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실전 F-16을 AI에게 맡겼다…DARPA, 시험기 아닌 '진짜 전투기'로 자율비행 성공

전투기 조종석의 스위치 하나가, 공중전의 주도권을 사람에서 기계로 넘기는 경계선이 됐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미 공군이 실전 배치용 F-16 전투기를 인공지능(AI) 에이전트에 맡겨 자율비행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실험을 위해 특수 개조한 기체가 아니라 현역 전투기를 AI가 몰았다는 점에서, 자율 공중전 기술이 연구실을 벗어나 실전의 문턱에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DARPA는 지난 1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에글린 공군기지에서 진행한 이번 시험을 공개했다. 표준 F-16에 '비너스 자율비행 키트(VAK)'를 장착해 비행 제어 장치와 센서를 자동화했으며, 조종사는 간단한 스위치 조작만으로 유인 조종과 AI 조종을 오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투기의 핵심 소프트웨어는 손대지 않았다.
'실험기'에서 '실전기'로 넘어온 한 걸음
이 성과의 의미는 '어떤 비행기로 했느냐'에 있다. 앞서 DARPA는 공중전 진화 프로그램(ACE)을 통해 AI가 스스로 근접 공중전(도그파이트)을 벌이는 모습을 선보였지만, 그때 쓴 기체는 X-62A 비스타(VISTA)라는 개조 실험기였다. 실험기에서 검증한 기술을 현역기에 옮기는 데는 대개 긴 시간이 걸린다.
이번 시험은 그 간극을 좁혔다. 개조 실험기가 아니라 부대에서 쓰는 F-16에 자율비행 키트를 얹어 곧바로 태웠기 때문이다. 이는 미 공군이 추진하는 협업 전투기(CCA) 구상, 즉 사람이 탄 전투기와 무인 전투기가 한 편이 되어 싸우는 미래 공중전 체계로 가는 실증 기반이 된다.
비행은 사람이 완전히 손을 떼는 방식이 아니었다. DARPA는 이번 시험이 '인간 감독형(Human-on-the-loop)' 환경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매 순간 조종간을 잡지는 않되, AI의 판단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필요하면 개입할 수 있도록 사람을 통제 고리 안에 남겨 둔 방식이다.
사람이 감당 못 하는 복잡성을 AI가 대신
DARPA가 이 기술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현대 공중전이 사람 한 명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졌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초음속 미사일, 전자전, 여러 대의 무인기, 그리고 쏟아지는 센서 데이터가 동시에 얽히는 전장에서, 조종사 한 사람의 인지 능력만으로는 모든 변수를 처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임스 발피아니 DARPA 프로그램 매니저는 "표준 F-16 기체에 비행 제어 장치와 센서를 자동화하면서도 핵심 소프트웨어는 수정하지 않았다"며 "특히 가시거리 밖(Beyond Visual Range) 전투 환경에서는 AI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복잡성을 관리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가시거리 밖 전투란, 조종사가 눈으로 적기를 확인할 수 없는 먼 거리에서 레이더와 장거리 미사일로 벌이는 교전을 말한다.
이번에 검증한 F-16은 앞으로 '인공지능 증원(AIR)' 프로그램의 주력 시험 기체로 쓰인다. DARPA는 한 대의 기체를 조종하는 단계를 넘어, 여러 대의 무인기가 유인 전투기와 손발을 맞추는 다중기 자율 운용까지 시험 범위를 넓혀 갈 계획이다.
남은 질문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
다만 AI가 전투기를 몰 수 있다는 것과, 전장에서 그 판단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발피아니 매니저는 "현대전의 불확실성과 혼란 속에서 AI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기술의 완성도만큼이나, 사람의 목숨과 교전 판단이 걸린 상황에서 AI를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과제로 남은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 시험은 공중전의 무게중심이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동안 공중 우세는 더 빠르고 더 강한 '기체 성능'에서 갈렸지만, 앞으로는 그 기체를 얼마나 영리하게 다루느냐, 즉 'AI의 판단 능력'이 승부를 가르는 요소로 떠오를 수 있다. 실전 전투기를 AI가 몰기 시작한 이 첫걸음이, 사람과 기계가 한 편으로 싸우는 시대를 얼마나 앞당길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한국은 어디쯤…시제기 갓 나온 무인 편대기, 계획은 3단계
한국도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국방부가 2023년 3월 확정한 국방혁신 4.0 기본계획은 AI 기반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를 3단계로 못 박았다. 사람이 원격으로 조종하는 1단계, 반자율 체계를 시범 적용하는 2단계, 반자율을 확산하며 자율형으로 전환하는 3단계다. 2024년에는 각 군과 기관에 흩어져 있던 AI 업무를 총괄하는 국방부 직할 국방AI센터가 문을 열었다. 100명 안팎 규모다.
기체도 나오기 시작했다. 국방과학연구소와 대한항공이 개발하는 저피탐 무인편대기(LOWUS)는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형상으로 유인 전투기와 편대를 이뤄 정찰·전자전 임무를 맡는 무인기로, 지난해 10월 서울 국제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ADEX)에서 시제기가 처음 공개됐다. 다만 미국이 현역 F-16으로 실증에 들어선 반면 한국은 시제기와 계획 단계다. 실험기에서 실전기로 넘어가는 간극이 한국 앞에는 아직 통째로 남아 있는 셈이다.
조종간을 줘도 책임은 사람에게…서울서 나온 청사진
속도전만큼 규범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2024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제2차 '인공지능의 책임 있는 군사적 이용(REAIM)' 고위급회의는 96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61개국의 지지로 '행동을 위한 청사진'을 채택했다. AI를 군사적으로 쓰더라도 책임은 인간이 져야 하고, 테러집단 같은 비국가 행위자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AI가 쓰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네덜란드와 함께 이 의제를 유엔총회 제1위원회에 공동 상정하기로 했다.
DARPA가 이번 시험을 인간 감독형으로 설계한 것과 서울 청사진의 답은 같은 곳을 가리킨다. 기계에 조종간을 넘기는 기술과, 책임의 고리를 사람에게 남겨 두는 제도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비행의 기술 격차는 쫓아가야 할 숙제지만, 그 기술이 지켜야 할 규칙의 초안을 서울이 먼저 썼다는 점은 한국이 쥔 드문 지렛대다.
자료: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