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코로나 백신을 넘어 ‘나만의 암 백신’으로…mRNA의 다음 장

주사를 맞았는데 약이 아니라 ‘요리법’이 들어온다면 어떨까. mRNA(전령 RNA) 백신은 완성된 항원을 몸에 넣는 대신, 세포에 ‘이 단백질을 만들라’는 설계도인 mRNA를 배달한다. 세포라는 주방이 설계도에 따라 항원 단백질을 만들고 표면에 내걸면, 면역계는 그것을 침입자의 특징으로 학습해 항체와 T세포를 준비한다. 실제 바이러스를 넣지 않고도 면역을 훈련하는 방식이다.
이 설계도는 임무를 마치면 세포에 의해 분해된다. 세포핵의 DNA에 끼어들지 않으며 유전체도 바꾸지 않는다. 코로나19 백신은 많은 사람에게 같은 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 설계도를 보냈다. 이제 연구자들은 같은 원리를 바꿔, 환자 한 사람의 암에만 존재하는 표적의 설계도를 보내려 하고 있다.
15년 동안 묻혀 있던 설계도
mRNA가 코로나19와 함께 갑자기 등장한 기술은 아니다. 핵심 전환점은 팬데믹보다 15년 앞선 2005년에 마련됐다. 펜실베이니아대의 카탈린 카리코와 드루 와이스만은 RNA의 구성요소인 우리딘을 슈도유리딘으로 바꾸면 원치 않는 염증반응을 피하면서 단백질 생산을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을 학술지 ‘Immunity’에 발표했다.
이를 뉴클레오사이드 염기 변형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세포가 mRNA 설계도를 위험 신호로 오해해 없애지 않도록 일부 글자를 바꾼 것이다. 전달된 설계도가 충분히 읽혀야 필요한 단백질도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발견은 효과적인 mRNA 백신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2005년 논문은 당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헝가리 출신인 카리코는 1985년 미국으로 향할 때 가족의 저축을 딸의 곰인형 안에 숨겨 나왔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에서 mRNA를 연구하며 연구비난과 여러 차례의 강등·감봉을 견뎠고,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바이오엔텍 수석부사장을 지냈다. 오랫동안 외면받던 연구는 코로나19 대유행에서 현실의 백신이 됐다.
화이자와 바이오엔텍의 코로나19 백신은 임상 3상에서 95.0%의 효능을 보였고, 미국 FDA는 2020년 12월 11일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약 1주 뒤 승인된 모더나 백신의 효능은 94.1%였다. 두 백신 모두 카리코와 와이스만의 기술을 기반으로 했다. 두 연구자는 ‘코로나19에 대한 효과적 mRNA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한 뉴클레오사이드 염기 변형에 관한 발견’으로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모두의 스파이크에서 한 사람의 종양으로
암 백신의 출발점은 암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환자의 종양 변이를 시퀀싱한 뒤, 정상조직에는 없고 해당 종양에만 있는 신항원(neoantigen)을 찾는다. 신항원은 암세포의 변이 때문에 새로 생겨 면역계가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단백질 특징이다. 이어 그 신항원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개인별 mRNA를 제작한다.
코로나19 백신이 모두에게 같은 스파이크 설계도를 전달했다면, 개인 맞춤형 암 백신은 환자 한 사람의 종양에서 골라낸 표적 목록을 전달하는 셈이다. 세포가 신항원을 만들어 보여주면 T세포가 이를 학습하고, 정상조직에는 없는 종양 특이 표적을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다만 실제 환자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주는지는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하는 단계다.
흑색종 2b상과 췌장암 1상이 보여준 신호
모더나와 머크는 완전히 절제된 고위험 3기 또는 4기 흑색종 환자 157명을 대상으로 2b상 KEYNOTE-942를 진행했다. 개인 맞춤형 백신 mRNA-4157/V940은 하나의 mRNA에 최대 34개 신항원을 암호화하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함께 투여됐다.
2022년 12월 발표된 1차 결과에서 병용군은 키트루다 단독군보다 재발·사망 위험이 44% 낮았다. 위험비인 HR은 0.56이었다. 이어 2023년 12월 공개된 약 3년 추적 결과에서는 재발·사망 위험이 49% 감소했고 HR은 0.510이었다. 원격전이·사망 위험은 62% 낮았다. 44%와 49%는 같은 시점의 수치를 고쳐 쓴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발표 시점의 추적 결과다.
