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회로를 실처럼 뽑아 짠다…한 제조법으로 발광·논리·비접촉 감지 섬유 구현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10.07 20:29 · 수정 2026.10.07 20:31
둥화대, 재료의 흐름을 프로그램해 소자와 배선을 방사 중 형성…대량생산·내구성·안전성 검증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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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fal Krzywon·Marcin Gorski·Szymon Dawczynski·Leszek Szojda·Joao Castro Gomes·Rita Salvado

자료사진은 이전에 공개된 스마트 섬유 시편의 적층 전후 비교 사진이며, 이번 연구에서 만든 집적회로 섬유 시편은 아니다.

옷소매를 허공에서 쓸어 드론을 움직이고, 천에 수놓은 무늬가 전기를 받아 빛나며, 실 한 가닥이 전기 신호의 모양을 바꾼다. 이런 전자섬유를 만들려면 보통 완성된 실이나 직물에 소자를 붙이고 배선을 다시 연결해야 한다. 중국 둥화대학교 연구진은 순서를 바꿨다. 색이 다른 치약을 한 노즐로 나란히 짜듯 도체·절연체·발광체·반도체 용액을 흘려보내면서, 실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과정에서 소자와 연결부를 함께 형성했다.

다만 빛과 논리연산, 비접촉 감지를 한 가닥에서 동시에 수행하는 만능 섬유를 만든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하나의 제조 플랫폼을 이용해 기능이 서로 다른 네 종류의 집적회로 섬유를 제작했다.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발광 섬유, 저항과 축전기로 신호를 다듬는 아날로그 회로 섬유, 트랜지스터로 논리를 구현한 섬유, 물체가 가까워질 때 전기장의 변화를 읽는 감지 섬유다. 연구 결과는 2026년 9월 23일 온라인 발표됐다.

김밥의 단면과 줄무늬를 동시에 설계하다

기술의 이름은 ‘프로그래머블 미세유체 방사’다. 미세유체 방사는 좁은 통로에서 여러 액체의 흐름을 정밀하게 다루며 섬유를 뽑는 방법이다. 대표 장치에는 5개의 재료 유입 채널과 한 변이 600㎛인 600×600㎛ 출구가 사용됐다. 600㎛는 0.6㎜로 0.5㎜ 샤프심보다 조금 크지만, 이는 완성된 섬유의 굵기가 아니라 방사 칩 출구의 크기다.

연구진은 공통 기질로 열가소성 폴리우레탄(TPU)을 사용하고, 각 채널에서 기능성 재료가 들어오는 시점과 유량을 조절했다. 섬유 단면에서는 김밥 속 재료를 원하는 자리에 놓듯 서로 다른 기능층을 배치했다. 동시에 길이 방향에서는 재료 공급을 바꿔 소자가 작동하는 구간과 이를 잇는 구간을 만들었다. 완성된 실에 칩을 하나씩 붙이는 대신, 실의 내부 구조와 길이 방향 회로를 방사 중 함께 설계한 것이다.

컴퓨터는 최소 0.001초 간격으로 공급 명령을 내릴 수 있었지만, 이것이 실제 회로 구조를 0.001초마다 새겼다는 뜻은 아니다. 끈적한 용액의 흐름과 계면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실제 재료 전환에는 1초 이상의 간격을 사용했다. 공압 장치의 응답, 이전 용액이 남기는 꼬리 현상, 응고와 연신·건조 과정도 최종 경계의 선명도에 영향을 준다.

서로 맞닿은 재료가 통로 안에서 뒤섞이지 않는지도 중요하다. 계산 모델에서 대표 층 두께는 약 120㎛, 평균 유속은 약 10⁻⁴~10⁻¹m/s, 점도는 약 10⁻²~10²Pa·s로 놓였다. 흐름과 확산의 상대적 크기를 나타내는 페클레수는 10⁵~10¹²로 계산됐다. 계산상 충분히 섞이는 데 필요한 길이는 10~10⁸m였지만 실제 채널은 5㎜였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통로를 지나는 동안 확산보다 흐름이 우세해 기능층이 심하게 섞이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모든 재료 조합에서 혼합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빛을 내고, 파형을 다듬고, 논리를 가르다

전기발광 집적회로 섬유인 EL-IC는 두 Ag/TPU 전도층 사이에 ZnS:Cu/TPU 발광층을 넣었다. 적·녹·청색 층을 단독으로 쓰거나 조합해 적색·녹색·청색뿐 아니라 주황색·청록색·보라색·백색도 구현했다.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자수 표시물과 직조형 발광 직물을 제작했다. 이는 빛으로 계산하는 광컴퓨팅이 아니라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발광 기능이다.

밝기는 조건과 보는 방향에 따라 달랐다. 1V/㎛ 전기장에서 적·녹·청색 섬유는 각각 약 0.1cd/㎡였고, 2V/㎛에서는 21.3cd/㎡가 측정됐다. 두 조건만 비교하면 약 213배지만, 전기장이 두 배가 될 때 밝기가 언제나 같은 비율로 커진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0~360도를 15도 간격으로 측정했을 때 0도와 180도에서 가장 밝고, 전도층이 빛을 가리는 90도와 270도에서 가장 어두웠다.

