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세포가 드레싱을 당기면 치유 단백질이 풀린다…‘2000분의 1 이하’의 진짜 뜻

손창한 기자 · 입력 2026.08.19 15:55 · 수정 2026.08.20 14:19
DNA 매듭을 세포의 견인력으로 푸는 TrAPs, 혈관과 상처 지름에서 가능성을 보였지만 사람 치료와 실제 방출량 검증은 남았다
[기획] 세포가 드레싱을 당기면 치유 단백질이 풀린다…‘2000분의 1 이하’의 진짜 뜻
성장인자를 포획하는 TrAP 처리 조건(아래 두 패널)에서 인간 내피세포가 비드 주변으로 혈관 싹을 뻗은 공초점 현미경 이미지. 위쪽 대조군은 싹이 드물다. (사진 출처=Magdalene Y. Ho 외, Nature Materials, CC BY 4.0)

상처에 붙인 드레싱 안에 작은 약장이 있고, 다친 곳으로 기어온 세포가 손잡이를 잡아당겨야만 문이 열린다고 생각해보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주도 연구진이 개발한 TrAPs(traction-force-activated payloads·견인력 활성화 탑재체)는 이 장면을 분자 수준에서 구현했다. 건강한 생쥐에게 연필 지우개만 한 지름 6㎜의 급성상처를 낸 실험에서 최초 상처 지름을 100으로 놓았을 때 10일째 중앙값은 TrAP군 44, 빈 스펀지군 89, 당길 수 없는 대조물질군 108이었다. 면적이나 완치율이 아니라 상처 지름을 잰 결과이며, 사람 치료가 아닌 소규모 전임상 파일럿이다.

성장인자를 가두고 세포에게 열쇠를 맡기다

성장인자는 세포의 증식과 이동, 혈관 형성 같은 회복 과정을 이끄는 단백질이다. 그러나 몸속에서는 빠르게 분해되거나 상처에서 씻겨 나갈 수 있고, 반복해서 투여하더라도 필요한 세포 주변의 농도를 정밀하게 맞추기 어렵다. 별도의 랫드 정맥주사 연구에서 bFGF의 혈중 반감기가 약 3분으로 측정된 사례도 있다. 이는 모든 국소 성장인자 치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지만, 단백질 약물을 필요한 장소에 오래 붙잡아 두는 일이 왜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영국 NHS의 2017/18년 자료에서도 성인 상처 환자는 380만 명, 연간 비용은 83억 파운드로 추정됐고 30%는 연구기간 안에 낫지 않았다. 영국의 과거 자료이지 2026년 세계 현황은 아니다.

TrAP의 잠금장치는 DNA 압타머, 즉 특정 단백질을 골라 붙잡도록 접힌 수십 염기 길이의 짧은 핵산 구조다. 압타머가 성장인자에 결합하면 활성이 억제된다. 압타머 한쪽은 콜라겐 지지체에 고정하고, 다른 쪽에는 RGD 펩타이드 손잡이를 달았다. RGD는 세포 표면의 인테그린이라는 접착 단백질이 붙는 서열이다. 세포가 콜라겐 위를 이동하며 RGD를 당기면 압타머의 접힘이 풀리고, 붙잡혀 있던 성장인자가 세포와 재료가 맞닿은 곳에서 활성화된다. 빛이나 열, 자석, 전자장치 없이 세포가 이동할 때 내는 미세한 힘을 스위치로 삼는 셈이다.

연구진은 서열 순서를 RDG로 바꾼 scrTrAP을 대조물질로 사용했다. 성장인자를 싣는 조건은 같지만 세포가 잘 붙지 않아 견인력으로 열기 어렵다. 따라서 단순히 성장인자가 들어 있다는 사실과 세포가 손잡이를 당겨 여는 효과를 구분할 수 있다. 이 원리는 2019년 같은 연구진이 세포배양에서 먼저 제시했다. 2026년 연구의 새 지점은 효소와 세포외기질이 있는 랫드·생쥐 조직과 살아 있는 상태로 배양한 인간 적출 피부까지 검증 범위를 넓혔다는 데 있다.

세포배양에서 뼈와 인간 피부, 생쥐 상처까지

첫 증거는 인간 미세혈관 내피세포 배양에서 나왔다. VEGF-A를 100ng/mL 조건으로 넣고 24시간 관찰하자 TrAP 주변에서 자란 혈관 싹의 총길이는 두 대조군보다 평균 200% 길어 약 3배가 됐다. 굵기는 scrTrAP보다 100% 두꺼워 약 2배였다. 길이는 3회의 독립실험에서 비드 15개, 굵기는 scrTrAP 혈관 싹 62개와 TrAP 혈관 싹 85개를 분석한 결과다.

