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물이 가슴까지 차오른 자리 — 컴퓨터가 그린 침수를 실물로 다시 재본 이유
사진 한 장이 있다. 콘크리트 수조 안에 도로가 깔려 있고, 흰 승용차가 창문 아래까지 물에 잠겨 있다. 그 옆에 안전모를 쓴 인체 모형 두 개가 서 있는데, 물이 가슴 높이까지 올라와 있다. 경북 안동,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도시홍수 실험장이다.
건설연은 7월 29일 서울 강남역 인근 도심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시간당 100㎜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리면 수십 센티미터에서 최대 1m 깊이의 침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1m라는 숫자 자체는 놀랍지 않다. 강남역은 이미 여러 번 잠겼다. 눈여겨볼 것은 그 숫자를 얻은 방식이다.
계산한 뒤에, 물을 부어 다시 봤다
연구는 두 갈래로 진행됐다.
먼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다. 반포천 유역의 지형과 우수관망, 도로의 종단·횡단 경사, 빗물받이 같은 배수시설 정보를 그대로 반영해 강남역 사거리 구간에 강우와 유출 조건을 걸었다. 도로 위로 물이 넘치는 과정, 빗물받이가 물을 얼마나 빼내는지, 침수 깊이가 어떻게 올라가는지를 계산했다. 최대 1m라는 수치는 여기서 나왔다.
그다음이 안동이다. 건설연은 하천실험센터의 도시홍수 파일럿 실험장에서 실규모 수리실험을 수행했고, 그 결과가 시뮬레이션과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의 표현은 정확히 이렇다 — 실험 결과가 "시뮬레이션 결과의 신뢰성을 뒷받침했다".
순서가 중요하다. 안동에 강남역을 그대로 옮겨 짓고 물을 부었더니 1m가 나온 것이 아니다. 계산이 먼저고, 실물 실험은 그 계산이 믿을 만한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실규모(實規模)란 축소 모형을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수리 실험은 보통 실제보다 작게 만든 모형에 물을 흘리고 비례식으로 환산하는데, 이 과정에서 물의 점성이나 마찰처럼 크기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는 힘들이 왜곡된다. 도로 폭과 배수관 규격을 실물 그대로 지으면 그 왜곡이 사라진다. 실험장은 지난 5월 가동을 시작했다.
왜 계산을 다시 확인해야 했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건설연 바깥에 있다.
감사원은 상습 침수지역의 하수도를 확충하는 국고보조사업을 감사한 결과를 지난해 내놨다. 2023년 점검한 16개 지자체 21개 지역 가운데 10개 지역에서 하수도 시뮬레이션의 기초자료 입력이 부실했다. 관망 자료가 빠져 있거나, 대상 지역 일부만 모델링한 경우였다.
더 뼈아픈 대목은 그다음이다. 이 중 4개 지역은 기초자료를 보완해 다시 계산하자 침수 수위와 침수 지역 자체가 달라졌다. 침수 대책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했다.
이것은 이번 건설연 실험과는 다른 사업에 대한 감사다. 건설연의 시뮬레이션을 겨냥한 지적이 아니다. 다만 "계산만으로는 못 미덥다"는 진단이 정부 안에서 이미 나와 있었다는 사실은 남는다. 컴퓨터에 무엇을 넣었느냐에 따라 결과가 통째로 바뀐다면, 그 결과를 실물로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에는 값이 있다.
박선규 건설연 원장은 이번 연구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실규모 실험을 통해 교차검증함으로써 도시홍수 예측 기술의 신뢰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1㎜의 차이
강남역이 반복해서 잠기는 이유를 서울시는 2015년에 이미 네 가지로 정리해 놓았다. 주변 서초·역삼 고지대보다 10m 이상 낮은 항아리 지형, 강남대로 하수관로 설치 오류, 반포천 상류부의 부족한 통수 능력, 그리고 옛 삼성타운 하수암거의 시공 오류다.
그러나 2022년 8월 8일 밤에 드러난 것은 지형이나 시공 오류보다 더 단순한 문제였다. 기준 자체가 낮았다.
당시 서울시의 방재성능목표는 서울 전역에 똑같이 적용되는 30년 빈도, 즉 시간당 95㎜였다. 그날 밤 강남구에는 시간당 116㎜가 쏟아졌다. 동작구 신대방동에서는 141.5㎜가 기록됐는데, 이는 1942년 이후 서울 관측 사상 가장 많은 시간당 강우량이다.
95와 116. 21㎜ 차이다. 그날 서울에서 15명이 숨졌고, 그중 상당수는 반지하에서 나왔다. 관악구 신림동에서 일가족 3명이, 동작구 상도동에서 1명이 물에 갇혀 사망했다. 서초구에서는 침수된 도로를 건너던 남매가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 숨졌다.
배수관은 더 낮은 기준으로 지어졌다. 굵은 간선관로가 30년 빈도, 실핏줄에 해당하는 지선관로는 10년 빈도였다. 10년에 한 번 올 만한 비에 맞춰 설계했다는 뜻이다.
완공 두 달 만에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면산과 예술의전당 일대의 빗물을 반포천 중류로 흘려보내는 반포천 유역분리터널이 2018년 착공해 2022년 6월 완공됐다. 설계 기준은 30년 빈도, 시간당 95㎜였다.
완공 두 달 뒤인 8월, 그 기준을 넘는 비가 왔다.
