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공태양' KSTAR, 1억℃ 48초…한국 핵융합은 어디까지 왔나

임형광 기자 · 입력 2026.07.29 12:10 · 수정 2026.08.20 14:51
태양보다 7배 뜨거운 플라스마를 자석으로 붙잡은 48초, ‘꿈의 에너지’가 넘어야 할 300초와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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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태양보다 약 7배 뜨거운 물질을 지구 위에 만든다면 무엇에 담아야 할까. 1억℃를 견딜 냄비나 벽은 없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KFE)의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 KSTAR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접촉하지 않는 그릇’으로 풀고 있다. 강력한 자기장으로 초고온 플라스마를 도넛 모양의 진공 속에 띄워 가두는 것이다. KSTAR는 2024년 이온온도 1억℃ 플라스마를 48초간 유지하며 세계 기록을 세웠다.

48초라는 숫자는 짧게 들린다. 그러나 여기서 붙잡아야 하는 것은 뜨거운 물이나 불꽃이 아니다.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물질의 제4상태인 플라스마다. 게다가 온도는 태양 중심부 약 1,500만℃의 7배에 이른다. 2021년의 30초에서 불과 18초 늘어난 기록처럼 보이지만, 초고온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1초 더 가두는 일 자체가 핵융합 연구의 극한 난제다.

태양보다 더 뜨거워야 만드는 ‘지상의 태양’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핵 두 개가 합쳐져 더 무거운 핵이 되면서 에너지를 내는 반응이다. 무거운 원자핵을 쪼개 에너지를 얻는 핵분열, 즉 현재 원자력발전의 원리와는 정반대다. 태양에서는 중심부의 초고온·초고압 환경에서 수소핵들이 융합해 헬륨이 된다. 이 과정에서 사라진 미세한 질량이 E=mc², 곧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바뀔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관계식에 따라 막대한 에너지로 전환된다.

지구의 핵융합 연구는 주로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D)와 삼중수소(T)를 융합해 헬륨과 중성자를 만드는 D-T 방식을 다룬다. 동위원소는 같은 원소이지만 원자핵의 구성이 다른 종류를 뜻한다. 문제는 두 원자핵이 모두 양전하를 띠어 서로 밀어낸다는 점이다. 이 반발을 이겨내고 서로 합쳐지게 하려면 1억℃가 넘는 초고온이 필요하다.

태양보다 지구의 핵융합 장치가 더 뜨거워야 한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보인다. 태양은 거대한 중력으로 중심부를 강하게 압축하지만, KSTAR 내부의 플라스마는 밀도가 매우 낮고 그런 중력 압축도 없다. 부족한 압축 조건을 더 높은 온도로 보완해야 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1억℃ 플라스마가 장치 벽에 닿으면 어떤 고체도 이를 그대로 견딜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장치가 토카막이다. 토카막은 강력한 자기장으로 플라스마를 도넛 모양 진공 공간에 공중부양시키듯 가둔다. 태양에서 일어나는 원리를 지상에서 재현한다는 뜻에서 ‘인공태양’이라고 불린다. KSTAR는 자석 전체에 초전도 선재를 사용한 완전 초전도 토카막이다. 초전도 자석은 저항 없이 강한 자기장을 오래 유지할 수 있어 장시간 운전에 유리하다.

1.5초에서 48초까지, 기록을 바꾼 텅스텐

KSTAR의 기록은 한 번의 도약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2008년 최초 플라스마를 만든 뒤 2018년 12월 세계 최초로 1억℃ 플라스마를 1.5초간 유지했다. 유지시간은 2020년 20초, 2021년 30초로 늘었고, 2023년 1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진행한 실험 캠페인에서 48초에 도달했다. KFE가 2024년 3월 20일 발표한 결과다. 같은 캠페인에서는 고성능 운전인 H-mode를 102초간 유지했다.

결정적인 변화는 플라스마의 열과 불순물을 배출하는 장치인 디버터에 있었다. 디버터는 초고온 플라스마와 상호작용하며 장시간 운전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KFE는 2023년 디버터 소재를 탄소에서 텅스텐으로 교체했다. 텅스텐 디버터는 같은 열부하를 받을 때 표면 온도 상승이 이전 탄소 디버터의 25%에 그쳤다. 플라스마를 더 오래 운전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한 것이다.

