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활용 세계 1위 한국, 제조용 로봇 경쟁력은 6개국 중 최하위

공장에서 로봇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국이 정작 로봇을 만들고 공급하는 산업 경쟁력에서는 주요 6개국 가운데 가장 낮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미 갖춘 제조 현장과 활용 경험을 국내 부품·소프트웨어·로봇 기업의 성장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글로벌 로봇산업의 경쟁구도 재편과 한국의 대응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한국 제조용 로봇산업의 종합경쟁력은 72.9점이었다. 일본이 95.5점으로 가장 높았고 독일 88.4점, 미국 80.6점, 스위스 79.5점, 중국 79.4점 순이었다.
이 점수는 판매액이나 특허 수를 합산한 국제 공인 지수가 아니라 산업연구원이 2025년 실시한 전문가 델파이 조사 결과다. 델파이 조사는 여러 전문가의 평가를 반복해서 모아 의견을 좁혀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점수는 각국 산업의 절대 규모보다 전문가들이 평가한 가치사슬별 역량과 경쟁력의 상대적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의 가치사슬별 점수는 연구개발·설계 70.0점, 조달 64.0점, 생산 72.0점, 판매 후 시장·서비스인 시스템 통합 78.4점, 수요 75.6점이었다. 이 가운데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는 조달 부문이 가장 취약했다. 감속기·서보모터·센서·제어기 등 주요 핵심부품의 국내 국산화율도 44% 수준으로 제시됐다. 로봇을 많이 쓰더라도 핵심부품을 안정적으로 만들고 공급하는 기반이 약하면 국내 기업의 매출과 수출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의미다.
세계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국제로봇연맹 집계에 따르면 2025년 세계 공장에서 운용된 산업용 로봇은 약 500만 대로 전년보다 9% 증가했다. 신규 설치는 60만3307대로 11.2% 늘었다. 중국이 35만4000대로 가장 많았고 미국 약 3만8500대, 일본 3만6219대, 한국 3만 대 순이었다. 한국의 신규 설치는 전년보다 1% 줄었으며 2019년 이후 연간 약 3만1000대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자국 기업의 기술개발과 양산 경험을 쌓는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5년 중국 업체들은 자국 시장에 19만5000대를 공급해 내수 점유율 55%를 기록했다. 로봇 경쟁의 중심도 완제품의 성능과 가격에서 핵심부품,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현장 데이터, 실증, 양산, 공급망을 함께 묶는 산업생태계로 이동하고 있다.
장기 수요도 이어질 가능성이 제시됐다. 2024년 세계 신규 설치의 24%를 전기·전자산업이 차지해 자동차산업을 다시 앞섰다. 금속·기계산업 설치량은 8만8777대로 전년보다 16% 늘었다. 국제로봇연맹은 공급망 회복력 강화와 제조업 리쇼어링, 인력 부족, 인공지능·머신비전·센서 발전, 프로그래밍과 통합 비용 하락을 로봇 수요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았다.
산업연구원은 정책의 초점을 단순한 로봇 보급 확대에서 산업경쟁력 확보로 옮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액추에이터·로봇손·센서 등 취약부품의 기술자립, 산업 현장 데이터의 축적과 공동 활용, 수요기업과 함께하는 실증, 전문기업의 대량생산과 납품 실적 확보, 핵심부품과 인공지능 솔루션을 묶은 해외 진출을 하나의 성장 경로로 연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내 정책도 데이터·인공지능·로봇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30년까지 5조원 이상을 투입해 중소 제조기업 3만 곳의 디지털 전환과 6000곳의 인공지능 도입, 스마트제조 전문기업 500곳 육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도 제조현장의 수요를 로봇 기술개발과 실증, 확산으로 잇는 피지컬 AI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이 로봇 같은 실제 기계를 통해 현장에서 판단하고 움직이게 하는 기술을 뜻한다.
자료: 산업연구원, 국제로봇연맹,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