다음은 암컷 Wistar 랫드의 대퇴골에 만든 지름 6㎜ 결손이었다. 군당 5마리에게 재조합 VEGF-A를 미리 적재한 스펀지를 넣고 3주 뒤 혈관을 조사했다. 개별 혈관 면적 중앙값은 TrAP군 8726px²로, 빈 스펀지 4652px², 빈 결손 2622px², scrTrAP 759px²보다 컸다. 다만 통계의 분석단위는 동물 5마리가 아니라 한 동물에서 여러 개 측정한 개별 혈관 67~186개였다. 절편당 CD31 양성 구조의 중앙값은 TrAP 26개, scrTrAP 22.5개, 빈 결손 11개, 빈 스펀지 8개였다. TrAP은 두 빈 대조군보다 혈관 수가 많았지만 scrTrAP과의 유의한 차이는 주장되지 않았다. 더 중요한 음성 결과도 있다. 12주 동안 골량에는 유의한 군 차이가 없었다. 혈관이 커졌다는 결과를 뼈가 더 잘 붙었다는 결론으로 옮길 수 없는 이유다.

사람 조직에서는 여성 3명의 복부성형술 잔여 피부에 지름 3㎜ 전층상처를 만들고 배양접시에서 8일 동안 관찰했다. 연구진은 시판 인간 혈소판 용해물에서 FGF-2·PDGF-BB·HGF 세 성장인자를 포획한 TrAP을 사용했다. 기증자와 군별로 4~5개 시료를 두었고, TrAP군에서 피부세포와 스펀지의 중첩 및 진피와 스펀지의 통합이 증가했다. 그러나 상처 폐쇄나 완전치유를 측정한 실험은 아니다. 일부 큰 표본수는 독립된 사람이 아니라 200µm 조직절편의 수이며, PDGF-BB 단독 8일 자료는 기증자 2명에서 나왔다. ‘인간 피부에서 확인했다’는 말과 ‘환자를 치료했다’는 말 사이에는 이만큼의 거리가 있다.

마지막 생쥐 피부 실험에서는 시판 인간 혈소판 용해물에서 FGF-2·PDGF-BB·HGF·VEGF-A 네 종류를 포획했다. 한 마리당 상처 두 개를 만들었으며, 10일째 분석에는 빈 스펀지 5마리의 9상처, scrTrAP 6마리의 11상처, TrAP 6마리의 12상처가 포함됐다. 상처바닥 두께 중앙값은 TrAP 0.921㎜, 빈 스펀지 0.804㎜, scrTrAP 0.821㎜였다. 빈 스펀지와는 유의한 차이가 있었지만 scrTrAP과는 경계에 있어 전체적으로 증가 경향으로 보는 것이 맞다. 스펀지가 떨어진 상처는 분석에서 제외됐다.

‘2000분의 1 이하’는 약효가 아니라 적재농도 계산이다

이 연구에서 가장 주의해 읽어야 할 숫자가 ‘2000분의 1 이하’다. 랫드 대퇴골용 TrAP 스펀지에는 VEGF-A 30ng을 넣었다. 스펀지 부피로 나눈 이론적 적재농도는 510ng/㎤다. 임상용 골이식 제품 INFUSE의 BMP-2를 지지체 부피로 계산하면 규격에 따라 136만5000~181만3000ng/㎤다. 따라서 TrAP의 계산상 농도는 약 2676~3554배, 둥글게 약 2700~3600배 낮다. 2.7~3.6L와 1mL의 차이에 해당하지만, 커피와 소금의 농도를 나란히 놓는 것처럼 단백질과 치료목적이 서로 다른 비교다.

한쪽은 랫드 혈관형성을 시험한 VEGF-A 실험재이고, 다른 쪽은 임상 골융합에 쓰는 BMP-2 허가제품이다. 같은 약효를 2000분의 1 용량으로 냈다는 뜻도, 성장인자 효능을 수천 배 높였다는 뜻도 아니다. 더욱이 510ng/㎤는 넣은 VEGF-A가 모두 남았다고 가정한 상한이다. 인간 피부와 생쥐 실험의 계산도 100% 포획을 가정했다. 실제 결합량과 시간별 활성 방출량, 세포 한 개가 당길 때 풀리는 양은 직접 측정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수동 방출량이 검출한계 부근이어서 세포 이동, 혈관 싹, 상처 지름 같은 기능적 대리지표를 사용했다.

힘이 약한 상처에서도 약장이 열릴까

이 방식의 장점 후보는 약물이 필요한 세포가 도착한 자리에서 스스로 스위치를 켠다는 점이다. 동시에 가장 큰 질문도 그곳에 있다. 별도 연구에서는 노화시킨 인간 피부 섬유아세포보다 젊은 세포의 견인력이 35% 이상 컸다. TrAP을 직접 반증한 결과는 아니지만, 치료가 절실한 노인이나 당뇨·허혈·감염성 만성상처의 세포가 약장을 열 만큼 충분히 당길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이번 결과는 건강한 동물의 급성상처와 몸 밖의 인간 피부에 한정된다.

