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생산량 99.1% 지키며 탄소 14.7% 줄였다…제지공장 ‘불확실성 보증형’ 최적화

자료사진: 공장 내부에 설치된 Bellmer 산업용 초지기와 연속 제지 생산라인. 해당 연구·행사의 현장 사진은 아닙니다.
젖은 종이를 거대한 스팀 다리미로 쉬지 않고 말리는 제지공장을 떠올려 보자. 탄소배출을 줄이겠다고 증기를 무작정 낮추면 종이가 충분히 마르지 않거나 생산량이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생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에너지를 넉넉히 쓰면 배출량이 늘어난다. 한국 연구진은 이 팽팽한 관계를 풀기 위해 예측값 하나만 믿지 않고, 예측이 틀릴 때를 대비한 상한까지 들고 공정을 최적화하는 CCM(Carbon-Conformal Manufacturing)을 제안했다.
CCM은 과거 제지공장 자료를 이용한 평가에서 기준 운전보다 탄소배출을 14.7% 줄이면서 기준 생산량 지표의 99.1%를 유지했다. 기준 생산량을 100으로 놓았을 때 99.1을 지킨 비율이라는 뜻이며, 제품 품질이나 공장 가동률이 99.1%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욱 중요한 단서가 있다. 이 수치는 알고리즘이 실제 공장을 1년 동안 자동제어해 얻은 실측 성과가 아니라 과거 이력자료와 이를 바탕으로 만든 모델·최적화 정책을 평가한 결과다.
예상 배출량 하나 대신 ‘안전 우산’을 계산하다
일반적인 최적화가 “다음 한 시간의 배출량은 100”이라는 점예측을 기준으로 운전조건을 고른다면, CCM은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까지 계산한다. 예컨대 예상값 100과 함께 “목표 포괄률에서 실제값이 넘지 않도록 잡은 상한은 110”이라는 안전 우산을 씌우고, 예상값 100이 아니라 상한 110을 낮추는 방향으로 운전조건을 찾는 식이다.
여기에 쓰인 적합성 예측(conformal prediction)은 별도로 마련한 보정자료에서 모델의 오차가 어느 정도였는지 살핀 뒤, 그 오차의 분위수를 이용해 단측 상한(one-sided upper bound)을 붙이는 방법이다. 단측 상한은 실제 배출량이 그 선보다 아래에 들어오도록 한쪽 방향으로 정한 경계다. CCM은 공장 상태와 후보 조작값을 받아 다음 한 시간의 배출량을 예측하고, 이 상한이 낮으면서도 생산·설비 제약을 지키는 운전조건을 고른다.
연구진이 세운 목표 포괄률(coverage)은 95%였고, 평가자료에서 확인한 경험적 포괄률은 96.2%였다. 1,000건으로 단순히 비유하면 약 962건에서 실제 배출량이 미리 계산한 상한 아래에 있었다는 의미다. 이는 예측 정확도가 96.2%라거나 탄소감축에 성공할 확률이 96.2%라는 뜻이 아니다. 특정 품종이나 계절, 고부하 또는 시동·정지 상태마다 각각 95%를 보장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따라서 CCM의 ‘보증’ 대상은 14.7%라는 감축률이 아니라 배출량 상한의 포괄률이다. 연구진이 ‘Carbon Compliance Certificate’라고 부른 것도 시간별 상한과 운전결정 기록을 묶은 연구 프레임워크상의 감사자료다. 유럽연합 기관이 승인하거나 발급하는 공식 인증서는 아니다.
증기·회수열·연료를 함께 조정한 이유
제지공정에서는 생산량과 종이의 수분, 증기, 전력, 연료가 서로 연결돼 있다. 어느 한 항목만 줄이면 다른 항목이나 건조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CCM이 조작 대상으로 삼은 세 채널은 증기압 설정, 회수증기 배분, 연료 혼합 조정이다. 생산을 멈춰 배출량을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 제약을 둔 상태에서 에너지 계통의 조합을 바꾸는 최적화다.
