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노벨상 카지타 다카아키, 포항서 '우주의 봉인' 열다…APCTP 30주년 특별강연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알갱이 가운데 하나인 중성미자가 실은 질량을 가진다는 사실을, 1998년 세상에 처음 증명해 보인 물리학자가 있다. 그 발견으로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카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도쿄대 교수가 7월 중순 포항에서 대중과 마주 앉는다. '우주의 봉인을 연다'는 강연 제목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와 시공간의 떨림으로 우주의 비밀을 좇아온 40여 년의 여정을 직접 들려주는 자리다.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센터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강연 시리즈이자 제26회 '과학자와의 만남' 프로그램으로 열린다. 경상북도와 포항시가 주최하고 APCTP가 주관하며, 강연장은 경북 포항시 POSTECH(포항공과대) 포스코 국제관 국제회의장이다.
중성미자에 '질량'을 부여한 발견
카지타 교수의 업적을 이해하려면 중성미자(neutrino)라는 입자부터 짚어야 한다. 중성미자는 전기를 띠지 않고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아 '유령 입자'로 불리는 소립자다. 오랫동안 물리학계는 이 입자의 질량이 0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카지타 교수는 일본 기후현 가미오카 광산 지하에 설치된 거대 검출기 실험을 통해, 중성미자가 날아가는 도중 종류가 뒤바뀌는 '중성미자 진동' 현상을 포착했다. 종류가 바뀐다는 것은 곧 질량이 0이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였다.
이 발견은 물질의 근본 법칙을 기술하는 표준모형을 수정하게 만든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카지타 교수는 현재 도쿄대 우주선연구소 석좌교수로, 이 분야 연구를 이끌고 있다. 강연 제목이 '뉴트리노와 중력파, 우주의 봉인을 열다'인 것도 그의 관심이 소립자에서 우주 시공간의 파동인 중력파로까지 확장돼 왔기 때문이다.
대중강연과 연구자 심포지엄, 이틀에 걸쳐
행사는 이틀 구성이다. 7월 15일 오후 3시부터 열리는 대중강연은 노벨상 수상자 강연과 강연 기념공연으로 짜여, 학생과 시민이 세계적 과학자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이어 16일에는 연구자 대상 심포지엄이 마련돼 중성미자와 중력파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최신 연구가 공유된다.
심포지엄에서 카지타 교수는 '가미오카에서의 중성미자와 중력 연구'를 주제로 발표한다. 국내 연구자도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형목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을 이끌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중력파 연구 20여 년의 성과와 발전'을 발표한다. 이 밖에 양병수 전남대 교수,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오샤닌 글렙 박사, 중국 통지대 장잉리 교수, APCTP의 살가도-레볼레도 파트리시오 박사 등이 물리학의 여러 갈래를 아우르는 발표를 이어간다.
설립 30년 맞은 이론물리 거점
APCTP는 1996년 설립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이론물리 연구 거점이다. 센터에 따르면 현재 20개 회원국과 39개 협정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그동안 약 300명의 차세대 과학자 양성을 지원해 왔다. '과학자와의 만남'은 2008년 이후 이어져 온 대중 소통 프로그램으로, 올해로 26회째를 맞았다.
사사키 미사오 APCTP 소장은 이번 특별강연 시리즈가 세계적 과학자의 연구 여정과 과학적 발견의 의미를 연구자와 학생, 시민이 함께 나누는 자리라고 밝혔다. 기초과학의 성과가 실험실 안에 머물지 않고 대중과 만나는 통로를 넓힌다는 취지다. 다만 대규모 국제 심포지엄의 성과가 국내 연구 저변으로 이어지려면 일회성 행사를 넘어 지속적인 후속 교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참고 자료
·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카지타 다카아키, 포항에서 우주의 비밀을 말하다 — 뉴스와이어 (2026.07.22)
한국의 '가미오카'는 정선에 있다
카지타 교수가 우주의 비밀을 캔 곳이 일본 광산 지하였다면, 한국의 무대는 강원 정선 예미산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2022년 10월 예미산 지하 1000m에 실험시설 '예미랩'을 준공했다. 실험 공간은 3,000㎡로 축구장 절반에 못 미치는 넓이지만 국내 최대이고, IBS가 밝힌 기준으로 세계 여섯 번째 규모다. 이곳에서는 중성미자가 자기 자신의 반입자인지를 가리는 이중베타붕괴 실험(AMoRE-II)과 암흑물질 탐색 실험(COSINE-200)이 이어진다. 카지타 교수가 연 '질량 있는 중성미자' 물리학의 다음 질문을 한국 땅속에서도 캐고 있는 셈이다.
전사도 있다. 국내 연구진이 전남 영광 한빛 원전 곁에 세운 RENO 검출기는 2012년 중국 다야베이 실험과 나란히, 마지막까지 미지로 남아 있던 중성미자 진동의 혼합각(θ13)을 처음 측정해 세계 물리학계에 이름을 새겼다.
물리학계의 다음 꿈은 50만 톤짜리 지하 검출기
학계의 시선은 이미 다음 단계에 가 있다. 국내 연구자들이 제안해 온 한국중성미자관측소(KNO)는 지하 1000m에 물 50만 톤을 채운 체렌코프 검출기(물속을 지나는 입자가 내는 희미한 빛을 잡는 장치)를 짓자는 구상이다. 카지타 교수의 노벨상을 낳은 슈퍼카미오칸데(물 5만 톤)의 10배로, 실현되면 세계 최대 지하 중성미자 시설이 된다.
한국물리학회 웹진 '물리학과 첨단기술'에 실린 유인태 성균관대 교수의 글에 따르면 후보지는 대구 비슬산과 경북 보현산이며, 구축에 약 6년, 3500억 원 안팎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J-PARC 가속기가 쏘는 중성미자 빔이 한반도 남부를 지나기 때문에, 우주에 왜 물질만 남았는지를 캐는 CP 대칭성 깨짐 연구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예비연구에서는 일본 하이퍼카미오칸데 등에 비해 비용은 적게 들면서 기대 성과는 비교우위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아직 정부 사업 확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자료: 기초과학연구원(IBS)·한국물리학회·대한민국 정책브리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