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제트의 출발점, 뜨겁고 두꺼운 플라스마에서 찾았다

자료사진: 경북대학교 대구캠퍼스의 교정과 건물 전경. 해당 연구·행사의 현장 사진은 아닙니다.
물질을 빠르게 삼키는 블랙홀이 어떻게 빛의 속도에 가까운 강력한 에너지 줄기까지 내뿜는지 보여주는 관측 단서가 나왔다. 경북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부 조일제 교수가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은 활동성은하핵 ‘3C 120’을 X선과 전파로 정밀 관측해 블랙홀 주변의 강착원반과 제트가 이어지는 공간적 구조를 제시했다.
활동성은하핵은 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활발하게 끌어들이며 큰 에너지를 방출하는 영역이다. 연구 대상인 3C 120은 황소자리에 있는 ‘넓은 방출선 전파은하’로, 넓게 퍼진 방출선과 강한 전파 방출이 관측되는 천체다. 이 천체는 물질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동시에 강력한 제트를 뿜어내고 있어 강착과 제트의 관계를 살피기에 적합하다.
블랙홀로 떨어지는 물질은 곧장 빨려 들어가기보다 주위를 돌며 원반을 만든다. 이를 강착원반이라고 한다. 빠르게 물질을 흡수하는 블랙홀 주변에는 일반적으로 온도가 비교적 낮고 납작한 원반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런 차갑고 얇은 원반은 제트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큰 규모의 자기장을 유지하기 어렵다. 많은 물질을 받아들이는 구조와 강력한 제트를 만드는 구조가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지는 오랜 난제였다.
연구팀은 우주 X선 관측위성 XRISM의 고분해능 분광 관측에서 일반상대론적 효과로 폭이 넓어진 철 Kα 방출선을 검출했다. 철 Kα 방출선은 블랙홀 가까이에 있는 철 원자가 내는 특정 에너지의 X선이다. 블랙홀 부근에서는 강한 중력과 빠른 회전 운동 때문에 이 선의 모양이 넓고 비대칭적으로 변한다. 연구진은 이 모양을 분석해 차갑고 얇은 강착원반이 중력반경인 Rg의 약 20배 지점에서 끝난다고 해석했다. 중력반경은 블랙홀의 크기와 중력 영향을 나타내는 기준 단위다.
그보다 안쪽에서는 원반의 모습이 달라졌다. 연구팀은 얇은 원반 안쪽이 수억 도에 이르는 뜨겁고 기하학적으로 두꺼운 플라스마 흐름으로 바뀐다고 분석했다. 플라스마는 원자에서 전자가 떨어져 나온 고온의 전기적 입자 상태다. 납작한 원반과 달리 위아래로 부푼 이 흐름은 대규모 자기장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구조로 설명된다.
전파 관측도 같은 영역을 가리켰다. 연구팀은 GMVA·VLBA·EAVN의 초장기선 간섭계 관측을 이용했다. 초장기선 간섭계는 멀리 떨어진 여러 전파망원경을 하나의 거대한 망원경처럼 결합해 매우 작은 천체 구조를 구별하는 기술이다. 관측된 제트 폭을 블랙홀 쪽으로 연장해 계산한 결과, 제트가 시작되는 기저의 반지름은 얇은 원반이 끝나는 반지름과 비슷하거나 더 좁았다.
이는 차갑고 얇은 원반의 안쪽에 뜨겁고 두꺼운 흐름이 자리하고, 제트의 출발점도 그 영역 안에 놓인다는 공간적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블랙홀로 흘러가는 물질의 구조와 밖으로 분출되는 제트의 구조를 서로 다른 파장대의 관측으로 한 그림 안에 맞춘 셈이다.
제트 형성의 유력한 설명 가운데 하나인 블랜드퍼드–즈나예크 과정에서는 강착 흐름이 지탱하는 대규모 자기장이 회전하는 블랙홀의 에너지를 꺼내 제트로 전달한다. 앞선 3C 120 장기 관측에서는 X선 밝기가 감소한 뒤 약 한 달 후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전파 매듭이 방출된 사례가 확인돼 강착원반과 제트의 시간적 연관성이 제기됐다. 이번 연구는 XRISM의 철선 관측과 초장기선 간섭계 영상을 결합해 두 구조가 공간적으로 어디에서 만나는지 더 직접적으로 좁혔다.
경북대와 일본 도호쿠대·나고야시립대 등의 연구자가 참여한 이번 논문은 13명의 공동저자가 수행했으며, 2026년 10월 19일 천체물리학 분야 국제학술지에 게재됐다. 서로 다른 관측 장비가 포착한 X선의 에너지 정보와 전파 제트의 형태를 함께 분석함으로써 블랙홀의 물질 흡수와 에너지 방출을 하나의 연결 구조로 설명할 기반을 마련했다.
자료: 경북대학교, 도호쿠대학교, 나고야시립대학교, XRISM 공동연구체, 미국항공우주국(NAS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