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임신 면역계 재현해 조산 예방 후보 찾았다

임신부에게 여러 약을 직접 투여하지 않고도 조산 예방 후보를 먼저 가려낼 수 있는 인공지능 기반 가상시험 기술이 나왔다.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은 임신 중 달라지는 면역체계를 단일세포 수준에서 재현한 디지털 트윈 시스템 ‘SIMCO’를 이용해 기존 약물과 병용요법의 가능성을 분석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의 사람이나 장기, 세포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컴퓨터 공간에 닮은꼴로 구현한 모델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임신부 11명과 비임신 대조군 8명의 혈액에서 얻은 백혈구 2억1800만 개가 모델 구축에 쓰였다. 연구진은 28개 면역세포 유형과 세포의 작동 상태를 보여주는 20개 기능성 표지를 측정해 임신에 따라 면역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추적했다.
연구진은 각각의 참여자에게 8가지 자극 조건과 12가지 약물·대조 조건을 조합해 1인당 96개 조건을 시험했다. 여기에 별도의 임신부 63명을 시간에 따라 관찰한 종단 코호트 자료를 결합했다. 한 시점만 비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임신이 진행되면서 면역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모델에 반영한 것이다.
평가 대상에는 클로르탈리돈, 마프로틸린, 메트포르민, 란소프라졸, 프라바스타틴, 리파부틴, 살리실산과 살리실산-란소프라졸 병용요법, 5-메틸테트라하이드로폴레이트 등 9개 요법이 포함됐다. 공개된 데이터 설명에서 조산 표본의 예상 분만 지연 기간은 엽산 대사체와 마프로틸린이 각각 9.2일, 아스피린-란소프라졸 병용요법이 6.5±1.8일로 제시됐다. 이는 실제 환자에게서 확정된 치료 결과가 아니라 모델이 계산한 예측값이다.
모델이 제시한 주요 작동 경로는 선천면역세포의 mTOR 신호를 강화하고, 아직 특정 항원을 경험하지 않은 미경험 CD4 양성 T세포의 JAK·STAT 신호를 약화하는 것이었다. mTOR와 JAK·STAT은 세포가 외부 신호를 받아 성장하거나 면역 반응을 조절할 때 이용하는 전달 체계다. 연구진은 이런 신호 변화가 임신 중 면역 상태와 분만 시점의 관계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조산은 임신 37주가 끝나기 전에 아기가 태어나는 경우를 뜻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조산아는 약 1340만 명으로 전체 출생의 9.9%였으며, 국가별 조산 비율은 4~16%였다. 조산 합병증은 5세 미만 아동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2019년 약 90만 명의 사망과 관련됐다.
임신 초기에는 모체 면역계가 태아를 받아들이도록 조절되고, 임신 말기에는 염증성 신호가 분만을 준비한다. 연구진은 이런 변화가 정상보다 일찍 진행되는 ‘면역 시계’를 조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한 경로로 보고 있다. 후보 가운데 란소프라졸은 원래 위산 관련 질환에 쓰이는 프로톤펌프억제제다. 앞선 2020년 연구에서는 조산과 관련된 유전자 발현을 되돌릴 가능성이 있는 약물 재창출 후보로 선별됐다. 약물 재창출은 이미 다른 질환에 사용되는 약에서 새로운 치료 용도를 찾는 방식이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실제 임신부에게 많은 후보약을 직접 시험하기 전에 가상시험으로 범위를 좁혔다는 데 있다. 연구진은 후속 임상시험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디지털 트윈의 예측만으로 특정 약물이 사람의 조산을 예방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실제 효과와 안전성은 고위험 임신부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시험에서 확인해야 한다. 연구 논문은 2026년 10월 21일 ‘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자료: Stanford Medicine, Stanford University, Science Advances·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Dryad, 미국 국립의학도서관·ClinicalTrials.gov, 미국 국립의학도서관·PubMed, 세계보건기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