이 후보물질은 현재 3상 INTerpath-001에서 평가되고 있으며 미국 FDA의 혁신치료제 지정과 유럽 EMA의 PRIME 지정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치는 2b상에서 나온 잠정 데이터다. 암을 완치한다거나 이미 표준치료가 됐다고 결론 내릴 단계는 아니다.
바이오엔텍과 제넨텍이 개발하는 췌장암 백신 autogene cevumeran의 1상에서도 면역반응이 관찰됐다. 수술로 종양을 절제한 환자 16명 가운데 8명에서 강한 신항원 특이 T세포가 유도됐고, 유도된 T세포의 98%는 새로 생긴 것이었다. 반응자 8명 중 6명은 3년 동안 재발하지 않은 반면, 비반응자 8명 중 7명은 재발했다. 다만 환자가 16명뿐인 초기 임상 결과이므로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와 효과를 확정하는 증거는 구분해야 한다.
맞춤 제작의 대가, 시간·비용·냉동 유통
개인 맞춤형이라는 장점은 동시에 생산의 어려움이 된다. 환자마다 종양을 시퀀싱하고, 공격할 신항원을 예측한 뒤, 그 사람만을 위한 mRNA를 별도로 제조해야 한다. 이 과정은 시간과 비용 부담을 키우며 저소득 지역의 치료 접근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유통도 과제다. 대부분의 mRNA 제품은 −20~−80℃에서 냉동 보관해야 해 냉장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운반과 보관이 어렵다. 동결건조를 통해 부담을 줄이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해결된 문제는 아니다.
mRNA는 코로나19를 통해 설계도를 빠르게 바꿔 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암에서는 그 설계도를 환자 한 명의 종양에 맞추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흑색종과 췌장암의 임상 결과는 다음 장의 첫 문장에 가깝다. 더 큰 임상시험에서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고, 맞춤 제작에 필요한 시간·비용과 냉동 유통의 장벽을 낮출 수 있는지가 이 기술의 실제 쓰임을 결정할 남은 질문이다.
한국엔 아직 국산 mRNA가 없다…5,052억 원이 향하는 2028년
이 기술 지도에서 한국의 자리는 아직 비어 있다. 코로나19 때 한국은 자체 mRNA 백신 없이 해외 개발사 제품에 의존했다. 국산 1호 코로나 백신으로 2022년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코비원은 항원 단백질을 만들어 넣는 합성항원 방식이어서, 설계도만 바꾸면 새 백신이 되는 mRNA 플랫폼과는 계열이 다르다. 다음 팬데믹이 와도 설계도를 갈아 끼울 자국 플랫폼이 없는 상태였던 셈이다.
그 공백을 메우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질병관리청은 2028년 국산 mRNA 코로나19 백신 품목허가를 목표로 총 5,052억 원 규모의 '팬데믹 대비 mRNA 백신 개발 지원사업'을 가동했고, 2025년 GC녹십자와 유바이오로직스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임상에 들어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7월에는 임상 2상 단계 지원 대상 선정까지 진행됐다. 한국은 2022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로서 중·저소득국의 백신 생산인력 교육도 맡고 있다.
'100일 미션'의 전제…플랫폼 없이는 맞춤 백신도 없다
국제 보건계의 시간표는 더 빠듯하다. 국제 백신 협력체 CEPI는 새 감염병이 확인되면 100일 안에 백신을 내놓자는 '100일 미션'을 목표로 내걸었다. 코로나19 백신이 바이러스 유전정보 공개에서 긴급사용 승인까지 약 11개월 걸린 것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자는 것인데, 설계도만 바꿔 끼우는 mRNA 같은 플랫폼 기술이 사실상 그 전제다.
암 백신으로 가는 길도 같은 토대 위에 있다. 감염병용이든 암용이든 mRNA 의약품은 설계도 합성과, mRNA를 감싸 세포까지 배달하는 기름막 입자인 지질나노입자(LNP) 제조라는 생산 기반을 공유한다. 국내 사업이 팬데믹 대비용으로 출발했더라도 여기서 확보한 설계·생산 역량이 환자별 유전자 분석과 결합해야 '나만의 암 백신'이라는 다음 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간·비용·냉동 유통이라는 장벽 역시 자국 생산 기반 없이는 낮추기 어려운 숙제다.
자료: 노벨위원회·펜실베이니아대·바이오엔텍·모더나·머크·NIAID·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세계보건기구(WHO)·CEP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