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고무처럼 늘어나던 나노구조, 불타고 줄어들며 6GPa 실리카 유리가 됐다

유일혁 기자 · 입력 2026.11.04 07:21
KIT 연구진, 3D 나노프린팅 전구체의 세 기계적 전환과 유기망·무기망의 ‘바통 터치’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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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Phi1free)

고무처럼 길게 늘어나던 미세 구조를 가열하자 갈색으로 타들어 갔다. 온도를 더 높이니 다시 투명해졌고, 크기는 처음의 약 60%로 줄었다. 그렇게 남은 것은 유리였다. 독일 카를스루에공과대학교(KIT) 연구진은 가공하기 쉬운 유기·무기 혼성 재료를 먼저 3차원으로 출력한 뒤, 열처리를 통해 강한 실리카 유리로 바꾸는 전 과정을 규명했다. 1000℃ 처리 미세 시편에서 측정한 인장강도는 5.94±0.45GPa, 약 6GPa였다.

이 수치는 같은 연구의 인쇄 직후 시편이 기록한 129MPa보다 약 46배 높다. 6GPa는 1㎟당 약 600kgf에 해당하는 응력이지만, 실제 구조물이 600kg을 들어 올렸다는 뜻은 아니다. 시험편의 출력 당시 단면은 3μm×20μm, 즉 60μm²에 불과해 실제 파단하중은 수십 그램힘 규모였다. 연구의 초점도 힘자랑에만 있지 않다. 부드러운 전구체가 어떤 순서로 늘어나는 능력을 잃고, 단단해지고, 마침내 파괴에 강한 유리로 바뀌는지를 보여준 데 의미가 있다.

완성된 유리를 찍지 않고 ‘분자 새장’을 먼저 엮었다

연구진은 실리콘-산소 골격을 지닌 POSS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POSS는 유기 손잡이가 달린 분자 크기의 실리카 새장에 비유할 수 있다. 감광재는 중량 기준 아크릴레이트 기능화 POSS 혼합물 89%, 삼관능성 아크릴레이트 SR499 8.6%, 광개시제 Irgacure 369 2.4%로 구성됐다.

출력에는 780nm 펄스 레이저를 쓰는 이광자중합(2PP) 장비가 사용됐다. 2PP는 레이저 초점 부근에서만 재료를 굳혀 미세한 3차원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다. 초점에서 아크릴기가 중합되면서 POSS를 붙잡는 유기 고분자망이 형성됐다. 완성된 유리를 녹여 틀에 찍은 것이 아니라, 먼저 다루기 쉬운 혼성 구조를 만들고 이후 유기 성분을 제거해 실리카망만 남긴 간접 공정이다.

인쇄 직후 구조는 유리와 거리가 멀었다. 파단변형률이 대체로 60%를 넘어 고무처럼 늘어날 수 있었고, 영률은 0.5~0.6GPa였다. 영률은 힘을 받았을 때 얼마나 변형되기 어려운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파괴를 견디는 한계인 인장강도와는 구분해야 한다.

늘어남·단단함·강함이 서로 다른 온도에서 변했다

연구진은 인쇄 직후와 300·440·520·700·1000℃ 처리 상태를 비교했다. 열처리는 공기 중에서 275℃까지 분당 3℃, 이후 목표 온도까지 분당 1℃로 올린 뒤 60분간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측정 결과는 세 기계적 전환이 서로 겹치며 진행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첫째, 약 250~350℃에서 변형 능력이 급감했다. 유기 고분자 연결이 끊어지기 시작하면서 잘 늘어나던 성질을 잃은 것이다. 다만 300℃에서는 분해와 함께 열에 의한 추가 가교 효과가 더 우세했다. 그 결과 인장강도는 465MPa, 영률은 2.8~3.3GPa로 인쇄 직후보다 높아졌고, 파단변형률은 40% 미만으로 낮아졌다.

둘째, 약 450~720℃에서는 영률이 크게 증가했다. 새로 생긴 실리카망이 서로 연결되고 응축되면서 구조가 변형되기 어려워졌다. 700℃ 처리 시편의 영률은 63.83±2.29GPa, 1000℃에서는 76.59±2.67GPa였다.

셋째, 약 490~790℃에서는 인장강도가 주로 증가했다. 잔류 탄소가 제거되고 실리카의 단거리 구조가 재배열되는 과정과 함께 파괴를 견디는 힘이 커졌다. 700℃ 시편의 인장강도는 4.17±0.46GPa였고, 최고 보고값인 약 6GPa는 1000℃ 시편에서 나왔다.

