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태양' 마지막 심장 조립 끝냈다…HD현대중공업, ITER 진공용기 9번째 섹터 완성

섭씨 1억도. 태양 중심부보다 여섯 배 이상 뜨거운 이 불덩이를 지상에서 가두려면, 그것을 담을 그릇부터 있어야 한다. 그 그릇의 마지막 조각이 한국 기업의 손에서 완성됐다. HD현대중공업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진공용기 섹터 가운데 마지막 9번째 모듈 조립을 마쳤다고 밝혔다.
ITER는 한국과 유럽연합(EU),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인도 등 7개 회원국이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 함께 짓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핵융합 실험 장치다. 태양이 에너지를 내는 원리인 핵융합을 지상에서 재현해 청정 에너지의 상용화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이 목표로, '인공태양'으로도 불린다.
1억도를 가두는 그릇, 진공용기
진공용기(vacuum vessel)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초고온 플라즈마를 둘러싸는 ITER의 심장부다. 플라즈마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고온의 기체 상태를 말하는데, 이 플라즈마가 벽에 닿으면 반응이 식어버리기 때문에 자기장으로 공중에 띄운 채 고진공 상태로 감싸야 한다. 도넛 모양으로 자기장을 만들어 플라즈마를 가두는 이 방식을 토카막(tokamak)이라 부른다.
완성될 진공용기는 무게 약 5천 톤에 이르는 거대한 도넛 형태다. 이 도넛은 한 덩어리로 만들 수 없어 케이크를 자르듯 9개 조각으로 나눠 제작한 뒤 현장에서 이어 붙인다. 조각 하나가 높이 11.3m, 폭 6.6m, 무게 약 400톤에 달한다. 아파트 4층 높이의 강철 구조물 하나가 대형 여객기 두 대에 맞먹는 무게인 셈이다.
조선소 기술로 만든 핵융합 부품
HD현대중공업은 이 9개 섹터 가운데 4개를 맡았다. 한국에 배정된 2개를 2010년 수주한 데 이어, 2016년 유럽연합 배정 물량 2개를 추가로 따냈고 2024년 전량을 인도했다. 전체의 약 44%를 한 기업이 책임진 것이다.
거대한 구조물이지만 정밀도는 극도로 까다롭다. 9개 조각이 오차 없이 맞물려야 하나의 진공용기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프랑스 원자력 압력용기 관련 법령과 국제 원자력 기술기준, ITER 국제기구의 품질·안전 요건까지 모두 충족해야 했다. HD현대중공업은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지으며 쌓은 초대형 구조물 제작·용접·품질관리 기술을 이 부품에 옮겨왔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완성된 마지막 섹터는 열차폐체, 초전도 자석과 결합돼 하나의 섹터 모듈로 조립됐고, 최종 결합을 위해 토카막이 들어설 구덩이(피트)로 옮겨졌다. 앞서 자리 잡은 나머지 조각들과 이어 붙으면 5천 톤짜리 도넛 진공용기가 모습을 갖추게 된다.
10여 년 프로젝트의 이정표, 그러나 완공은 남았다
지난 22일 카다라슈 현장에서는 'KOREA-ITER 퓨전 데이' 행사가 열려 약 150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원광식 HD현대중공업 부사장은 피에트로 바라바쉬 ITER 사무총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원 부사장은 "진공용기 섹터의 성공적 제작과 설치는 대한민국 산업계의 기술 경쟁력을 보여주는 이정표"라고 말했다.
다만 진공용기 조각을 다 만들었다는 것이 곧 핵융합로 완공을 뜻하지는 않는다. ITER는 여전히 조립이 진행 중인 초대형 국제 프로젝트로, 부품 제작을 넘어 실제로 플라즈마를 일으키고 에너지 생산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단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더 걸린다. 이번 성과는 그 긴 여정에서 한국 제조업이 세계 최고 난도의 부품을 끝까지 책임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자료: HD현대중공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