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파운드리 산업화, 자동화 넘어 데이터 품질·경제성 확보가 관건

생명공학 연구를 빠르게 반복하는 자동화 시설인 바이오파운드리가 실제 산업 성과로 이어지려면 장비 구축을 넘어 데이터 품질과 경제성, 공동활용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23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2026 한국생명공학연합회 제11회 심포지엄’에서는 국내외 전문가와 기업 관계자들이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 확보, 기업의 연구개발 적용 사례, 민간시설 공동이용 방안 등을 논의했다.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산업 현장의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고, AI가 활용할 수 있는 고품질 데이터와 실제 생산 과정에서 비용 대비 효과를 낼 수 있는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바이오파운드리는 합성생물학의 설계·제작·시험·학습 과정을 표준화하고 빠르게 반복하도록 만든 연구지원시설이다. 설계한 생물학적 시스템을 실제로 제작하고 시험한 뒤, 그 결과를 데이터로 학습해 다음 설계를 개선하는 순환 구조를 갖는다. 이를 DBTL이라고 부르며, 설계(Design), 제작(Build), 시험(Test), 학습(Learn)의 앞글자를 딴 표현이다.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면 연구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학습 단계에 들어가는 데이터가 부정확하거나 서로 다른 형식으로 쌓이면 AI와 통합플랫폼의 활용도도 낮아질 수 있다.
정부의 ‘바이오파운드리 인프라 및 활용기반 구축사업’은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총 1,263억원 내외 규모로 추진되며, 이 가운데 국비는 1,244억원이다. 사업 범위에는 전용센터 건립과 자동화 장비 도입뿐 아니라 DBTL 단계별 핵심 워크플로 개발, 통합플랫폼 구축, 바이오제조 성능검증, 전문인력 양성이 포함됐다. 시설과 장비를 들이는 데서 끝내지 않고 연구 절차와 데이터, 검증, 인력을 하나의 기반으로 묶으려는 구성이다.
사업 검토 과정에서는 경제성과 정책적 필요성이 서로 다른 결과를 보였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비용편익비율(B/C)은 0.63으로 평가돼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됐다. 반면 정책·기술적 요소까지 함께 평가한 AHP 종합평점은 0.642로 사업 시행을 선호하는 결론이 나왔다. 비용만으로는 편익이 충분하지 않지만, 국가 연구기반과 기술 확보의 필요성까지 고려하면 추진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심층 활용수요 조사 이후에는 필요한 모듈과 워크플로, 장비 종류, 인프라 규모가 조정됐다. 숙련된 전문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문제와 사업 재원을 마련하는 문제는 여전히 위험요인으로 지적됐다. 장비를 운용하고 실험과 데이터를 연결할 사람이 부족하면 자동화 시설의 가동률과 활용 성과가 제한될 수 있어 인력 양성이 기반 구축의 한 축으로 포함됐다.
공동활용을 뒷받침할 법적 절차도 마련됐다. 2026년 4월 시행된 합성생물학 육성법은 정부가 공공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고 산학연의 공동이용을 촉진하도록 규정했다. 시행령에는 이용료 산정, 이용 우선순위 심사, 연구데이터 공동사용 협약 절차가 담겼다. 바이오파운드리를 누가 어떤 조건으로 이용하고, 연구 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를 어떻게 함께 쓸지를 제도 안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 공식 프로그램에서도 국가 인프라와 로드맵, 데이터·AI 통합플랫폼과 표준화, 장비 국산화, 해외 동향, 민간 바이오파운드리 공동이용 바우처 제안, 산업계 활용 촉진이 각각 별도 의제로 다뤄졌다. 이미 자동화 시설을 보유한 민간기업의 인프라를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공공 인프라 구축과 민간시설 활용을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일정한 기준으로 관리하는 일이 바이오파운드리 산업화의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자료: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