이 세 구간은 물질이 세 차례 불연속적으로 상전이했다는 뜻이 아니다. 연구진은 여섯 열처리 상태에서 얻은 파단변형률·영률·인장강도를 쌍곡탄젠트 함수로 맞춘 뒤 도함수의 봉우리와 반치폭으로 범위를 추정했다. 전 온도를 연속 측정해 정확한 임계점을 직접 관찰한 결과가 아니며, 세 변화의 온도 범위도 서로 겹친다.

440℃에서 하중을 넘겨받은 실리카망

공정의 관건은 기존 유기망이 사라지는 순간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새 무기망을 세우는 데 있었다. 440℃에서 유기 골격의 C–H 진동과 원래 POSS 새장의 신호가 사라지는 동시에 비정질 실리카망의 Si–O–Si 신호가 나타났다. 파단변형률은 이때 약 9%까지 내려갔다. 연구진은 이를 유기 고분자망이 맡던 하중 지지 역할을 새 실리카망이 넘겨받는 ‘바통 터치’로 해석했다. 다만 원자 수준의 연결 과정을 실시간으로 촬영한 것은 아니며, 적외선 스펙트럼과 기계적 거동을 종합한 해석이다.

변화는 색과 크기에서도 드러났다. 구조는 처음 약 1~2% 팽창한 뒤 약 300℃부터 본격적으로 수축했다. 지름 100μm, 높이 25μm의 관찰용 원판은 440℃에서 선형 치수가 처음의 약 70%가 됐고, 최종적으로 약 60%에 접근했다. 한 변이 약 40% 줄어든 셈이다. 최종 잔류질량은 약 32%로, 조성에서 계산한 이론적 SiO₂ 수율 약 33%와 가까웠다.

색은 약 425℃에서 가장 짙은 갈색을 보였다. 520℃에서도 탄소성 잔류물이 남았지만 520~570℃ 구간에서 다시 밝아졌고, 약 575℃ 이상에서는 상당한 투명성을 회복했다. 700℃ 시편에서는 용융 실리카에 해당하는 적외선 신호와 투명성이 확인됐다. 약 600℃ 이상에서 질량과 열흐름 변화가 거의 멈춘 뒤에도 실리카 구조 재배열과 기계적 강도 증가는 더 높은 온도까지 이어졌다.

6GPa보다 중요한 설계 원리, 대형화는 남은 과제

연구진은 광학현미경, 열중량분석·시차주사열량분석(TGA/DSC), 디지털 영상 상관법, 광열 적외선분광법(O-PTIR), 미세 인장·압축시험을 결합했다. 사람 머리카락보다 훨씬 작은 시험봉을 직접 붙잡아 당기기 어려워 위에서 누르는 힘을 내부 시험봉의 인장력으로 바꾸는 push-to-pull 미세구조도 함께 출력했다. 다만 이 구조의 변형과 컴플라이언스 보정 때문에 영률 측정에는 불확실성이 있다. 열분석 역시 실제 2PP 미세구조가 아니라 같은 조성의 액상 재료를 떨어뜨려 전체 광노출로 경화한 시료로 수행됐다.

가장 큰 한계는 크기 효과다. 유리는 흠집과 내부 결함에 강도가 크게 좌우된다. 부피가 작은 시험편일수록 치명적인 결함을 포함할 확률이 낮아 더 높은 강도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5.94±0.45GPa를 창유리나 병, 대형 광학부품, 센티미터급 출력물의 강도로 일반화할 수 없다.

약 40%의 선형수축도 정밀 치수 설계에는 큰 부담이다. 두꺼운 구조나 밀폐된 공동, 기판에 붙은 구조가 균열과 휨 없이 같은 비율로 줄어드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공기 중 산화에 의존하는 공정이어서 두껍거나 닫힌 구조에서는 산소 유입과 분해가스 배출도 달라질 수 있다. 이번 결과는 특정 POSS-아크릴레이트 조성 하나에 관한 것이므로 다른 전구체와 분위기, 승온 속도, 유지시간에 같은 전환 구간이 적용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연구는 유기 지지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무기 실리카망을 자립시키는 열처리 설계 원리를 제시했다. 최고 강도라는 한 숫자보다, 가공하기 쉬운 전구체를 복잡한 미세 구조로 만든 뒤 형태를 유지하며 유리로 전환하려면 어느 물성이 어떤 순서로 변하는지 밝혔다는 점이 핵심이다. 논문은 2026년 10월 30일 공개됐으며, 현재 독립 재현시험이나 외부 학자의 직접 논평은 확인되지 않았다. 후속 연구에서는 크기와 형상이 커졌을 때도 이 바통 터치가 안정적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한 질문으로 남는다.

자료: 카를스루에공과대학교(K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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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혁 기자 ih.yoo@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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