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 구조를 비틀어 배치하니, 멀리 떨어진 곳끼리 진동이 대화한다

물체의 한쪽을 두드리면 진동은 보통 바로 옆으로만 번져 나간다. 그런데 손대지 않은 먼 곳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함께 떨리게 만들 수 있다면, 소리와 진동을 다루는 장치의 설계 규칙은 통째로 바뀐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연구진이 이런 '원거리 진동 대화'를 복잡한 장치 없이 구현하는 새로운 소재 플랫폼을 내놓았다.
서울대 기계공학부 오주환 교수 연구팀은 멀리 떨어진 부분끼리 탄성파를 주고받게 하는 비국소 메타물질 플랫폼 '메타스파이어(Metaspire)'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탄성파는 힘이나 진동이 고체 물질 속을 타고 퍼져 나가는 파동을 말한다. 연구에는 김승한 서울대 기계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생이 주저자로, 신예정 석박사통합과정생과 배명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옆집'만 반응하던 메타물질, 멀리까지 손을 뻗다
메타물질은 자연에 없는 성질을 내도록 사람이 미세 구조를 설계해 만든 소재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널리 쓰인 것은 힘이나 진동이 바로 붙어 있는 이웃 영역에만 전달되는 국소(局所) 방식이었다. 반면 이번에 개발한 비국소(非局所) 방식은 붙어 있지 않은 먼 영역과도 진동을 주고받는다. 반응하는 상대가 늘어나는 만큼, 파동을 다룰 수 있는 주파수의 폭도 넓어진다.
기존 메타물질에는 고질적인 약점이 있었다. 파동을 강하게 전달하거나 반대로 차단하는 성능이 아주 좁은 주파수 대역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정 음높이 하나에만 반응하고 조금만 벗어나면 효과가 사라지는 셈이다. 비국소 방식으로 이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먼 곳끼리 연결하는 구조를 억지로 집어넣다 보니 설계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서로 다른 진동이 뒤엉켜 원하지 않는 파동까지 생기는 문제가 뒤따랐다.
비트는 배치가 만든 빈 공간의 발상
연구팀의 해법은 부품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배치를 바꾸는 데 있었다. 소재를 이루는 단위 구조 하나하나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조금씩 회전시켜 쌓아 올린 것이다. 구조를 비틀어 배열하자 그 사이사이에 빈틈이 생겨났고, 멀리 떨어진 영역을 이어 줄 연결 구조가 들어설 자리가 자연스럽게 확보됐다. 복잡한 설계를 덧붙이지 않고도 원거리 상호작용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 핵심 아이디어다.
이 배치는 또 하나의 이점을 낳았다. 여러 진동 방식이 서로 간섭해 뒤엉키던 문제를 풀어, 각각의 역학적 모드가 독립적으로 작동하도록 분리했다. 모드는 물체가 진동할 때 나타나는 고유한 떨림의 형태를 뜻하는데, 이들이 섞이지 않고 따로 놀게 되면서 기존 구조에서 골칫거리였던 불필요한 파동 현상이 걸러졌다. 논문 제목에 '분리된 역학적 모드(decoupled mechanical modes)'가 담긴 이유다.
연구팀은 컴퓨터 수치 해석과 실제 시제품 제작 실험을 함께 진행해 이 구조가 의도대로 작동함을 확인했다. 그 결과 좁은 대역에 갇혀 있던 파동의 증폭과 차단 특성을, 여러 주파수 대역에 걸쳐 설계 목적에 맞게 비교적 손쉽게 구현할 수 있었다. 이 방식은 1차원 선형 구조부터 2차원 면, 3차원 입체 구조까지 확장해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초음파 영상·차세대 센서로 잇는다
오주환 교수는 "이번 연구는 탄성파와 진동을 활용하는 다양한 시스템의 새로운 설계 방식을 제시하고, 탄성파 분야에서 나타나는 비국소 메타물질의 새로운 파동 현상을 실험적으로 구현하고 검증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이 기술을 공학적으로 응용해 초음파 이미징이나 차세대 센서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술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 플랫폼이 진동을 줄이는 저감 장치, 초정밀 파동 제어 장치, 의료용 초음파 장비, 차세대 센서 등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번 성과는 소재 플랫폼의 원리를 실험실 규모에서 입증한 단계로, 실제 장비 수준의 성능과 양산 가능성을 검증하는 후속 연구가 상용화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STEAM연구사업, 우수신진연구, 기초연구실사업 지원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비파괴측정그룹의 실험 지원으로 수행됐다. 논문은 재료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에 지난 6월 23일 게재됐다.
참고 자료
· 멀리 떨어진 물질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파동 제어… 서울공대 기계공학부 오주환 교수팀, 기존 한계 극복한 차세대 메타물질 개발 — 뉴스와이어 (2026.07.22)
· Nonlocal Metaspire: A Scalable Elastic Material Platform With Decoupled Mechanical Modes — 김승한 외, Advanced Materials (2026), doi.org/10.1002/adma.73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