이 기록을 다른 핵융합 장치의 ‘수분’ 또는 ‘수십 분’ 유지 기록과 시간만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유지시간이 더 길더라도 1억℃가 아닌 낮은 온도 조건에서 나온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핵융합 장치의 성과를 이해하려면 얼마나 오래 유지했는지뿐 아니라 어떤 온도와 운전 조건이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핵분열과 다른 안전성, 그러나 끝나지 않은 숙제

핵융합이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이유는 연료와 배출물, 안전성에 있다.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사실상 무한히 추출할 수 있고 핵융합 과정에서는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주된 생성물은 방사능이 없는 헬륨이다. 핵분열 원자로와 달리 폭주나 노심용융 위험도 원리적으로 없다. 초고온이나 자기장 가둠 조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핵융합 반응이 즉시 멈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사성 물질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D-T 핵융합에서 나온 중성자는 장치 구조물을 방사화시킨다. 다만 이 물질은 반감기가 수십~수백 년으로 짧아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로 분류된다. 반감기가 수만 년인 핵분열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과는 시간 규모와 분류가 다르다.

현재 48초와 실제 발전 사이에는 여러 기술 과제가 남아 있다. KFE의 다음 목표는 1억℃ 플라스마를 300초, 즉 5분간 유지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2026년 목표로 제시돼 있다. 300초는 ‘1년 내내 발전기를 돌릴 수 있느냐’를 가르는 최소 기술 문턱으로 꼽히지만, 목표인 만큼 달성 여부를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이후에도 300초를 넘어 정상상태로 운전하는 기술, 에너지 순생산(Q>1) 실증, 삼중수소 자급, 강한 중성자를 견딜 내벽 소재가 필요하다.

ITER에서 K-DEMO까지, 48초 다음의 길

한국의 연구는 KSTAR에만 머물지 않는다. 프랑스에 건설되는 세계 최대 국제 핵융합 실험로 ITER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KFE의 ITER한국사업단을 통해 초전도도체를 회원국 가운데 처음으로 조달 완료했고, 진공용기 9개 섹터 중 4개를 제작해 2024년 11월 전량 인도하는 등 모두 9개 품목을 담당했다.

국내에서는 실증로 K-DEMO를 통해 2050년대 핵융합 전력생산을 실증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KSTAR의 48초는 곧바로 상용발전을 뜻하지 않는다. 다만 1억℃라는 극한 상태를 더 오래 통제하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실제 장치로 확인한 기록이다. 1.5초에서 20초, 30초를 거쳐 48초까지 온 과정은 핵융합의 핵심 질문이 단순히 ‘1억℃를 만들 수 있는가’에서 ‘그 상태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시선은 300초와 그 너머의 정상상태 운전으로 향한다.

점화한 미국, 오래 버틴 중국, 늦어진 ITER

국경 밖 경쟁도 갈림길에 있다. 미국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의 국립점화시설(NIF)은 2022년 12월 레이저 192개로 연료 캡슐을 순간 압축해 넣은 에너지(2.05MJ)보다 많은 3.15MJ을 얻었다. 실험실에서 처음으로 '점화'(투입보다 많은 핵융합 에너지를 얻는 것)에 도달한 사건이다. 다만 자기장 대신 빛으로 찰나에 압축하는 관성가둠 방식이어서 KSTAR 같은 토카막과는 노선이 다르다. 토카막 진영에서는 유럽 합동 장치 JET가 퇴역 전 마지막 중수소-삼중수소 실험에서 5초가량 69MJ의 핵융합 에너지를 낸 기록을 남겼고(2024년 2월 발표), 중국과학원은 2025년 1월 EAST가 고성능 플라스마를 1,066초 유지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짚었듯 이런 숫자들은 온도·운전 조건과 함께 읽어야 하는 값이다.

반면 국제 공동 실험로 ITER의 시계는 늦춰졌다. 2024년 개정된 기준일정은 완전 자기에너지 운전을 2036년, 중수소-삼중수소 연소 운전을 2039년으로 잡아 종전보다 4년 밀렸다. 국제 프로젝트가 지연되는 사이 영국이 2040년 가동을 목표로 자체 원형 발전로 STEP을 추진하는 등 무게중심은 각국의 독자 실증 경쟁으로 옮겨 가고 있다.

1조 2,000억 민관 프로젝트…'가속화 전략'의 시험대

한국 정부도 이 속도전에 응답했다. 2024년 7월 확정한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은 민관 협력 기술혁신, 산업화 기반 구축, 혁신 생태계 조성을 3대 축으로 세우고 1조 2,000억 원 규모의 민관 합동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KSTAR와 ITER 조달로 쌓인 국내 기업의 제작 경험을 발전소급 부품 공급망으로 잇겠다는 취지다.

시간표를 겹쳐 보면 함의가 드러난다. ITER의 연소 실증이 2039년으로 밀린 만큼, 그때까지의 순위는 각국 자체 장치의 성과와 소재·부품 공급 능력에서 갈린다. 48초 기록을 만든 것이 텅스텐 디버터 교체였듯, 극한 조건을 견디는 소재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공급하는 쪽이 '꿈의 에너지' 경쟁의 실질 승부처를 쥐게 된다.

자료: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ITER국제기구·과학기술정보통신부·미국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영국원자력청(UKAEA)·중국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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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광 기자 hg.lim@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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