'인지 '그 종만의 우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번 연구팀은 같은 속(Myotis) 안에서도 수명이 5~6배까지 갈리는 근연종끼리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 한계를 보완했다. 확인된 최대수명만 봐도 브란트박쥐 계열이 42년(2005년 현장 기록 논문의 41년과 근접), 그리세슨스박쥐 39년, 작은갈색박쥐(Myotis lucifugus) 36년인 반면 니그리칸스박쥐는 7년에 그친다.

이런 정밀 비교가 지금껏 어려웠던 이유는 근연종 확보와 세포주 배양 자체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야생 박쥐를 해치지 않고 날개에 작은 구멍을 내는 방식으로 조직을 채취해 세포주를 확보했고, 이렇게 32종·259개체분의 박쥐 세포주 자원을 미리 구축해뒀다가 이번에 8종의 게놈을 정밀분석했다. 긴 가닥(long-read) 시퀀싱과 3차원 유전체 구조 정보를 결합한 스캐폴딩 기법으로, 부모에게서 각각 물려받은 유전정보까지 구분되는 정밀 게놈을 만들었다. 그 결과 평균 98.6%의 유전물질이 22~23개의 염색체 수준 조각으로 조립됐고, 게놈당 평균 약 2만7536개의 단백질 코딩 유전자가 확인됐다.

게놈이 가리킨 세 가지 공통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장수가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진화한 계통일수록 암과 관련된 DNA 손상복구 유전자군에 '양성선택(생존에 유리한 변이가 집단에 빠르게 퍼지는 현상)' 신호가 몰려 있었다는 점이다. 프리프린트 단계 분석에 따르면 진화 계통이 갈라지는 지점마다 평균 5.46%의 단백질코딩 유전자에서 양성선택 흔적이 확인됐고, 최장수종 중 하나인 작은갈색박쥐의 경우 정밀 상동재조합복구 경로 유전자 65개 중 35개, 또 다른 손상복구 경로 유전자 37개 중 21개에서 이런 흔적이 나왔다.

두 번째는 항바이러스 면역 유전자 PKR(단백질키나아제 R, 유전자명 EIF2AK2)의 반복적 중복이다.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이 유전자를 1개만 갖고 있지만, 조사한 9종의 Myotis(게놈 조립 8종에 캘리포니아박쥐를 더한 수) 가운데 7종이 2개 또는 3개의 사본을 지녔고, 이 중 5종은 서로 다른 형태의 사본을 한 벌씩 물려받은 상태였다. 3개 사본은 캘리포니아박쥐에서만 확인됐다. 같은 자물쇠를 문마다 하나씩 다는 게 아니라 한 문에 이중·삼중으로 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암 관련 유전자 중에서는 FBXO31이 종에 따라 20~48개의 사본으로 가장 많이 중복돼 있었는데, 이는 두 번째로 많이 복제된 유전자보다 평균 약 2.4배 많은 수치다.

세 번째는 살아있는 세포로 직접 확인한 반응이다. 연구팀이 박쥐 5개 종의 1차 배양세포(종별 2~8개체분)에 DNA 손상 유도물질을 노출시킨 결과, 최장수종 중 하나인 작은갈색박쥐의 세포는 손상을 고치기보다 그 세포 자체를 적극적으로 없애버리는 독특한 반응을 보였다. 고장 난 부품을 수리하는 대신 아예 폐기해 암세포로 자랄 여지를 미리 차단하는 전략에 가깝다.

바이러스와 함께 진화한 면역, 그러나 만능은 아니다

연구팀은 게놈 전역에서 DNA를 유전물질로 쓰는 바이러스와 상호작용하는 단백질 유전자에서는 양성선택이, RNA를 유전물질로 쓰는 바이러스와 상호작용하는 단백질에서는 유전자 복제수 변이가 더 두드러진다는 점도 확인했다. 사람의 경우 인플루엔자 같은 RNA 바이러스 상호작용 단백질 쪽에서 선택압이 두드러지는 것과 대비되는 패턴이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박쥐의 바이러스 적응, 장수, 암 저항성이 서로 무관한 형질이 아니라 하나의 유전적 기반을 공유하는 '다면발현적' 관계로 얽혀 있다고 해석했다. 연구 자금은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국립과학재단(NSF) 등 공공기관에서 지원받았다.

얼마나 확실한 이야기인가

다만 이 결과를 곧바로 '박쥐는 암에 안 걸린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연구팀 스스로 "Myotis에서 종양 발생률에 관한 보고나 연구가 발표된 바 없다"고 인정했다. 즉 이번 발견은 실제 암 발생 역학 데이터가 아니라 유전체 신호와 배양세포 실험에서 추정한 결과이며, 급성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반응을 본 것이지 자연적인 노화 과정 자체를 관찰한 것도 아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러한 유전적 변화의 기능적 영향을 규명하려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논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다른 학자의 논쟁이나 재현 실패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확인된 것은 연구팀 자신의 신중한 한계 진술뿐이다.

역설적인 대목도 있다. 이 박쥐들은 수십 년간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오며 정교한 면역 체계를 진화시켰지만, 정작 북미 지역 밖에서 유입된 곰팡이병인 흰코증후군에는 크게 취약해 일부 Myotis 계열 종은 개체군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진화된 면역 이점이 모든 병원체에 보편적으로 통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과의 접점

이번 논문과 같은 속(Myotis)에 속하는 붉은박쥐(황금박쥐)는 한국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국내 개체수는 약 450~500마리에 불과하다. 이 붉은박쥐의 게놈은 2017년 UNIST(울산과학기술원) 게놈산업기술센터가 세계 최초로 해독해 장수·비행·초음파 감각 관련 유전변이와 동굴의 중금속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소저항성 변이를 확인한 바 있다. 다만 이는 이번 2026년 Nature 논문과는 계통(Myotis속)만 같을 뿐 저자·기관이 다른 별개의 독립 연구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은 4년 이상 국내 박쥐 분변 시료 550건을 분석해 코로나바이러스 약 50종을 검출했고, 이 중 1종은 코로나19 원인 바이러스와 유전자 서열이 약 67%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유전체교정연구단은 국내외 서식 박쥐 5종의 장기 오가노이드를 구축해 코로나·인플루엔자·한타바이러스가 박쥐 몸속에서 어떻게 감염되는지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셈이다.

자료: 미국 버몬트대학교,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UC버클리, 애리조나대학교,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국제학술지 Nature, 미국 국립보건원(NIH),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UNIST 게놈산업기술센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기초과학연구원(I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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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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