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중공업, 2GW급 HVDC 시험체계 구축…서해안 전력망 국산화 속도

서해안에서 생산한 대규모 해상풍력 전력을 수도권까지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한 2GW급 초고압직류송전 기술의 국내 시험 기반이 마련됐다. 효성중공업은 2026년 10월 과천 연구소에 실제 제어기와 가상의 2GW급 컨버터 밸브·전력망을 연결한 HILS를 구축했다. 대용량 전력을 실제 계통에 투입하기 전에 설비의 제어 성능과 고장 대응 능력을 반복해서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이다.
HILS는 하드웨어 인 더 루프 시뮬레이션의 약자다. 시험 대상인 실제 제어기를 컴퓨터가 구현한 가상 설비와 전력망에 연결해 운전 결과를 살피는 방식이다. 현실의 대규모 송전망에 직접 고장을 일으키지 않고도 계통 사고와 비상상황을 되풀이해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정상 운전뿐 아니라 전력 흐름이 급격히 변하거나 이상 신호가 발생하는 조건에서도 제어와 보호 기능이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할 수 있다.
설비 용량이 커질수록 검증해야 할 운전 조건과 변수도 늘어난다. 회사 설명에 따르면 2GW급 시스템은 기존 200MW급보다 검증 시나리오가 2~3배 많다. 이는 단순히 보내는 전력량만 열 배로 커지는 문제가 아니라, 대규모 송전설비가 다양한 계통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반응하는지를 더 폭넓게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HILS는 실제 설비와 가상 계통을 결합해 이런 복잡한 조건을 사전에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
HVDC는 발전소에서 만든 교류 전력을 직류로 바꿔 대용량으로 전송한 뒤 도착지에서 다시 교류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이 가운데 전압형 HVDC는 기존 전류형보다 전력의 크기와 흐르는 방향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고, 전력계통 안정화에도 활용하기 쉽다. 발전량이 바람의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해상풍력을 육상 전력망에 연계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이 효성중공업의 설명이다.
HVDC 시스템에서는 컨버터 밸브와 제어기가 핵심 역할을 맡는다. 컨버터 밸브는 전력반도체를 이용해 교류와 직류를 서로 변환한다. 제어기는 송전할 전력량을 조절하고 이상이 발생했을 때 보호 동작을 수행한다. 두 장치가 정확한 신호를 주고받지 못하면 원하는 규모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보내기 어렵다. 과천 HILS는 실제 제어기가 가상의 컨버터 밸브와 전력망을 상대로 명령을 내리고, 변화에 대응하며, 비상상황에서 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전 과정을 점검하는 기반이다.
효성중공업의 전압형 HVDC 개발은 실증 경험을 쌓으며 단계적으로 용량을 키워 왔다. 회사는 2012년 제주에서 20MW급 전압형 HVDC 실증을 시작했다. 2024년에는 자체 개발한 200MW급 컨버터 밸브와 제어시스템을 양주변전소의 실제 전력계통에 적용했다. 이어 2026년 9월 한국전력공사가 추진하는 대용량 전압형 HVDC 국산화·실증사업에서 밸브·제어기 분야 참여기업으로 선정됐다. 소규모 실증과 실계통 적용을 거쳐 2GW급 시험 환경으로 개발 범위를 넓힌 흐름이다.
생산 기반도 함께 확대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창원에 HVDC 변압기 전용 공장을 구축하기 위해 3,3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소에서는 제어 성능과 보호 동작을 검증하고, 생산시설에서는 관련 설비를 공급할 기반을 마련하는 구상이다. 기술을 설계하는 능력뿐 아니라 시험과 생산까지 국내에서 이어갈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국산화의 실질적인 과제로 꼽힌다.
국내에는 대용량 HVDC를 실제 전력망에 적용한 선행 사례도 있다. 북당진~고덕 HVDC는 당진과 평택 사이 34.2km를 연결한 ±500kV·3GW 설비다. 1단계 1.5GW가 2020년 12월, 2단계 1.5GW가 2024년 5월 완공됐으며 총사업비는 1조1,500억원이다. 이 사례는 대용량 HVDC가 지역 간 전력 이동을 담당하는 실제 기간망으로 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는 서해안의 대규모 해상풍력 전력을 수도권 수요지로 운송하려는 국가 기간망 구상이다. 대용량 HVDC를 국내에서 설계하고 시험하며 생산할 역량을 확보하면 소수 해외 공급기업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설비 공급 일정의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천 HILS 구축은 실제 전력망에 적용하기 전 복잡한 운전 조건과 고장 대응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자료: 효성중공업, 한국전력공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