RC-IC 섬유는 저항(R)과 축전기(C)를 한 가닥의 구간들로 연결한 아날로그 회로다. Ag/TPU 전극과 BaTiO₃/TPU 유전체를 이용해 적분기·미분기·저역통과 필터·고역통과 필터를 만들었다. 적분기는 800㎑ 사각파를 완만한 파형으로 바꾸고, 미분기는 600㎐ 사각파가 오르내리는 순간을 뾰족한 신호로 뽑아냈다. 실이 전류를 전달하는 전선에 머물지 않고 입력 신호의 형태와 주파수 성분을 다루는 부품으로 작동한 셈이다.

OECT-IC에는 유기전기화학 트랜지스터(OECT·이온 이동으로 전류를 조절하는 부드러운 트랜지스터)가 들어갔다. Ag/AgCl 게이트, BaTiO₃/TPU 절연층, Ag/TPU 소스·드레인, p(g2T-T)/TPU 반도체층으로 구성됐으며 최대 온전류 0.6㎃와 최대 트랜스컨덕턴스 1.09mS가 보고됐다. 길이 방향으로 분리된 게이트를 각각 제어해 OR 논리와 3단계 출력 변화를 시연했다. 인버터와 유기전기화학 다이오드, 조정 가능한 필터도 제작·시험했다. 다만 OECT에는 방사 뒤 이온겔 코팅과 60℃에서 10분간 가열하는 후처리가 필요했다. 모든 기능이 한 번의 방사만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만지지 않는 천 리모컨, 섬유 밖 장치도 필요했다

EQS-IC 섬유는 전기준정적장(EQS·낮은 주파수에서 물체 주변에 형성되는 전기장의 변화를 이용하는 방식)을 읽었다. 카메라처럼 물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송신·수신 전극 사이의 용량성 결합이 사람이나 도체의 접근으로 달라지는 현상을 전압으로 측정한다. 정전식 터치의 감지 공간을 섬유 주위로 넓힌 것에 가깝다.

연구진은 5Vpp·100㎑ 사인파로 구동한 조건에서 인체와 전기적으로 연결한 도전성 표적이 1~15㎝ 범위로 접근할 때 생기는 전압 변화를 구분했다. 표적은 알루미늄 포일로 감싼 판지를 가는 구리선으로 인체에 연결한 것이었다. 따라서 15㎝ 안의 플라스틱이나 마른 천 등 모든 물체를 보편적으로 감지했다고 볼 수 없다.

감지 섬유 네 가닥을 8×8㎝ 사각형으로 배치한 뒤, 각 섬유가 추정한 거리값을 최소제곱 삼변측량에 넣어 물체의 위치를 계산했다. 이를 바탕으로 가상 드론과 로봇팔, 실제 쿼드콥터를 제어하고 로봇 그리퍼가 표적을 추적하는 장면을 시연했다. 그러나 섬유만으로 계산과 통신, 동력 공급까지 해결한 것은 아니다. 신호 발생기나 계측기, 거리 계산과 신호처리 장치, 무선전송 및 구동 시스템이 함께 사용됐다.

‘만드는 방식’의 진전, 공장과 일상은 다음 질문

전자 기능을 지닌 섬유 자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국내 공동연구진도 2022년 폭 또는 지름 약 150㎛, 길이 10㎝인 마이크로섬유 표면에 트랜지스터·인버터·링 발진기·광센서·온도센서 등을 집적했다. 약 30개의 소자 세트를 구현한 이 방식은 마스크리스 광리소그래피 등 평면 반도체 공정을 섬유 표면에 적용했다. 이번 둥화대 연구는 여러 용액을 나란히 흘려 섬유 내부 기능층과 길이 방향 연결을 방사 중 형성했다는 점에서 접근법이 다르다.

이번 성과의 무게도 최고 집적도 기록보다는 제조 개념에 있다. 소자 형성과 연결을 방사 과정 안으로 가져오면 기능 구간을 길이 방향으로 이어 만드는 연속 제조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섬유는 직조·재봉·평면 배열이 가능했고 반복 변형과 세탁 뒤에도 작동했다고 보고됐다. 그러나 공장 규모 생산속도와 장거리 연속생산 수율, 단위 길이당 불량률, 층 정렬 오차, 제조원가와 결함 검사·수리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생활 속 의류로 가기까지의 질문도 남아 있다.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발광 밝기, 주변 도체와 사람·접지 상태·습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비접촉 감지, 확인되지 않은 위치 정확도와 지연시간을 검증해야 한다. 일반 세제와 건조기, 땀·피지, 반복 마찰을 견디는 장기 내구성도 아직 알 수 없다. 사용된 은·은/염화은 재료와 용매, 이온성 물질의 장기 피부 접촉과 용출, 회수·폐기 안전성 역시 제시된 연구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2026년 10월 7일 기준 독립 연구진의 재현 결과도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곧바로 입을 수 있는 컴퓨터의 완성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자회로를 실에 나중에 붙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을 만드는 흐름 자체를 회로 설계 수단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개념검증이다. 앞으로 확인할 핵심은 이 정교한 재료 전환을 얼마나 길고 빠르고 균일하게 이어갈 수 있는지, 그리고 실험실 밖의 세탁과 착용 환경에서도 기능과 안전성을 함께 지킬 수 있는지다.

자료: 둥화대학교, Nature Electronics, 한국과학기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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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반도체·일반공학 — 공정·소자·파운드리·메모리 및 기계·전기·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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