더 큰 대책인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은 12년째 표류 중이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직후 서울 7곳에 짓겠다는 계획이 나왔다가 이후 6곳이 백지화됐고, 2022년 침수 이후 되살아났다. 그 뒤로도 입찰이 두 차례 유찰돼 사업비가 1조 2,052억원에서 1조 3,689억원으로 16% 올랐고, 2024년 12월에야 착공했다.
건설연 보도자료는 이 시설의 완공 시점을 2030년으로 적고 있다. 완공되면 시간당 110㎜의 비에도 침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그때까지 강남역 사거리를 포함한 침수 우려 도로 3곳은, 집중호우가 예보되면 경찰청과 합동으로 차량 통행을 미리 막는 방식으로 관리된다.
지연의 이유가 기술이 아닐 때
감사원은 2023년 6월 도심 침수예방사업을 감사한 결과, 지자체들이 집값 하락 등 민원을 우려해 침수위험지구를 주거지와 상가를 피해서 지정했다고 지적했다. 위험지구로 지정되면 건축 규제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행정안전부에 주의를 요구했다.
같은 기관은 2012년 감사에서도 서울시의 빗물저류조 투자 우선순위 미준수, 집중강우관리구역 166.3㎞ 가운데 27%만 준설된 하수관거 실태를 이미 지적한 바 있다. 2022년의 참사는 예고 없이 온 것이 아니었다.
실험장이 다루지 않는 것
이번 실험의 한계도 분명하다.
안동 실험장은 왕복 6차선 도로 20m 구간, 약 800㎡ 규모다. 빗물받이와 우수관, 지하 저류시설과 배수터널, 배수펌프장까지 실물 규격으로 갖췄지만, 실제 강남역 사거리는 여러 방향의 도로가 만나는 대형 교차로이고 그 배후에는 상권과 건물이 빽빽하다. 20m 구간과는 규모가 다르다.
더 중요한 공백이 있다. 공개된 자료에서 이 실험이 다루는 '지하'는 우수저류시설과 배수터널, 펌프장 같은 땅에 묻힌 배수 설비다. 반지하 주택, 지하철 역사, 지하상가처럼 사람이 머무는 지하공간의 침수는 실험 범위에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22년 8월의 사망자 상당수가 그 공간에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공백은 작지 않다.
연구진이 "우리는 지하공간을 다루지 않았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 공개된 자료를 종합해 관찰한 결과다. 건설연은 향후 다양한 강우 조건과 배수시설 운영 상황을 반영한 실험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남는 질문
이번 발표는 새 대책을 내놓은 것이 아니다. 시간당 100㎜에 강남역이 1m 잠길 수 있다는 것은, 2022년에 116㎜를 맞아 본 도시에서는 이미 아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번 연구가 더한 것은 그 예측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침수 예측은 결국 어디를 먼저 손볼지, 어디에 사람을 들이지 말지를 정하는 근거가 된다. 그 근거가 되는 계산이 실제와 얼마나 맞는지 물리적으로 확인해 본 사례는 드물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은 실험실 밖에 있다. 이 검증된 예측이 하수관로 설계 기준을 실제로 바꾸는가. 침수위험지구 지정이 집값 민원 앞에서 다시 물러서지는 않는가. 그리고 2030년까지 남은 여름들은 어떻게 넘길 것인가.
안동의 실험장에서 인체 모형은 물이 가슴까지 차오른 채 서 있을 수 있다. 실제 도로에서는 그럴 수 없다.
일본은 비를 만들어 붓고, 지하에 강을 파뒀다
실물로 다시 재보는 일에서 한 발 앞서 있는 곳은 일본이다. 방재과학기술연구소(NIED)는 시간당 15~300㎜의 비를 실제로 만들어 뿌리는, 살수 면적과 능력에서 세계 최대인 대형 강우 실험시설로 도시홍수와 산사태를 연구한다. 2022년 8월 서울에서 기록된 사상 최고치 141.5㎜조차 이 시설이 만들 수 있는 비의 절반이 안 된다.
흘려보내는 쪽의 격차는 더 크다. 도쿄 북쪽 사이타마현 지하 50m에는 길이 6.3㎞, 안지름 10m짜리 터널로 넘친 하천물을 받아내는 수도권외곽방수로가 가동 중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세계 최대급 지하방수로라고 소개하는 이 시설에서는 항공기용 가스터빈을 개조한 1만4,000마력 펌프 4기가 초당 200㎥씩 물을 강으로 밀어낸다. 서울 강남이 2030년 완공을 기다리는 종류의 시설이 도쿄 외곽에서는 이미 물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준은 이미 올라갔다, 이제 속도의 문제다
참사 이후 제도는 실제로 움직였다. 서울시는 2022년 12월 방재성능목표를 다시 정해 시간당 100㎜, 침수에 취약한 중점관리지역은 110㎜의 비를 처리하도록 설계기준을 높였다. 그날 밤 강남에 내린 비에는 여전히 못 미치는 수치지만, 참사 당시의 95㎜ 기준은 문서에서 사라졌다.
법의 그릇도 새로 짜였다. 2024년 3월 시행된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법(도시침수방지법)은 환경부 장관이 침수 우려가 큰 특정도시하천 유역마다 10년 단위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했고, 이 계획에 하수도 등 개별 법령보다 강화된 설계기준을 적용할 근거와 도시침수예보센터의 설치 근거를 담았다. 안동의 실험이 값을 가지려면 다음 단계는 정해져 있다. 검증된 예측이 이 계획들의 관로 규격과 위험지구 경계선으로 번역되는 것이다. 기준과 법이 마련된 지금부터는, 얼마나 빨리 지어지느냐가 남은 변수다.
자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서울특별시, 감사원, 기상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