분석에는 2024년 1월부터 12월까지 한 제지공장 주 생산라인에서 수집한 이력자료가 사용됐다. 정제 후 자료는 시간별 기록 8,760건이며 상태변수 18개와 조작변수 3개로 구성됐다. 8,760건은 서로 독립된 실험이 아니라 한 공장에서 시간 순서대로 이어진 자료다. 2024년 전체 시간과 기록 수가 다른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1년을 빠짐없이 기록했다거나 정제 과정에서 정확히 하루치가 빠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기본 배출 예측기는 완전연결층 3개와 ReLU 활성화함수, 드롭아웃 0.2, Huber 손실을 사용했다. 쉽게 말해 여러 공정변수의 관계를 학습하되 일부 연결을 학습 중 무작위로 끄고, 큰 오차 하나가 학습 전체를 지나치게 흔들지 않도록 설계한 신경망이다. 종이 품종 코드는 임베딩이라는 숫자 표현으로 바꾸고 증기·수분·생산량·평량·전력부하·가스 사용 등의 자료를 함께 입력했다. 배출량은 굴뚝에서 이산화탄소를 직접 연속 측정한 값이 아니라 연료와 전력 사용량에 배출계수를 적용해 계산한 값이다.
논문 내부 비교에서 예상값 하나만 이용한 점예측 최적화의 감축률은 11.3%로 CCM보다 3.4%포인트 낮았다. 적합성 보정을 제거했을 때 포괄률은 87.0%로 보정을 포함한 96.2%보다 떨어졌고 위반 사건은 상대적으로 23% 늘었다. 베이지안 구간의 포괄률은 93.8%였다. 두 디지털 트윈에서 확인한 감축률은 14.2~14.7%, 포괄률은 95.4~96.6%였다. 다만 이 두 트윈은 서로 다른 두 공장이 아니라 같은 원천 공장자료로 보정한 두 변형이어서 독립적인 현장 재현으로 볼 수 없다.
‘14.7%’보다 중요한 현장 검증의 빈칸
연구진은 모델 평가 결과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2,831tCO₂e를 줄이는 규모라고 제시했다. 하루 평균으로 단순히 나누면 약 7.8tCO₂e지만, 실제 공장에서 매일 이만큼 측정해 감축했다는 뜻은 아니다. 탄소가격을 t당 86유로로 가정한 연간 비용 환산액은 24만4,000유로다. 시간별 예측값과 상한, 운전결정은 월별 장부로 합산할 수 있다.
그러나 상한을 넓게 잡으면 실제값이 상한 안에 들어가는 포괄률은 높아질 수 있다. 96.2%라는 수치만으로 운전상 실용성이 모두 입증되는 것은 아니며, 상한의 폭과 운전조건별 포괄률도 함께 살펴야 한다. 적합성 예측의 성능은 보정자료와 새 자료가 충분히 비슷하다는 조건에도 의존한다. 원료와 설비, 계절이 바뀌면 자료의 분포가 달라질 수 있어 장기 운전에서는 재보정과 분포변화 감시가 필요할 수 있다.
검증 범위는 원천 공장자료, 같은 자료로 보정한 디지털 트윈, 설비를 움직이지 않고 권고 결과를 운전자가 검토한 8주간의 섀도 운전(shadow deployment)이었다. 실제 밸브와 보일러, 스팀 계통을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조작하는 폐루프 제어는 하지 않았다. 추천값을 현장 설비에 넣었을 때 생길 응답지연과 안전 인터록, 설비 마모, 고장, 작업자의 거부와 인계 문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한 공장, 한 주 생산라인, 한 해의 자료에 기반했다는 점도 남은 과제다. 종이 품종과 원료 구성, 보일러와 열병합 설비, 기후와 전력 배출계수가 다른 공장에서도 같은 감축률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생산량 지표의 정확한 산식과 절대 생산톤수, 품질 합격률, 불량률, 지절률도 공개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 공장 원자료 공개 역시 확인되지 않아 제3자가 14.7% 감축과 99.1% 생산 유지 결과를 완전히 재현하기는 어렵다.
이 연구의 핵심 가치는 감축률 숫자 하나보다 예측의 불확실성을 운전 결정과 감사기록에 연결했다는 데 있다. 다음 단계는 실제 폐루프 자동제어에서 생산과 안전을 함께 지키는지, 다른 공장에서도 결과가 재현되는지, 제품 품질과 설비에 장기적인 영향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연구진도 실시간 폐루프 제어를 후속 과제로 명시했다.
이번 연구는 길기훈·백민우·유지오·이서영·장여진·도윤미·최진영·이상금 연구진이 수행했으며, 2026년 10월 15일 《Applied Energy》 421권에 게재됐다. 연구비는 산업통상자원부·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과제와 교육부·대전광역시가 지원한 대전 RISE 사업에서 나왔다.
자료: 국립한밭대학교·한국전자통신연구원·산업통상자원부·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교육부·대전광역시·유럽연합 집행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