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 3000억 규모 AI 서버용 MLCC 수주…한 달 새 계약만 7400억

손톱 위에 여러 개가 올라가는 이 초소형 부품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을 조용히 떠받치고 있다. 삼성전기가 글로벌 대형 기업과 AI 서버용 MLCC를 공급하는 대규모 계약을 새로 따내며, AI 반도체 뒤에 가려져 있던 '수동부품'의 존재감을 다시 끌어올렸다.
삼성전기는 23일 공시를 통해 이 기업과 약 3000억 원 규모의 MLCC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계약 금액은 2951억 원, 공급 기간은 2027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이다. 공급 대상은 고객사의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시스템에 들어가는 고성능 제품이다.
AI 서버 한 대에 60만 개…일반 서버의 10배
MLCC(적층세라믹콘덴서)는 전자회로에 흐르는 전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잡음을 걸러내는 부품이다. 수백 층의 세라믹과 금속을 얇게 쌓아 만드는데, 크기는 쌀알보다 작지만 회로 곳곳에 빠짐없이 들어가야 해 '전자산업의 쌀'로 불린다.
AI 서버는 이 부품을 유독 많이 삼킨다. 고성능 AI 반도체가 순간적으로 끌어다 쓰는 전력의 변동이 크고 안정성 요구도 까다로워, AI 서버에 들어가는 MLCC 물량은 일반 서버의 10배가 넘는다. 삼성전기는 서버 랙 하나에 최대 60만 개까지 탑재된다고 설명했다. 고온·고전압이 반복되는 데이터센터 환경에서 이만한 물량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버텨야 하는 셈이다.
삼성전기는 이번 계약을 두고 MLCC 설계 기술과 가혹한 환경에서의 신뢰성, 대규모 공급 능력을 두루 인정받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이번 계약은 삼성전기 MLCC가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으로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말했다.
한 달 새 계약만 7400억…쌓이는 수주
이번 건은 최근 이어진 대형 수주의 연장선에 있다. 삼성전기는 앞서 6월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약 4500억 원 규모의 AI 서버용 MLCC 공급 계약을 맺었다. 두 건을 더하면 한 달 남짓 사이 확보한 MLCC 계약만 약 7400억 원에 이른다.
범위를 넓히면 규모는 더 커진다. 지난 5월에는 실리콘 캐패시터에서 약 1조5000억 원 규모의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MLCC 두 건과 합치면 최근 석 달 새 AI 서버·데이터센터용 부품에서만 2조 원을 웃도는 계약이 쌓인 것이다. AI 서버 부품을 중심으로 글로벌 고객사와의 장기 공급 계약이 연달아 성사되고 있다는 것이 삼성전기의 설명이다.
시장 위치도 우위에 있다. 삼성전기는 AI 서버용 MLCC 시장에서 40%가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며 글로벌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세계적으로 몰리는 국면에서, 병목이 걸리기 쉬운 핵심 부품을 안정적으로 대는 능력이 곧 협상력이 되는 흐름이다.
남은 변수는 '증설 속도'와 '수요 지속'
다만 잇단 수주가 곧바로 실적으로 직결되는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계약 물량이 2027년 한 해에 걸쳐 공급되는 만큼, 그에 맞춰 생산능력을 제때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AI 서버향 고신뢰성 MLCC는 아무 라인에서나 찍어낼 수 없어, 증설 속도가 매출 실현의 시점을 좌우한다.
수요의 지속성도 변수다. 지금의 대규모 계약은 세계적인 AI 데이터센터 투자 붐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 투자 사이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단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삼성전기가 초소형 부품 하나로 AI 인프라의 길목을 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화려한 AI 반도체 뒤에서, 쌀알만 한 부품의 경쟁이 데이터센터의 성패를 가르는 조용한 전장이 되고 있다.
자료: 삼성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