통계와 시험설계의 한계도 남는다. 생쥐는 한 마리에 만든 두 상처를 각각 독립 분석단위로 삼았지만 같은 동물 안의 상관을 반영한 모형은 보고되지 않았다. 랫드 혈관 면적도 동물보다 개별 혈관을 단위로 계산했다. 랫드 대퇴골 결과평가와 분석은 눈가림했지만 생쥐·세포·체외 인간 피부 실험의 평가자는 군 배정을 알고 있었다. 인간 피부 기증자는 3명뿐이다. 발표 후 약 2주가 지난 2026년 8월 10일 현재 독립 재현을 판단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DNA 구조물의 면역자극과 독성, 반복투여와 전신 노출, 완치 뒤 흉터·탄력성·재발 같은 장기 치유 품질도 별도 검증이 필요하다. 콜라겐이 분해되고 상처 조직의 강성이 달라질 때 압타머의 접근성과 방출시점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책임저자는 관련 미국 특허 발명자이며 제1저자와 함께 Traxion Biotech를 설립했다. 논문은 지원기관이 연구 설계와 분석, 출판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연구가 보여준 것은 완성된 치료제가 아니라, 세포의 힘을 약물전달 신호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체조직 수준의 가능성이다. 다음 단계는 가장 약하고 복잡한 만성상처에서도 이 스위치가 작동하는지, 실제로 얼마가 언제 풀리는지를 직접 재는 일이다.

임상연구 57건, 재생의료기관 223곳…한국이 깔아 둔 활주로

이 스위치가 언젠가 환자 곁에 오려면 받아 줄 제도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그 바닥을 먼저 깔았다. 세포 등으로 손상된 조직과 기능을 되살리는 치료를 따로 관리하는 첨단재생바이오법이 2020년 시행됐고, 2025년 2월 21일 시행된 개정법은 임상연구 대상 제한을 없애고 안전성이 확인된 기술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치료' 제도를 새로 만들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승인된 임상연구는 2025년 12월 기준 57건, 실시 자격을 지정받은 재생의료기관은 올해 6월 기준 223곳이다. 지난 4월에는 첫 치료계획 승인과 국내 개발 첨단바이오의약품(림카토주) 허가가 잇따랐다.

다만 TrAPs와 결이 가장 가까운 조직공학, 곧 세포와 지지체 재료를 엮어 조직 회복을 이끄는 분야는 아직 얇다. 2024년 3월 말까지 적합 판정을 받은 임상연구 42건 가운데 조직공학은 4건이었다. 상처 분야가 빈손인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05년 사람 피부세포로 만든 세포치료제 칼로덤을 깊은 2도 화상용으로 허가했고, 쓸 수 있는 범위는 당뇨성 족부궤양까지 넓어졌다. 이달에는 단국대 조직재생공학연구원 이정환 교수팀이 화상 상처에서 염증을 부추기는 물질을 걷어낸 뒤 회복 단계에 맞춰 약물과 이온을 차례로 내놓는 나노하이드로겔을 재료과학 국제학술지 표지논문으로 발표했다. 세포가 당겨야 열리느냐, 단계에 맞춰 내놓느냐가 다를 뿐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때 내놓는다는 질문은 같다.

연 900억 원을 2000억 원으로…연구를 치료로 옮기는 다음 5년

정부의 진단도 이 기획의 신중론과 같은 곳을 짚는다. 보건복지부가 7월 21일 정책위원회에서 의결한 제2차 첨단재생의료·첨단바이오의약품 기본계획(2026~2030)은, 연구 승인은 쌓였지만 환자가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와 국산 제품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연구성과가 허가와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처방은 국가가 직접 판을 벌이는 쪽이다. 무릎골관절염·난치성 만성통증·혈액암·재발성 교모세포종 4개 질환의 다기관 임상연구를 국가 주도로 추진해 이르면 2028년 하반기 치료로 잇고, 연 900억 원인 연구개발 투자를 2030년까지 두 배가 넘는 2000억 원 이상으로 늘린다. 목표는 임상연구·치료계획 승인 누적 150건, 지금의 세 배 가까운 수치다.

이 목록에 만성상처는 아직 없다. 그러나 개정법이 놓은 경로, 임상연구로 검증해 치료로 잇는 길은 힘 반응형 재료가 국내에서 검증받을 때 그대로 밟게 될 길이기도 하다. 기본계획이 내건 규제 합리화와 환자 접근성 확대가 상처·조직공학 분야까지 미치는지에 따라, 세포의 견인력을 약장 열쇠로 쓰는 발상이 한국 병상에 닿는 속도도 달라질 것이다.

자료: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스프링어 네이처·미국 식품의약국·아주대학교·대웅제약·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식품의약품안전처·단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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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한 기자 ch.son@k-r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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